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비핵화 ‘중국·러시아’ 역할론 부상 속 엇갈린 남·북·러 관계

2020-05-17 14:58
한·러 수교 30주년 기념행사, 코로나19로 준비단계서 일시정지
주한 러시아대사관 "세부일정 논의하는 과정서 무기한 연기돼"
北매체, 중·러시아 관계 연일 강조…"새로운 높은 단계로 발전해"

남북 관계, 북·미 대화의 교착 국면 장기화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속 중국과 러시아의 역할론이 부상하고 있다.

북한이 중국과는 혈맹관계, 러시아와는 전통적인 우호 관계인 만큼 이들 국가와의 친분을 활용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협상 테이블에 앉혀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한반도의 주인이 남과 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중국과 러시아가 한반도 문제에 깊게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북한이 북미 대화는 물론 남측의 각종 협력 제안에 응답하지 않고 대남 비난 목소리를 올리고 있다. 이 때문에 우회적으로 북한과 친분이 있는 중국과 러시아를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올해 한국과 수교 30주년을 맞이한 러시아와의 관계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전 세계를 공포에 빠지게 한 ‘코로나19’라는 변수가 등장해 이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6월 29일 오사카 한 호텔에서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한·러 수교 30주년 행사 준비 전면 중단”

17일 외교가에 따르면 한국과 러시아 양국은 수교 30주년을 맞이해 각종 기념행사를 계획했었다. 이를 위해 양국은 수교 행사 추진 대표단을 구성하고, 수시로 행사 계획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앞서 올해를 ‘한·러 상호교류의 해’로 지정하고, 외교·문화 협력을 확대해 양국의 관계를 한층 발전시키기로 했다.

그러나 현재 양국의 수교 30주년 기념행사 준비는 코로나19 여파로 전면 중단된 상태다. 올 하반기에 추진될 것으로 예측됐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한 가능성도 예측하기 힘들어졌다.

주한 러시아대사관 관계자는 지난 14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한·러 상호교류의 해’의 개막식을 3월 중에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세부 날짜를 확정하기도 전에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했다”며 “세부 일정 논의단계에서 행사가 전면 연기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막식 이외 계획했던 다른 기념행사 준비도 중단된 상태”라며 “언제 재개될지도 잘 모르겠다”고 전했다.

안드레이 쿨릭 주한 러시아대사는 지난 2월 서울 중구 주한 러시아대사관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상호교류의 해 개막식을 조만간 서울에서 개최할 예정”이라며 “러시아 측은 경제·정치·군사·문화·교육·관광·스포츠 분야 등 180여 개 (관련) 행사를 준비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쿨릭 대사는 “(양국) 의회, 중앙 및 지방부처, 학술기관 간 대표단 방문도 활발하게 이뤄질 계획이다. 또 러·한 협력에 관한 포럼, 박람회 등도 예정돼 있다”며 양국 간 활발한 교류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지속된 코로나19 사태로 양국의 교류는 계획 준비 단계에서 멈춰 섰다. 아울러 최근 러시아의 코로나19 상황이 악화했다는 점도 양국 교류 재개 기대치를 낮추고 있다. AFP 통신 등에 따르면 16일 기준 러시아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27만2043명으로 미국, 스페인에 이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019년 4월 2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 섬의 극동연방대학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거리 좁힌 북·중·러…“새로운 높은 단계로 발전”

‘한·러 상호교류의 해’가 코로나19라는 걸림돌에 막힌 사이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에 나서고 있다.

17일 대외 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은 김 위원장이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에게 각각 구두 친서와 축전을 보낸 사실을 언급하며 “조중(북·중), 조로(북·러) 친선은 새로운 높은 단계로 계승 발전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7일 김 위원장은 시 주석에게 코로나19 방역 안정화를 축하한다는 구두 친서를 보냈고, 9일에는 푸틴 대통령에게 제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일 축하 전문을 전달했다.

특히 매체는 지난해 4월 김 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하고 북·러 정상회담이 진행됐다는 것을 거론하며 “두 나라(북·러) 사이의 친선관계를 보다 공고하고 건전하게 발전 시켜 나가는 데서 중요한 의의가 있는 역사적 사변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오늘 조로(북·러) 관계는 전우의 정으로 맺어진 친선의 고귀한 전통을 이어 부닥치는 온갖 도전과 시련을 이겨내면서 두 나라 인민들의 지향과 염원에 맞게 더욱 발전하고 있다”고도 했다.

노동신문 등 북한 관영 매체도 최근 이전보다 친밀해진 북·러 관계를 한층 부각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지난 6일 러시아 정부가 김 국무위원장에게 전승절 75주년 기념 메달을 줬다고 보도했다. 또 지난달 24일에는 러시아 자유민주당 위원장이 김 위원장에게 축전을 보냈다는 사실을 전하기도 했다.

북·러 정상회담 1주년인 지난달 25일에는 “조로 관계는 온갖 시련과 도전을 이겨내며 보다 높은 단계로 강화, 발전될 것”이라며 “두 나라 인민은 지난 1년간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을 뚫고 공동의 이익에 맞게 상호 지지와 협조를 강화해 왔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