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위반 의혹’ 엘리엇, 검찰은 왜 무혐의 결론을 내렸나?

2020-06-30 16:26
국내에 없는 피의자...외국계 헤지펀드 수사에 한계
가습기 살균제 수사, 도이치방크 수사에서도 비슷한 사례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엘리엇)의 삼성물산 주식보유 신고의무 위반 혐의에 대해 결국 무혐의 결론이 나오면서 검찰의 입장이 곤란해졌다. 보유지분이 5%를 넘지 않는다고 공시해 놓고 주주총회 직전에 7%가 넘는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공개하는 등 외형상 혐의가 분명했지만 피의자들 사이의 관계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했다고 검찰은 아쉬워 했다. 

당장 피의자 대부분이 해외에 있어 소환을 하는 것부터 어려웠고, 돈의 흐름이나 계약관계를 추적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기상으로 미묘한 시점이어서 무혐의 결론을 내놓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다른 방도를 찾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오현철 부장검사)는 지난달 엘리엇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 관계자는 “혐의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2016년 3월 사건을 접수했지만 2018년 5월에야 엘리엇 관련자를 처음으로 소환해 수사했다. 수사과정에서 엘리엇 측은 검찰에 거의 협조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엘리엇은 검찰의 출석요구에 "합법적 스와프 거래였다"면서 "검찰 수사를 통해 민감한 내부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거나 "수사 시기가 미묘하다"는 등 음모론을 제기하며 시간을 끌다 소환통보 두달이 지난 7월에야 소환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그 뒤에는 이렇다 할 수사진척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엘리엇은 우리 정부를 상대로 ISD (투자자 국가소송)을 제기하며 반격에 나섰다. 사실상 공개적으로 수사에 협조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셈이었다. 

일부에서는 검찰이 늑장수사를 했다고 지적하지만 사실상 수사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던 셈이다.

엘리엇과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을 맺은 외국계 금융사들과의 이면계약 여부 등도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주문과 계약이 홍콩에서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2016년 6월 2일까지 삼성물산 주식 4.95%를 보유하고 있다가 이튿날 보유 지분을 2.17% 추가 확보했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자본시장법에는 특정 회사 주식을 5% 이상 보유했을 때는 반드시 5일 이내에 공시하도록 하는 '대량 보유 공시 의무'가 규정돼 있다.

엘리엇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 주주총회와 관련해 안진회계법인을 대리인으로 선임했다고 허위공시한 건 때문에 고소를 당해 검찰수사를 받은 바 있다. 당시에도 엘리엇은 한두 차례 검찰에 출석한 뒤 소환조사를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계 자본이나 기업이 국내에서 위법혐의를 받는데도 수사에 협조하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도 판매사인 옥시-래빗벤키저 측 핵심 피의자들이 외국국적이라는 점을 십분 활용, 해외로 나가는 바람에 수사와 처벌에 어려움을 겪었다. 

단군 이래 최대 주가조작 사건이라는 '도이치 옵션 쇼크' 사건 역시 주요 핵심 피의자 대부분이 홍콩 등 해외로 도주했다. 지난해 영국계 홍콩인이 인도네시아에서 붙잡혔지만 아직 국내로 송환되지는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내 전문가들은 제도 개선이 필수적인 상황이 됐다고 말한다. 외국계 투자자들이 국내법을 우습게 보지 않도록 국제적 공조를 비롯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해졌다는 지적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장은 “TRS의 경우 본래 투자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이에 대한 거래공시 규정 등이 없다”며 “최근 라임사태 등 편법을 통해 지분을 숨기는 등 기업이나 금융소비자의 의사결정에 피해를 끼치는 경우가 늘어났다.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송기호 변호사는 "추후에도 해외 헤지펀드등 단기적 차익을 노리고 온 자본들이 우리 공시제도를 비롯해 증권시장의 투명성이나 공정성을 해하는 일이 없도록 사전적인 조치가 더 필요하다. 수사 등을 위한 입법적인 조치도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