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 악재, 韓외교에 불똥 튈까..."전략적 모호성 버리기 힘들어"

2020-07-01 17:45
中, 홍콩 국가보안법 1일 시행
국제사회 우려에도 강행 처리
美, '홍콩 특별대우 박탈' 보복
"韓 외교 공간 줄어들밖에"

홍콩 경찰이 1일 코즈웨이 베이에 모인 시위대를 향해 경고문을 들어보이고 있다. 경고문에는 "여러분은 지금 국가를 분열시키거나 공권력 전복을 노려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등의 행동을 하고 있다. 이는 국가안전법(보안법)에 따라 범죄가 될 수 있으며 여러분은 체포와 기소를 당할 수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 등 국제사회 우려에도 중국이 1일부로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시행에 나섰다. 미국은 즉시 홍콩에 대한 특별대우를 박탈한다며 강경 대응에 나섰다.

미국과 중국이 무역 분쟁에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두고 2차전을 벌이는 가운데 양국 갈등이 더욱 심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다.

1일 외교가에 따르면 홍콩보안법 제정에 따른 미·중 갈등 여파에 한국의 외교적 공간이 한층 줄어들 전망이다.

중국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회의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달 30일 홍콩보안법을 통과시켰고, 홍콩 주권 반환 기념일인 이날부터 시행했다.

홍콩보안법은 외국 세력과 결탁, 국가 분열, 국가정권 전복, 테러리즘 행위 등을 금지·처벌하는 동시에 홍콩 내에 이를 집행할 기관을 설치하는 내용을 담았다. 홍콩보안법 위반자는 최고 종신형에 처할 수 있다.

이에 미국 상무부는 29일(현지시간) 윌버 로스 상무장관 명의로 성명을 내고 "수출 허가 예외 등 홍콩에 특혜를 주는 미 상무부의 규정이 중단됐다"고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도 "홍콩의 자유를 박탈하는 중국 공산당의 결정이 홍콩에 대한 정책을 재평가하게 했다"고 언급하며 홍콩에 대한 국방 물자 수출을 중단하고 홍콩에 대한 민·군 이중용도 기술의 수출 중단을 위한 조처를 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1992년 제정한 홍콩정책법으로 관세나 투자, 무역, 비자 발급 등에서 홍콩에 중국 본토와 다른 특별지위를 보장해 왔다.
 

중국 부총리가 지난 1월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미·중 1단계 무역합의 서명식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홍콩보안법을 둘러싼 미·중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정부가 움직일 외교 공간이 축소됐다는 우려가 커진다.

미국과 중국은 한국을 향해 노골적으로 편을 들어줄 것을 강요하는 상황이다.

미국 정부는 반중(反中) 경제블록으로 알려진 경제번영네트워크(EPN)에 한국이 참여할 것을 거듭 요청하는 동시에 한국이 이미 수십 년 전 미·중 사이 어느 편에 설지 결정했다는 발언을 내놨다.

중국 역시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를 앞세워 연일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싱 대사는 지난달 24일 중국 언론 인터뷰에서 "한·중 양국은 전통적으로 핵심 사안에 대해 서로의 입장을 존중해온 우호국"이라며 "홍콩 문제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이 이해와 지지를 보낼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미·중 사이에 끼인 한국 정부는 홍콩보안법과 관련한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고심이 깊어 보인다.

정부는 미국과 영국 등 전 세계 27개국이 30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유엔 사무소에서 열린 제44차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우려를 표명한 데 대해 동참하지 않았다.

그간 정부는 홍콩보안법 상황을 주시한다면서도 대중(對中) 관계를 고려해 직접 언급한 바 없다.

다만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전날 정례브리핑에서 "홍콩이 일국양제 하에서 고도의 자치를 향유하면서 안정과 발전을 지속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발언, 홍콩보안법이 홍콩 자치에 미칠 부정적 여파에 대한 우려를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이처럼 한국이 미·중 사이 전략적 모호성을 취하는 데 대해 태도를 바꿀 때라는 판단이 다수지만, 외교부는 한국이 당분간 양국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다는 처지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국이 당분간은 전략적 모호성을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사안별로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올바른 정책 판단을 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