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환 칼럼] 위기극복은 ‘투자와 소비하기 좋은 환경’ 만들기로

2020-07-07 18:00

[최성환 교수]




올 들어 미국의 기업파산보호 신청 건수가 3427곳으로 2013년 이후 7년 만에 상반기 기준 최대치를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기업들이 줄도산하기 직전인 2008년 상반기의 3491개에 근접하는 수치이다. 셰일에너지 혁명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체서피크, 자동차 렌탈회사 허츠 등이 코로나19에 따른 봉쇄조치와 수요 급감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파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앞으로 더 큰 2차 파산이 있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반면 코로나19의 충격에 오히려 잘 나가는 기업도 수두룩하다. 온라인 또는 언택트(비대면)의 흐름을 잘 활용하고 있는 IT기업과 택배∙운송 기업, 건강관련 바이오기업들이다. 이들 기업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면서 주가가 이미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코로나19사태가 끝나가기 시작하면 위기를 기회로 삼아 잘 나가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내리막길로 치닫는 나라도 있을 것이다. 코로나19사태가 끝난 이후의 시기를 의미하는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시대는 위기의 한 가운데서도 미래를 내다보면서 잘 나가는 기업을 많이 키워낸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경제와 고용을 이끌어가는 엔진은 결국 기업이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 포스트 코로나시대의 우리나라를 내다본다면 어느 쪽일까. 다시 말해 잘 나가는 쪽일까 내리막길일까. 이에 대한 평가를 내놓은 국제기구나 연구소는 아직 없다. 이에 다음 2가지 기준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홍콩의 기업 탈출과 관련한 건이다. 홍콩은 보안법 시행과 미국의 특별지위 박탈로 글로벌 기업과 금융자본이 대거 빠져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과연 홍콩의 글로벌 기업과 금융자본이 대체지로서 우리나라를 거론하고 있을까. 홍콩소재 대기업 임원들로부터 나온 말은 한마디로 ‘한국(서울)은 아니다’였다. 한국은 규제가 많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규제의 예측가능성이 너무 낮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고 한다. 필요한 경우 수시로 새로운 규제를 만들거나 변경∙강화하는 바람에 기업 운영과 활동에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기업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 하나만 들라고 하면 불확실성이다.

두 번째는 리쇼어링(reshoring), 즉 해외로 나갔던 기업들이 본국으로 돌아오는 건이다.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공급망에 문제가 생기면서 미국과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이 자국기업의 귀환을 위해 다른 어느 때보다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대통령이 나서면서 관련부처에서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정부가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푸념을 하고 있다. 임금, 노조, 규제의 3대 걸림돌이 막고 있어서 말만 무성할 뿐 실제로 돌아올 기업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한 해답도 나온다. 규제를 글로벌 기준(global standard)에 맞도록 뜯어 고치는 동시에 규제의 예측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포함한 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도와 노조활동 또한 기업의 투자와 발전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적절한 수준에서 합의되고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반(反)기업 또는 반(反)부자 정서를 완화시키기 위한 기업 및 부자 차원에서의 노력도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투자하기 좋은 환경,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요즘 국내 골프장은 평일에도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호황이다. 골프장 회원권 가격이 오른 것은 물론 팔려고 내놓았던 골프장 매물이 사라지고 매매가격도 뛰었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해외 골프 인구가 죄다 국내 골프장으로 몰리는 바람에 일어난 기현상이다. 전 세계를 누비던 해외 여행객들도 좀이 쑤시면서 제주도와 국내 여행지로 몰리고 있다. 해외로 나가지 못하고 국내에서만 북적인다고 해서 ‘가두리 골프’와 ‘가두리 여행’이라는 신조어가 나오기도 했다. 그간 사람들이 왜 해외로 골프와 여행을 나갔을까.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는 없으면서 비싸기만 한 가성비 낮은 곳이 우리나라가 아닐까. 여기다 돈 있는 사람들이 돈을 쓰는 것에 대한 반감(反感) 또한 사람들을 해외로 내몰고 있다.

돈 없는 사람은 쓸 돈이 없어서 못 쓰고 돈 있는 사람은 남의 눈치보느라 해외로 나간다면 그 나라 경제는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돈 있는 사람들이 국내에서 돈을 많이 써야 국내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는 법이다. 최근 면세점들의 명품 재고떨이에서 보는 것처럼 돈을 쓸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제대로 세금 내면서 열심히 노력해서 번 돈을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쓸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돈 쓰기 좋은 환경, 소비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러면 코로나19와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아도 저절로 국내에서의 소비, 가두리 소비가 늘어나게 될 것이다.

경제를 이끌어가는 3대 동력은 소비∙투자∙수출이다.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인데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는 국내 소비와 투자를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가에 포스트 코로나시대의 미래가 달려있다. 정부가 지금까지는 코로나19 위기 이후 급한 불을 끄는 구제(relief)에 초점을 맞췄다면 앞으로는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하는 전략과 비전을 제시하고 실행해야 한다. 국회를 통과한 3차 추경안을 보면 총 35조 원 중 우리 경제의 미래에 투자하는 이른바 한국판 뉴딜에 붓는 돈은 5.1조 원에 불과하다. 구제에 치중할 경우 선거와 표를 얻을 수는 있겠지만 우리 경제의 미래는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투자하고 소비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데 더해 이제부터는 마중물을 붓는 데도 차별화 전략으로 가야 한다. 펌프(기업)에 물이 빠졌을 때 마중물을 붓기만 한다고 물이 나오는 게 아닐 뿐 아니라 마중물도 무한정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왜 물이 빠졌는지, 기계에는 고장이 없는지, 수원(水源)이 마르지는 않았는지, 여러 개의 펌프가 있다면 어디에다 마중물을 집중적으로 부어넣어야 하는지 등을 세심하게 살피고 결정해야 한다. 고장난 펌프, 수원이 말라버린 펌프에 마중물을 아무리 부어야 물이 나오지 않는다. 대한민국 경제와 인구를 먹여 살릴 성장 동력이 될 펌프를 골라내고 새로 만드는 전략과 비전이 필요한 이유이다. 예를 들어 탈원전이 과연 맞는 방향인지부터 4차 산업혁명의 신기술과 관련 스타트업들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등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전쟁이 단기에 끝나지 않을 것 같으면 전쟁 중에도 전쟁 후를 생각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 최성환 고려대 경제학과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