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턴의 회고록에서 드러난 미.중관계
2020-07-08 17:58
[주재우의 프리즘] 임기 중에 현직 대통령을 비판하는 책이 이렇게 미국에서 많이 출판된 적은 거의 없었다. 백악관 출입 기자에서부터 관내의 요직 인사 등 저자들도 전례에 없이 다양하다. 다음 주에는 트럼프의 가족이 쓴 책이 나온다. 트럼프 가(家)와 절연한 조카 메리 트럼프가 그의 정신병자와 같은 정신 사고와 무원칙적인 행동의 민낯을 그리는 책이 <너무 과한데 결코 만족하지 않는: 어쩌다 우리 가문은 가장 위험한 남자를 창조했나(Too much and never enough)>의 제목으로 미국의 서점가를 점령할 것이다.
지금까지 트럼프를 비판하는 책은 10여 권 이상 출판되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트럼프의 해괴한 사고와 돌출 행동을 폭로하면서 그의 재선을 막아야한다는 절실한 바램을 담고 있다. 특히 외교 분에서 그가 매사에 매우 즉흥적이고 사심을 가지고 접근하는 기이한 행동을 폭로하고 있다. 그의 돌발적인 외교 의사결정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의 트위터에서도 잘 드러난다. 트럼프가 예측 불가한 인물로 정평 나있는 이유다.
지난 달 존 볼턴 전 미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것이 일어난 방>으로 트럼프의 외교적 언행이 해괴망측하고 예측 불가한 이유가 여과 없이 드러났다. 가장 독보적인 이유는 그가 외교문제를 비즈니스 협상 처럼 접근한 탓이다. 큰 딜을 위해 사소한 것은 무시하고 묵인해도 괜찮은 그의 신념 때문이다. 이런 신념에 매몰된 그는 그의 판단과 결정을 미국의 국익에 최선의 선택으로 둔갑시키면서 공치사하기에 급급해한다. 생색내기에 달인인 그로서는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기를 원한다. 그의 여동생은 그가 교회를 가는 이유도 언론의 카메라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자아도취와 의 표본이다.
이렇게 국내 언론과 전문가들이 북미외교의 이야기에 함몰되었을 때 필자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미중관계의 이야기였다. 트럼프가 어떻게 미국의 중국 관계를 다뤘는지를 기술한 부분이었다. 지난 3년 동안 미국의 대북외교 못지않게 미국의 중국 외교 또한 미국의 외교가와 정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트럼프의 중국에 대한 속내였다. 중국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중국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전략을 짜기에 이렇게 전무후무한 강경책을 고수하는지. 그의 ‘중국 때리기’가 진심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지를 알고 싶었다. 지척에서 그를 관찰한 볼턴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볼턴에 의하면 트럼프는 중국보다 시진핑을, 미국의 안보이익보다 기업의 이익을, 국익보다 재선이라는 사익을 앞세워 중국과의 외교문제를 접근했다고 한다. 트럼프는 중국 공산당이 일당독재하면서 중국의 인권과 자유를 유린하는 사실에 관심이 일도 없다. 그는 지난 40여 년 동안 미국이 견지한 대 중국 포용(engagement)외교의 기대 효과에 연연하지 않는다. 미국의 역대 행정부는 중국의 경제발전을 미국이 도와주고 중국이 국제체제와 시장에 적극 참여하면 정치적 낙수효과로 이어질 것을 기대했다. 즉, 중국의 민주화 결과를 기대한 것이다.
트럼프는 중국의 전체주의적인 정치체제와 그 후과에는 관심이 없다. 2018년 11월 G-20 아르헨티나 정상회의에서 가진 시진핑과의 만찬자리에서 그는 중국의 티베트와 신장 위구르족에 대한 인권 탄압 문제를 중국 내정 문제임을 인정했다. 2019년 6월 4일 그의 영국 방문 일정은 천안문사태 30주년과 겹쳤다. 참모들은 성명 발표를 권유했으나 그는 “15년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해?”라고 반문하면서 “누가 신경쓰냐(Who cares?)”며 거절했다. 홍콩 시위 사태에 대해서도 그는 시위자들을 지지하나 중국과의 무역 협상을 이유로 이런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식화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중국과 협상 중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고 볼턴에게 밝혔다. 그리고 6월 18일 통화에서 시진핑이 홍콩문제가 중국 내정 문제라고 하자 트럼프는 이를 묵인했다. 백악관 참모들이 대외적으로 이와 관련하여 어떠한 논의도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약속을 덧붙였다.
트럼프는 비즈니스 딜을 위해 미국의 안보이익의 희생도 감수할 수 있는 신념에 차있다. 이런 그의 신념은 중국 통신 기업에 대한 제재 철회에서 사실로 드러났다. 2018년 12월 중국 화웨이 회장의 딸이 캐나다에서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 상무부는 화웨이가 이란과 북한 제재를 위반하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꼽았다. 캐나다와의 수사공조로 캐나다에서 화웨이 회장의 딸을 구속했다. 미국에게 화웨이 문제는 무역문제가 아닌 사법적인 것이었다. 미국의 법제와 법치주의의 존엄성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인식은 달랐다. 중국과의 무역 분쟁을 해결하려는 그의 협상 노력을 저해하는 사건으로 본 것이다. 미국 정부 당국은 중싱에 천문학적인 벌금을 물리려했다. 트럼프는 이를 반대했다. 협상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한 게 그의 판단이었다. 그리고 벌금을 10억 달러로 감소시켰다. 그의 이유는 중싱이 대기업으로 천문학적인 벌금을 물면 도산할 것이고 중국에 수많은 실직자가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언제부터 미국이 중국의 실직자를 걱정했다는 게 볼턴의 반응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결정으로 중국이 미국에 빚을 진 셈이라고 자화자찬했다. 이를 근거로 그는 시진핑이 무역협상에 유연하게 나올 것을 기대한 것이다. 현실은 그러나 이와 반대였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강경책의 완화로 중국에게 더 많은 빚을 지게 만들려했다. 화웨이 이슈는 지난 2년 동안 미국과 우방국가 및 동맹국에 뜨거운 감자다. 미국은 화웨이가 첨단통신장비 및 기술을 통해 미국과 동맹국의 기술과 정보를 절취하고 편취하면서 지적재산권을 훼손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동맹국이 화웨이 제품의 불매운동에 동참할 것을 압박했다.
이런 트럼프의 압박 이면에는 충격적으로 놀라운 사실이 숨겨져 있었다. 트럼프는 미국의 기업 이익을 감안해 화웨이 사태를 무역 협상의 레버리지로 활용하려했다. G-20 오사카 정상회의 개최 전에 2019년 6월 18일 트럼프는 시진핑과 통화한다. 통화에서 시진핑은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강경책에 공세적으로 나왔다. 이 사태를 해결하지 않으면 미중 양국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얼음장을 놨다. 수세에 몰린 트럼프를 시진핑은 오사카에서 또 한 번 밀어붙였다. 결국 시진핑의 설득으로 사태는 종료되었다. 트럼프는 미국 기업의 화웨이에 대한 기술 및 제품 판매를 허용했다.
트럼프는 미국의 국익보다 자신의 재선을 위해 중국과의 관계를 좋게 유지하려 했다. 그리고 무역협상의 타결도 서둘렀다. 이를 위해 트럼프는 시진핑에게 더 많은 미국의 농산품을 구매할 것을 시종일관 요구했다. 미국의 농민과 농업 유권자를 의식한 극약처방이었다. 그에게 다른 제품은 의미가 없었다. 그는 2018년 12월 3일 백악관 참모들에게 중국이 미국 농산품의 구매를 두 배, 세배로 늘리게 할 것을 명령했다. 성사되면 그는 사상 최고의 무역 딜을 일궈낼 수 있을 것을 장담했다.
2018년 12월 29일 시진핑과의 통화에서도 트럼프가 자신의 재선에 대해 걱정했다. 그러자 시진핑은 그에게 헌법을 수정해서 더 오래 집권하라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이듬해 6월 18일 트럼프는 시진핑과의 통화에서 또 한 번 자신의 재선을 도와줄 것을 간청했다. 며칠 뒤 오사카 회담에서 트럼프는 시진핑에게 3500억 달러 상당의 중국 제품에 대한 관세에 추가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리고 시진핑을 수 백 년 만의 최고 지도자로 칭송했다가 중국 역사에서 최고의 지도자라고 극찬했다. 볼튼의 회고록을 통해 2020년 1월 16일 미중 1차 무역협정이 졸속타결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