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혁명가들] 나희승 원장 "자율주행·하이퍼튜브 시대 온다…대한민국이 선도국"

2020-06-03 06:00
- 속도혁신·세계 선도기술로 대륙 간 철도시대 대비
- 집에서 소형 트램 불러 파리까지 9시간이면 충분
- 선진국서 철도기술 수입하던 우리 이제는 수출국

포스트코로나 시대, 교통·모빌리티, 네트워크, 물류유통 등이 유망 산업군으로 주목받으면서 미래 교통의 개발과 상용화가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본지는 한국 항만, 도로·철도 등 교통산업의 기반을 닦은 사람들, 현재를 살며 미래를 준비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향후 나아가야 할 방안을 모색하는 '교통혁명가들(Transportation-frontier)' 기획을 총 9회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주>
 

지난 11일 경기도 의왕시 철도기술연구원에서 나희승 원장이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 대한민국이 선도하는 최고 수준의 철도, 우리가 만듭니다

"철도기술 혁신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열차 자율주행과 시속 1000km급 하이퍼튜브 기술은 공상과학이 아닌 다가올 미래다. 대한민국이 세계 1등이다."

지난 11일 만난 나희승 한국철도기술연구원장은 두 시간이 넘는 인터뷰에도 지친 기색 없이 미래를 향한 혁신과 도전을 설명했다. 학생처럼 질문을 쏟아내는 기자를 오히려 반기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더 많이 얘기하지 못해 아쉽다는 그는 "잠시만 기다려 달라"며 준비한 자료를 뒤적이기도 했다. 혹시나 설명하지 못한 핵심 과제가 있을까 싶어서다.

지난 2018년 원장으로 취임하면서 교통혁명 선봉에 선 그의 열정은, 24년 전 프랑스 TGV 고속철도 기술이전으로 시작한 연구자 시절부터 축적해온 듯했다.

세계 3대 철도연구기관 도약을 꿈꾸는 나 원장은 재임 기간 이루고 싶은 목표를 세 가지로 제시했다. △속도 혁신 △국민 체감형 스마트 혁신 △남북·대륙철도시대 네트워크 혁신이다.

이 중 속도 혁신의 대표주자는 1000km/h급 하이퍼튜브 초고속열차와 400km/h급 고속열차 고도화가 맡는다.

스마트혁신은 세계 최초 5G 기반 자율주행을 활용한 열차제어 기술과 전차선이 필요 없는 무선급전기술, 도어 투 도어가 가능한 미니트램, 소음이 적고 승차감이 뛰어난 고속대차(자동차의 경우 서스펜션) 등이 있다.

네트워크 혁신을 위해 궤도 폭이 서로 다르더라도 중국과 러시아, 유럽 등 모든 국가에서 운행할 수 있는 지능형 자동궤간가변기술도 상용화할 계획이라고 한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하이퍼튜브 기술과 자율주행, 자동궤간가변기술, 열차무선급전 분야에서 세계에서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과거 20년의 성과와 기술을 바탕으로, 한국철도기술의 미래 20년을 향한 혁신과 도전의 막중한 임무를 맡게 돼 영광이다."

"소중한 세금으로 운영하는 출연연구기관인 만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도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 철도로 인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알려드리고 싶다."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혁신에 힘써온 전임 원장님과 모든 연구자, 이번 인터뷰를 도와준 신교통혁신연구소, 북방철도연구센터, 철도시험인증센터 등 임직원 분들께 감사하다."
 

원장실 앞에 연도별 최고의 연구원을 그린 그림이 걸려있다.[사진 = 김재환 기자 ]


◇ 20년 뒤, 세계는 철도로 한 데 묶일 것

나 원장에게 20년 뒤 미래상을 한 문장으로 부탁했다.

"스마트폰으로 집에서 역사까지 연결하는 미니트램을 불러 타고, 서울 국제역에서 유럽 파리까지 하이퍼튜브로 9시간이면 간다."

파리는 서울에서 9000km 떨어져 있다. 비행기 직항으로도 11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다.

인천공항까지 가는 시간에 공항 탑승 대기시간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3~4시간은 더 소요되는데, 어떻게 열차로 9시간 만에 갈 수 있을까?

우선 가장 핵심인 차세대 이동수단인 '하이퍼튜브'부터 봐야 한다. 공기저항을 최소화한 아진공 상태의 터널에 마찰저항을 줄인 자기부상식 열차를 띄우는 형태의 시스템이다.

쉽게 말해 비행기가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고 고속으로 움직이기 위한 성층권 수준의 환경을 땅에 만들어준다고 보면 된다. 

 

하이퍼루프 개념도.[자료 = 철도기술연구원]


다만 하이퍼튜브는 자동차보다 안전하고, 기차와 비행기보다 빠르다. 현재 목표는 시속 1000km 수준이지만, 나 원장은 이보다 더 빠른 속도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철도연은 하이퍼튜브 연구를 추진하고 있으며, 운행 중 극저온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자기부상 열차 핵심기술도 개발했다.

핵심기술은 '자기부상 초전도전자석'을 전 구간에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출발지와 도착지에서 배터리처럼 교체하는 방식이다.

이미 지난 2018년 개발한 최고 수준의 실대형 아진공 튜브가 오송역 인근 철도 종합시험선로 인근에서 실험 중이다.

현재 본원에서는 0.001 기압 축소형 튜브 안에서 캡슐형 열차의 시속을 1,000km 이상까지 올리는 증속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하이퍼튜브열차는 철도의 공기저항과 마찰저항을 최소화하는 기술이다. 엘론머스크가 연구에 불을 지폈고, 한국의 기술은 세계 1·2위를 다투고 있다."

"철도는 도심에서 도심으로 움직이고, 친환경 교통수단인 장점이 있기에 비행기를 대체하는 교통수단으로 하이퍼튜브열차가 실현될 것이다."

"경제성도 우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터널도 기존의 지하철도보다 작고, 항공과 기존 철도와 비교해 에너지효율, 시간과 비용 편익 면에서 경쟁력이 있다."

"세계 최초의 선도 기술이기 때문에 선진국에서 기술제휴 요청이 오고 있다. 하지만 독자 기술이 유출될 우려도 있어 아직 받을 수 없는 상태다."


◇ 국민이 필요한 철도, 어디든 안전하고 편리하게

세계 대륙과 대륙, 도시와 도시 사이를 하이퍼튜브가 잇는다면, 집에서 역사까지는 택시 형태의 미니트램 'PRT(Personal Rapid Transit)'가 담당한다.

승객이 호출하면 목적지까지 무인·자동으로 운행하는 대중교통 열차다. 현재 한국철도기술연구원 내부를 운행하면서 기술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최대 장점은 기존 도로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포장도로 속에 눈에 보이지 않는 자기장 센서로 길을 만들어주면 이를 궤도로 움직인다.

"중·장거리 교통수단을 이용하기 위한 역사까지 집에서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도어 투 도어 연계환승 시스템으로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소형 트램 PRT 모습. 별다른 궤도 없이 도로에 그려진 빨간색 길을 따라 움직인다.[사진 = 철도기술연구원]



PRT와 하이퍼튜브가 단거리와 초장거리 이동을 책임진다면, 중거리 교통수단은 차세대 'HEMU-430X(해무)가 맡는다. 우리 기술로 만든 최고 시속 430km 초고속열차다.

해무는 우리나라에 최초로 열차가 개통한 1899년(경인선)부터 120여년 만에, 프랑스 떼제베에서 KTX 기술을 이전한 1998년부터 20여년 만에 이뤄낸 성과다.

지난 1899년 경인선 기관차(20km/h)에서 1969년 새마을호(100~150km/h), 1977년 무궁화호(120~130km/h), 2010년 KTX-산천(300km/h) 순으로 빠르게 발전해 온 셈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프랑스와 일본,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빠른 고속철도기술을 보유하게 됐다.

올해 정부는 이 성과를 바탕으로 시속 400km급 열차를 실용화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빨라진 속도에 맞춰 열차의 승차감과 안전을 좌우하는 핵심 기술인 대차장치 국산화도 착수했다. 이는 철도선진국이 보유한 핵심기술로, 우리나라가 부족한 분야 중 하나다.

"한국 고속철도와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를 줄이는 핵심기술개발도 병행하고 있다. 특히 안전과 승차감 핵심은 대차인데, 자동차로 비유하면 서스펜션에 해당하는 장치다."

"BMW나 벤츠, 현대의 핵심기술 중 하나가 서스펜션 설계다. 이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조향 성능이나 승차감이 결정되는데, 열차에서는 대차가 그런 역할을 한다."

"해외 선진국에 비해 우리 KTX-산천이 진동과 소음 면에서 아직 2% 부족하다. 이 간격을 채우려면 고속주행이 가능한 선진 대차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앞으로 더욱 승차감 좋고 정숙하면서 탈선하지 않는 안전한 철도가 되도록 더욱 매진하겠다."
 

최고 시속 430km급 차세대 초고속열차 HEMU-430X 모습. [사진 = 국토부 ]


◇ 철도기술 수입국에서 이제는 수출국으로

지난해 3월 오송역 인근에 철도종합시험선로가 완공되면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철도기술 종합 테스트베드를 구축한 국가가 됐다.

이 선로에서는 400여종의 성능검증과 차량·신호·5G 기반 통신설비 등에 관한 실증이 진행된다. 하이퍼튜브기술 등 선도 기술도 이곳에서 성능을 시험하는 중이다.

지난달에는 철도종합시험선로를 싱가포르에 구축하는 5500억원 규모 프로젝트를 한국철도기술연구원과 GS건설이 민관협력으로 수주했다. 이제는 철도기술의 수출국 지위에 오른 셈이다.

"철도종합시험선로는 20여 년간 쌓아온 우리의 철도기술이 담긴 최고의 실증플랫폼이다. 민관이 협력해서 수출한 첫 사례이기도 하다."

"핸드폰에 비유하면 단순 제조국이 아니라 안에 들어있는 안드로이드나 애플OS 등 핵심적인 고부가가치 철도기술의 플랫폼 수출국이 됐다는 의미다."

철도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지위가 높아지는 만큼 국산화도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기술을 수출할 때 국내 기업의 혜택을 더 많이 늘릴 수 있어서다.

"차를 하나 수출하더라도 안에 부품이 외국산이면 결국 외국 기업들이 혜택을 본다. 즉,  우리 기업이 수혜를 받기 위해서는 열차나 시험선로의 국산화가 꼭 필요하다." 
 

싱가포르에 철도기술연구원과 GS건설이 조성하는 철도종합시험선로 개념도.[자료 = GS건설]


현재 한국철도는 KTX-산천의 부품을 대부분 국산화했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차세대 초고속열차 부품도 국산화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올해 정부 출연금 중 16.6%인 41억800만원은 중소기업 지원과 부품 국산화에 쓰고 있다. 기술이전과 연구인력 파견, 시험인증분석 지원뿐 아니라 최근 코로나 19에 대응하는 중소기업 지원도 함께하고 있다.

철도기술 혁신가들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세상을 바꾸는 신교통·물류 패러다임을 열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강조했다. 

"올해는 교통 SOC예산이 사상 처음 철도가 도로를 넘어서는 원년이다. 이를 맞아 '한국철도의 신르네상스 시대'를 열고, 세계 최고 수준의 철도연구기관으로 향하는 혁신과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