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K방역과 중견국 외교...국격 상승의 기회로
2020-07-13 18:30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국과 한국민에게 여러 가지 고통을 주는 가운데에도 오히려 도움을 주는 측면도 있다. 성공적인 바이러스 대처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 찬사를 받은 점이다. 미국을 포함한 많은 선진국이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에 실패해 국내외적으로 비난과 조롱을 받은 것과는 크게 비교된다. 초기 중국과 더불어 가장 피해가 극심했던 한국은 이후 적극적인 검사, 체계적인 추적 관리, 치료를 통해 방역에 있어 전 세계의 모범국이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적으로는 지난 4월에 있었던 국회의원 선거에서 집권당이 압승을 했다. 밖으로는 한국의 신뢰도가 상승하고 이미지가 크게 개선되는 등 국격이 제고되는 효과가 있었다. 이를 방증하듯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9월로 예정된 G7 정상회담에 한국을 초대하여 G11을 구성하자는 제안까지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이 실현될지는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것은 국제사회에서 한껏 높아진 한국의 위상이다.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중견국 외교를 추진하려는 계획이다. 중견국(middle power) 외교란 강대국이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분야에서 중간 정도의 국력을 가진 국가가 창조적인 외교 활동을 통해 국제사회와 자신의 국익에 기여하려는 것이다. 노르웨이가 평화 및 분쟁 조정 분야에서 탁월한 외교력을 발휘해서 평화 애호 국가라는 명성을 쌓은 것이 한 예이다. 스웨덴도 페미니즘 외교를 통해 전 세계 여성 지위 향상을 도모하는 동시에 자국의 소프트파워를 강화하고 있다. 또한 캐나다는 강대국이 관심을 갖는 국가 안보가 아니라 개인의 인권, 복지, 건강 등을 강조하는 인간 안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은 그간 국제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환경 문제, 개발 협력 등 분야에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아직 그 실적은 미미한 편이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통해 한국 정부는 질병, 건강 문제에 있어 국제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먼저 문재인 대통령은 G20 화상 정상회담을 통해 국제적 질병 퇴치 협력 체계를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이어 강경화 외교장관은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네스코 등 국제 기구를 중심으로 국제적인 국가 연합을 구성하여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시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외교부 산하 국제교류재단 등 여타 정부 조직들은 한국의 성공적인 바이러스 방역 경험과 지식을 타국에 전파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 중이다.
여기에는 오랫동안 다자외교 분야에서 활동해온 강경화 외교장관의 역할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 사실 한국은 오랫동안 미·중·일·러 등 주변 4강을 상대로 한 양자외교에 익숙해 왔기 때문에 중견국 외교에 필수적인 다자 외교에는 취약한 편이었다. 특히 국가 간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현대의 공공외교에서는 많은 한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번 바이러스 사태를 겪으면서 높아진 한국의 위상을 보다 공고하게 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 기반의 열린 다자외교는 필수적인 요건이다. 이 점은 얼마 전 창립된 공공외교 학회 출범 학술대회에서 많은 참석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사항이다.
그러나 한국이 열린 중견국 외교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많은 장애물이 존재한다. 먼저 국민들의 사고방식이 그만큼 열리지 않은 점이 지적된다.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의 모범적인 중견국들의 공통점은 외부와의 오랜 접촉을 통해 국민들이 타자를 포용하는 다원적인 사고방식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외부와의 교류가 일천한 한국의 경우에는 아직도 외부 세력에 대한 피해의식이 잠재해 있고, 이는 곧잘 배타적인 민족주의 형태로 나타난다. 선진국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하지만 동남아 후진국에 대해서는 우월감을 바탕으로 깔보는 태도 역시 문제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