[시론] 달러가 쌓은 바벨탑, 코로나19로 균열 생길까?
2020-07-26 17:09
요즘 세계 경제 상황을 보면서 문득 바벨탑 이야기가 떠오른다.
구약성서 창세기 전 11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바벨탑 이야기는 상세한 내용은 없으나 독특한 주제로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아 있다. 비록 과학적 역사에 근거한 것은 아니지만 인류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대홍수가 쓸고 간 후 노아의 후손은 바빌로니아에 정착하고 꼭대기가 하늘에 닿는 탑을 건설한다. 하늘에 닿는 탑을 쌓아서 명성을 얻고 절대신 여호와로부터 노아의 홍수와 같은 심판을 피할 목적이었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여호와는 탑의 건설을 멈추게 했다. 그 방법은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던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바벨탑을 세우던 사람들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다. 신이 보기에 인간을 묶었던 도전의 원동력은 하나의 언어였다. 하나의 언어가 사라지자 인간은 뿔뿔이 흩어졌다. 이때부터 인류는 각각 다른 언어와 생각으로 살아가게 된다.
다른 생각으로 살던 인류가 바벨탑을 다시 꿈꾸기 시작한 것은 2차대전 후이다.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세계를 하나의 화폐로 통합하는 기구,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orld Bank)을 설계했다. 세계 경제를 하나의 화폐로 엮는 설계는 케인스가 했지만, 이후 주도권을 쥔 것은 당시 경제력·군사력을 독점한 미국이었다.
1945년 미국은 세계 금 보유고의 75%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를 배경으로 미국의 법정화폐인 달러는 세계 교역과 금융의 기본 거래 통화가 되었다. IMF를 기초로 1944년 시작된 브레턴우즈 체제는 금 1온스에 35달러라는 교환 조건으로 세계 경제를 하나로 묶었다. 이 달러의 금 보증(또는 금 태환)은 미국의 베트남전 실패를 계기로 1970년 초 폐지되었지만, 중동 사우디 왕가와의 거래를 통해 석유거래 통화로 지정되면서 순수 법정화폐로도 기축 통화 지위를 유지한다.
이후 70년간 달러는 세계 경제의 단일 언어였다. IMF의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분기 말 기준 세계 외환보유고 11조7000억 달러 중 달러 표시 자산은 58%를 차지하고 있다. 즉, 지구촌 대부분의 경제·금융 활동은 달러로 이루어진다.
달러를 언어로 사용하는 세계 경제는 1980년 이후 세계화(globalization)를 가속하게 된다. 세계화라는 새로운 질서는 자본과 상품 그리고 생산요소의 국가 간 자유 이동과 철저한 국제분업이라는 기본적인 설계도 위에 건축되는 현대판 바벨탑이다.
지구상에 인간을 위해 극한의 부를 창출하겠다는 목적을 가진 세계화 과정에서 달러에 전 세계가 미신에 가까운 신뢰를 바치는 이유는 역사상 가장 큰 전쟁인 1차,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미국의 군사력·경제력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미신 때문에 달러를 찍어내는 미 연방준비위원회(이하 FED)는 아시아 쪽에서는 태평양, 유럽 쪽에서는 대서양이라는 큰 바다를 사이에 두고도 전 세계인에게 통화정책을 통해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다.
현재도 세계화가 바벨탑의 층수를 높이는 작업이 진행형이지만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바벨탑의 균열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뚜렷한 경고의 목소리는 세계화의 출발점인 IMF에서 들을 수 있다. IMF는 2019년 ‘불평등에 맞서다(Confronting inequality)’ 보고서에서 세계화 과정이 노동자의 심각한 소득 불평등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해 명성을 얻은 이코노미스트 엔디 시에(Andy Xie)는 7월 홍콩언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기고에서 달러 주도 세계화의 문제점을 고발했다.
그에 따르면 세계화 속에서 자본과 기업은 자유롭게 국경을 넘어 이동하지만 노동은 이동이 제한될 수밖에 없어 이것이 노동자의 협상력을 낮추고 노동소득은 정체하거나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때 중국이 세계 경제에 등장하며 저가 물품을 공급하여 노동자의 구매력 부족을 메워줬고, 낮은 인플레이션으로 FED를 비롯한 중앙은행은 느슨한 통화관리를 통해 저금리 달러 자금을 지속 공급했다.
노동자는 부채를 늘리며 소비를 즐겼고, 세계화의 부작용인 소득 불평등은 가려졌다. 이런 구조에서 전설적인 FED 의장 앨런 그린스펀 이래 미국 증시는 지속적인 거품 상태를 보였고, 특히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경제침체를 막기 위한 ‘헬리콥터 머니’가 쏟아지며 이후 미국 증시 S&P500은 5배 상승했다. 한마디로 아슬아슬한 버블 위에서 세계화의 바벨탑 쌓기가 중국의 저가 상품 공급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살얼음 위의 썰매 타기 같은 세계화 과정은 코로나19로 궁지에 몰리고 있다. 달러의 보증인(保證人)인 미국 경제는 코로나19 방역 과정에서 신뢰가 심각하게 추락했다. 또한 미국경제 침체를 막기 위해 정부는 약 3조 달러의 재정정책을 통해 재정적자를 늘리고 있고 FED도 보유자산을 3조 달러 늘리며 기업, 실업자까지 닥치는 대로 돈을 풀고 있다.
그 결과 미국경제의 재정적자가 2020년과 2021년 평균 GDP 대비 -14%로 확대되며 최악의 상태로 치달을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코로나19 발발 이전과 이후의 달러 신뢰도가 같을 것인가 의심이 고개를 들고 있다. 2019년까지는 미·중 무역 분쟁, 브렉시트, 미·이란 문제 등 글로벌 지정학적 위기가 발발하면 미국 달러가 안전자산 기능을 하며 달러 자산으로 자금이 몰렸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위기마다 달러 가치가 상승했다. 그러나 올해 5월 중반 이후 미국의 코로나19 2차 확산 우려와 함께 달러 가치는 하락하고 있다. 다만 뉴욕 증시는 3월 급락을 만회했거나, ‘사회적 거리 두기’와 ‘재택근무’의 덕분에 IT 업종이 다수 포진한 나스닥은 전 고점을 넘어선 상황이다.
달러에 대한 신뢰가 약해질 증거는 차고 넘치는 상황이다. IMF는 6월에 코로나19 영향을 반영한 수정 경제 전망에서 미국은 2020년 -8% 경제성장률로 크게 하락한 후 2021년은 4.5%로 전년 하락을 만회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FED의 제롬 파월 의장도 6월 통화정책회의 이후 미국 경제의 회복이 쉽지 않음을 계속 경고하고 있다.
과거 1980년대 일본, 2010년대 중국이 달러 주도의 세계화 체제에 도전했으나 일본은 실패했고 중국은 거센 반격에 시달리고 있다. 달러가 쌓은 세계화의 바벨탑을 향한 인간의 도전은 실패했지만, 자연의 힘, 코로나19가 어떤 균열을 만들지 주목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