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철스님의 ‘가로세로’] 오른 손으로 왼쪽 눈을 가리다

2020-07-04 07:47

원철 스님[ ]



낮이 가장 길다는 6월중순 인지라 오후 7시가 넘었는데도 주변은 여전히 훤하다. 만약 이런 시간이 더 길어진다면 북유럽의 백야(白夜)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섞인 혼잣말을 하면서 젊은이의 거리로 불리는 홍익대학교 인근에 도착했다. 목적지는 창호문 제작으로 유명한 회사의 갤러리였다. 의자 탁자 싱크대 등 실내장식물과 함께 붓글씨와 서양화를 아우르는 이색적인 전시회다. 기존 행사들과 다른점이 있다면 부녀가 함께 하는 공동 기획전이라는 사실이다. 딸은 프랑스 건축사 자격을 가진 프로 건축가로 실내장식 전문가이기도 하다. 부친은 정년퇴직 후 그동안 취미삼아 해오던 서예와 그림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아마추어 예술가였다.

건축가 딸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스케치북에 그려준 임진란 당시의 왜군장군 그리고 신라의 화랑이 말을 타고 있는 역동적인 스케치 등을 아직까지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의 작업장인 작은 방에서 삐져나오는 유화작업에 필요한 신나 냄새를 맡으며 자랐고 당신이 직접 그린 호랑이 그림을 학교에 기증한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딸의 전시공간 한 켠을 내준 고마움에 대하여 화려한 꽃그림 두 점으로 화답했다. 물론 딸에게 헌정한 작품이다.

그러고 보니 두어달 전 4월하순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을 찾았을 때 부녀지간의 정을 확인하는 자리를 만났던 기억까지 소환된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디자인계의 거장으로 불리는 카스틸리오니(1918~2002) 탄생 일백주년을 기념한 전세계 순회전의 일환이었다. 작품주제는 생활소품인 의자 전등 전기스텐드 탁자 책상 등이다. 큐레이터는 관람객에게 가장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킨 작품은 아버지가 딸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탁자와 의자가 함께 붙어있는 다용도 책상이라는 해설을 덧붙였다. 낮은 자리 의자에는 아버지가 앉고 높은 자리 탁자에는 어린 딸이 앉아 서로 눈을 맞추며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치를 겸했기 때문이다. 홍보영상에서 딸은 “아버지의 작품을 통해 여전히 살아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라는 인터뷰는 부녀사이의 애틋함을 관객들에게 가감없이 그대로 전달된다. 이탈리아 현지에 있는 아버지 스튜디오는 딸이 운영자가 되어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있다. 아버지의 모든 오리지널 작품은 이탈리아 정부의 문화재로 등록 관리되고 있는 박물관인 셈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시선을 끈 작품은 주름으로 가득한 얼굴에 오른 손으로 왼쪽 눈을 가린 채 미소짓고 있는 디자이너 본인의 모습이다. 카스틸리오니를 상징하는 이 캐릭터는 사진과 그림 펜화 등의 여러 가지 표현기법을 동원하여 유형을 달리하며 갖가지 포스터로 제작하여 여러 점이 동시에 걸려 있다. 평범함 속에서 뭔가 다른 점을 찾는다는 그의 통찰력을 상징하는 또다른 이미지를 구현한 것이기도 하다. 좋은 작품이란 결국 비범한 안목에서 나온다. 아버지는 딸의 재주를 읽었고 딸은 아버지의 지혜 품속에서 자랐다. 두 전시회 모두 앞세대의 정신세계와 미의식을 통해 미래세대의 감성과 인성을 일깨워주는 또다른 가정교육의 현장이기도 했다.
 

 


언젠가 시각디자이너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안상수 선생을 지인의 전시회장에서 만난 적이 있다. 조계종 로고를 디자인 할만큼 절집과 인연도 적지않다. 수인사를 마치자마자 느닷없이 사진을 한 장 찍어도 되겠느냐고 하면서 양해를 구했다. 아무런 장식도 없는 콘크리트 벽 방향으로 서라고 위치까지 지정해준다. 게다가 한 가지 조건을 더 붙였다. 오른 손으로 왼쪽 눈을 가려달라는 것이다. 그 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모델노릇을 했다. 이번에 카스틸리오니 포스터를 마주하면서 그 별스런 동작을 요구하던 의문이 한순간에 풀렸다. 아하! 바로 이것이었구나. 두 디자이너를 몇 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만난 덕분에 궁금증이 해결된 것이다.

두 눈을 가진 이는 평범하지만 한 눈을 가진 사람은 비범하다는 이야기는 만화영화 ‘해적왕 애꾸눈 선장’ 혹은 후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 ‘궁예’ 등에서 더러 접한 바 있다. 이스라엘의 모세다얀 장군도 그 대열에서 빠질 수 없다. 또 조선말 고종임금의 등극을 예언했다는 유명한 관상가 박유붕(1086~?)선생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그는 본인의 관상을 자기가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아야 남의 운명을 제대로 맞힐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 다음 주저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 눈을 찔러 애꾸눈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온다.

설봉의존(雪峰義存822~908))선사는 “두 눈은 고사하고 한쪽 눈(일척안一隻眼)이라도 제대로 갖추고 살아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인위적으로 애꾸눈을 만들라는 이야기는 아닐 터이다. 그 잔소리(?) 아닌 잔소리는 잊을 만하면 다시 들어야 하는 반복학습을 오늘까지 거듭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잔소리를 다음세대에 그대로 전달하고 있는 꼰대세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