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폭동 현장]“숨쉴 수가 없어!" 분노폭발, LA도 약탈 도시로
2020-06-01 09:18
"총소리가 들린다" LA거주 김재범 박사가 보낸 현장상황
백인경찰의 과잉대응으로 흑인남성이 사망한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번졌다. 곳곳에서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이 벌어졌다. 일부 도시에서는 상점 약탈과 방화, 폭동까지 벌어졌고 군 병력이 긴급 투입됐다. 어제(5월 30일, 현지시각) 수도 워싱턴에서는 수천명의 시위대가 백악관과 의회 앞으로 몰려가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규탄했다. 플로이드가 숨진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를 비롯해 뉴욕, LA 애틀랜타, 보스턴 등에서도 시위가 이어졌고 25개 도시에 통행금지령이 내려졌다. 시위현장에서 1400여명이 체포되고 최소 5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긴급한 사태 속에서, LA에 거주하는 한국인(LA 사우스 베일로대학교 한얼연구소 연구위원)이 시위가 거듭되는 현장의 상황을 전해왔다.
▶ 30일 오후 9시28분 총소리가 들린다
총소리가 몇 차례 들리고 헬기와 사이렌 소리가 지금도 들려오고 있다. 저녁 8시(LA 현지시각)부터 전면 통행금지다. 미네소타 경찰의 가혹행위로 숨진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기 위한 시위가 5일째 이어지는 가운데, LA 한인타운 인근 그로브몰 근처에서 시위가 과격해지며, 시위대가 경찰차와 거리에 불을 지르고 일부 상점을 약탈하고 있다는 긴급 뉴스가 전해지고 있다. 코로나사태로 스트레스가 쌓인 미국인들에게 경찰의 가혹행위로 인한 살인이 분노에 불을 지핀 격이다. 문제는 항의시위를 넘어 일부 무리들이 경찰과 무관한 상점에 약탈과 방화를 저지르고 있다는 거다. 인종차별과 극심한 빈부격차에 대한 박탈감이 코로나 사태로 응축되었다가 이번 경찰의 가혹 살인행위로 폭발했다고는 하지만, 무차별적인 폭력과 약탈과 방화는 과연 미국이 정상국가인가를 의심하게 한다. 참으로 걱정이다. 주변의 LA한인들은 1992년의 4.29 폭동의 악몽이 재현될까 우려하고 있다.
코로나로 사망자가 10만명을 넘어도 애도 표시 한번 없는 트럼프는 이번 경찰의 가혹살인행위에도 제대로 된 사과나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항의 시위대를 폭도라고 하며, "약탈하면 총격이 시작된다"며, 군에 동원 명령을 먼저 내렸다. 그게 단호하고 안정된 지도자의 모습이라 다음 대선에 유리할 거라 그런다는 분석이 있는데, 이 미국대통령은 다음 대선 생각밖에 없는 것 같다. 지도자와 공권력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케 한다. 한국이 정말 선진국이다.
▶ 6월 1일 아침 상황
LA 주방위군 투입···한인타운 약탈
어제(5월 30일) 오후 격렬해진 시위로 결국 LA시내에 주방위군이 투입되고, 경찰과 함께 주요 지점에 배치가 되었다고 한다.
1일 아침 일찍 집사람이 관여하고 있는 경비회사의 요청으로 경비원(Security Guard) 복장을 하고, 한인타운의 담당 쇼핑몰을 둘러보고 인근의 다른 몰들을 둘러보았다.
우리 담당 건물에는 홈리스가 주차장 문을 따고 들어와 자고 있고, 한인 타운의 다른 상점들은 밤 사이 여러 곳이 약탈을 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숨 쉴 수 없어" 흑인 플로이드의 절규
코로나 사태와 이번 시위 사태를 겪으면서 미국 사회에 대해 여러 가지를 다시 생각을 하게 된다.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경찰국가 미국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자유주의 시장 경제원리에 기반한 의료민영화는 과도한 진료비용으로 코로나 사태 초기에 저소득층은 아예 검사를 할 엄두를 못 내게 방치를 했고, 트럼프의 오판으로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늦어졌다. 그 결과 거의 200만명에 육박하는 확진자와 10만명이 넘는 사망자를 나오게 하는 세계 최대 코로나 감염국가가 되었다.
이런 가운데 사회적 거리두기와 스테이 홈 기간이 길어지자 일부는 “Sacrifice the Weaks!"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경제활동 제재를 해제하라는 시위를 했다. 어찌 보면 한국인들은 잘 이해하기 어려운 구호다. 노약자들이 희생하더라도 젊은 사람들은 일을 하여 먹고 살게 하라는 것이다. 그들은 코로나로 죽으나 굶어죽으나 마찬가지니 일을 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던 구호가 다시 바뀌었다. 백인 경찰의 가혹행위로 죽어가던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절규다. “I can't breathe!". 이어지는 푸념은 ”코로나로 죽으나, 굶어죽으나, 경찰에 죽으나 마찬가지다. 이제는 이판사판이다. 숨도 쉴 수 없는데, 약탈이고 강탈이고 뭐든 못하겠나“이다. 인종차별과 극심한 빈부격차로 평소에도 상대적 박탈감을 심하게 느끼고 있던 유색인종 저소득층들에게 코로나 사태는 하루하루 삶을 더욱 버겁게 하고 있었는데, 이번 경찰의 가혹행위는 그동안 참아왔던 그들이 분노를 폭발하도록 기름을 부은 겪이 된 셈이다.
코로나 부실대응에 경찰 가혹행위, 분노 폭발
시위가 전국으로 번지며 과격해 지면서 일부 시위대가 인종차별과 경찰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대한 항의라는 시위의 본래 목적을 넘어 약탈을 시작하자, 트럼프는 그들을 폭도로 규정하며 결국 주방위군을 투입했고, 연방군까지 투입을 하겠다고 한다.
약탈과 방화, 무분별한 파괴는 분명 범죄이고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은 폭도가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잡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눌 수 없다. LA 시위대의 인종 구성을 보면 흑인들보다 백인들과 히스패닉계(중남미 출신)가 많아 보인다고 한다.
캘리포니아의 백인들은 진보적 자유주의 성향과 민주당 지지자들이 많아 평소에도 트럼프를 싫어한다. 그래서 정의감과 시민의식이 있는 백인들은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자발적으로 항의한다.
히스패닉들은 얼핏보면 백인과 구분이 안되는 이들이 많다. 남미 출신들은 크게 외관상 두 부류로 보인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계통들은 백인과 외모가 유사하고, 원주민들과 혼혈이 된 메스티조들은 황인종에 가깝다. 물론 흑인과 그 혼혈도 있다.
중·미 대립으로 아시안 혐오 증가
미국에서 인종차별은 전통적으로 흑백갈등이 주를 이루었으나, 요즈음 그 양태가 다양하다. 중미대립과 코로나 사태로 아시안들에 대한 혐오가 많아졌고, 캘리포니아에는 어쩌면 흑인들과 문제보다 히스패닉들과의 문제가 앞으로 더 심각하다. 특히 LA지역 한인들에는 더욱 그러하다.
흑인들의 차별은 역사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제 그들은 대부분이 미국시민권자이고 영어를 구사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 히스패닉은 사정이 오히려 열악하다. 스페인 식민지시대 때부터 캘리포니아에 살던 멕시칸의 후손들은 미시민권자로 영어를 원어로 사용하며, 교육 수준도 상대적으로 높아 삶이 대부분 안정되어 있다.
캘리포니아가 미국 땅이 된 것은 2년 넘게 지속된 미국-멕시코 전쟁 후 1848년 체결된 과달루페-히달고 조약 때문이다. 이 조약은 대표적인 불평등 조약으로 패전국 멕시코는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미서남부 7개주를 미국에 빼앗기고 말았다. 이때 미국 시민으로 편입된 멕시칸들은 대부분이 안정되게 미국에 정착하였다.
문제는 비교적 최근에 미국으로 이주해온 멕시코와 중남미출신들이다. 이들은 불법체류자가 많고 교육수준이 낮고 영어 사용이 어려울 뿐 아니라 문맹자들도 의외로 많다. 이들은 한 집에서 서너 가족이 입주하여 거주하면서 주로 하는 일은 소위 3D 직종이다. 한인 타운에도 궂은 일은 이들이 도맡아 한다. 식당의 주방 설거지부터, 청소회사, 경비회사 종업원들, 이삿짐 센터 일꾼, 새벽 노동시장의 일용직 노동자들이다.
멕시코-중남미 이민자의 '코로나 지옥'
이들은 신분 때문에 코로나 사태로 정부에서 나누어준 생계지원금도 받지 못했다. 합법적 체류 신분을 가지고 세금보고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1인당 $1,200을 받았다. 대부분의 식당과 소매점들, 업체들이 문을 닫자 정부 지원금도 못 받은 이들은 일을 하지 못해 몇 달간 아무 소득이 없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들에게 장기화된 코로나 사태는 정말 힘겨운 것이었다. 정말 굶어 죽기 직전에 처한 이들이 많다. 몇 년 사이 늘어나는 노숙자 대열에 이들이 최근 급격히 끼어든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들은 미국 사회 복지 제도와 경계제도의 사각지대에 처해있다.
한인타운 식당과 청소회사, 정원관리회사, 경비용역회사, 이삿짐센터의 주인들은 거의 한인 동포들이다. 그런데 힘들고 궂은 일은 불법체류 중남미계들이 도맡아 했는데, 일부 한인 업주와 종업원들은 이들을 함부로 대한다. 서로 영어가 안되니 한국말로 반말을 하고 욕설을 한다. 중남미계는 처음 배우는 한국어가 욕설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평소에 마음속으로 한인들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히스패닉들이 많다고 한다. 물론 이들을 가족처럼 따뜻이 대하고 보살펴주는 한인들도 많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형성하는 한인들에 대한 집단적 반감이다. 오늘 아침에 나가보니 어제 약탈에 이들 중 일부가 관여하지 않았나 추측하는 한인들이 많다. 그래서 안타까운 거다.
또 하나 안타까운 것은 LA한인타운의 지리적 위치다.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동남쪽으로는 흑인들이 많고, 서쪽으로는 중남미계, 한인 타운, 유대인들이 많은 행콕팍, 백인 부자 동네인 베버리힐스가 차례로 이어진다.
1992년 4·29 LA폭동도 로드니 킹이라는 흑인이 백인 경찰들에게 무차별 구타를 당했는데, 재판에서 경찰들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그에 항의하는 시위가 촉발이 된 것이었다. 그때도 분노한 흑인들이 시위를 하며 시내로 몰려들며 약탈과 방화를 저질렀는데, 당시 주방위군과 경찰은 방어선을 한인타운과 유태인 거주지인 행콕팍 사이에 구축하여 한인타운은 방어선 밖에 위치하게 되어 시위대의 약탈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던 것이다. 이에 한인들은 자발적으로 무장하여 시위대의 약탈에 맞섰던 것이다.
미국의 이중성과 트럼프 독재, 그리고 현장의 인종갈등
1992년 4·29 폭동 때와 이번 시위는 백인경찰의 흑인에 대한 가혹행위라는 인종차별 이슈로 시작되었는데, 애매한 우리 한인 동포들이 그 틈에 끼여 피해를 보고 있다. 피해를 입은 한인들 사이에는 다시 흑인들과 히스패닉계에 대한 반감이 형성되고 있다. 아침에 대놓고 이들을 욕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정말 악순환이다. 정말 안타까운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거시적으로 보면 일련의 사태는 자유주의 시장경제구조와 의료체계가 낳은 구조적 모순과 경찰국가 미국의 이중성과 취약성에 더한 지도자의 독선 때문에 파생된 것인데, 현장에서는 유색인종끼리, 저소득층끼리 반목과 적대감을 고조시키는 방향으로 사태가 진전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국가 최고 지도자라는 대통령 트럼프는 선거전략으로 이러한 대립을 이용하여 백인 중저소득층의 인종적 편견과 보수적 성향을 더욱 자극하여 자신의 지지층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아, 미국 사회 어디로 갈 것인가? 아메리칸 드림은 악몽이 될 것인가? 그래도 희망이 있을까?
김재범 박사 (LA거주, 엘에이 사우스 베일로 대학교 한얼 연구소(South Baylo University Han Eol Institute) 연구위원, 경북대 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