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기업 잡아라"…분주한 실리콘벨리, 뒷짐 진 한국

2020-05-11 15:29
구글, 인텔, 엔비디아 등 클라우드·5G·VR 등 기업 인수 활발
M&A 비용 지출 대상 아냐…미래 투자 관점으로 접근해야
스타트업 투자 회수 중 M&A 차지 비중…美 43% vs 한국 3%

[사진=Pixabay제공]

[데일리동방]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면서 언택트(비대면·Untact) 기업들의 활약이 눈에 띈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변화하고 있는 탓이다. 발 빠른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이미 언택트 관련 기술을 보유한 기업을 인수하는 등 언택트 시대의 새로운 비즈니스를 준비하고 있다.

11일 KOTRA(대한 무역 투자 진흥 공사)가 실리콘밸리 기업의 최근(2018년~2019년) 인수합병(M&A) 활동을 검토한 결과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이 1위, 애플이 2위를 차지했다. 이들의 인수합병 목적은 대부분 피인수 기업이 보유한 기술력과 지적재산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주로 클라우드·5G·VR 등 기술기업을 인수했다.

M&A 활동을 분석하면 이들 기업의 사업 방향과 전략 등을 가늠할 수 있다. 구글의 경우 지난해 알루마(Alooma), 루커(Looker), 일래스티파일(Elastifile)을 인수하면서 클라우드 서비스에 집중했다.

알루마는 데이터 마이그레이션 부문 강점을 가진 기업으로 구글이 확보한 인공지능 기술과 연결돼 클라우드 서버에서 빠르고 안전하게 데이터를 전환할 수 있도록 돕는다. 루커는 빅데이터 분석 업체로 구글이 사용자에게 효율적이고 시각화된 데이터 분석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며, 일래스티파일은 클라우드 저장기술 강자로 구글의 데이터 저장용량을 확대하고 연산 능력을 강화시켜준다.

애플은 지난 4월 가상현실회사 넥스트VR(NextVR)을 인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넥스트VR은 스포츠(NBA, Fox Sports, Wimbledon 등), 엔터테인먼트 업체와 파트너십을 맺고 실시간으로 가상현실경험을 제공하는 업체다. 애플은 1억달러 선에서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알파벳과 애플의 기업 인수 목적 중 기술 스타트업 인수 비중이 가장 높다.[사진=KOTRA 제공]

이처럼 기업을 인수해 새로운 기술을 확보하는 것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특징이다. 기업 규모가 커지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자체 연구개발(R&D)에 따른 시간과 비용 등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 관련 기술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인텔과 엔비디아가 언택트 서비스 강화 관련 M&A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텔은 '로보택시', 엔비디아는 데이터센터 솔루션 사업 인수에 나섰다.

인텔은 자율주행 '로보택시' 분야 역량 강화를 위해 교통 환승 스타트업인 무빗(Moovit)을 9억달러(약 1조1000억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무빗은 2012년 설립된 이스라엘의 대중교통, 자전거, 스쿠터 서비스, 호출 서비스, 카셰어링 등을 결합해 복합 이동 서비스를 제공하는 도시 모빌리티 애플리케이션이다. 전 세계 102개국 3100개 이상의 도시에서 교통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인텔은 2030년까지 총 2300억달러 이상의 기회를 제공하는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데이터, 서비스형 모빌리티(MaaS) 기술의 급성장하는 새로운 시장을 위해 투자하고 확장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오픈소스 기반의 데이터센터 네트워크 소프트웨어 최적화 솔루션 기업 큐물러스 네트웍스(Cumulus Networks)인수를 결정했다고 지난 7일 밝혔다. 큐뮬러스는 이미 엔비디아가 69억달러에 인수한 멜라녹스와 2013년부터 파트너십을 맺고 협업 중인 오픈스택 에코시스템의 주요 사업자다.

엔디비디아는 멜라녹스와 큐물러스를 통해 스프트웨어 관련 역량을 확대하고, 가속 컴퓨팅과 소프트웨어 정의 데이터센터 분야에서 입지를 한층 강화할 방침이다. 앞서 엔디비디아는 멜라녹스를 인수하면서 데이터 센터의 업무부담을 최적화해 인공지능기술 발달에 따라 급증하는 데이터센터 수요를 해결하고, 인공지능이 요구하는 고성능컴퓨팅 시장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지현 미국 실리콘밸리 무역관 스페셜리스트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눈앞에 있는 현재,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선도기업들은 경쟁력 확보를 위해 거침없이 신기술을 인수하고 기존의 사업과 시너지효과를 이루며 지속적인 성장의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국내 상황은 다르다. 국내도 중소기업·벤처기업 업계에 대한 투자금 규모가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투자금에 대한 회수가 막혀 투자 선순환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선순환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로 M&A 시장이 전무한 점을 꼽았다. 투자금 회수 방안으로 M&A가 있지만, 이를 활용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아산나눔재단과 구글스타트업캠퍼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등이 함께 발간한 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스타트업 투자 회수 방식 중 M&A가 차지하는 비중은 43%에 이르렀지만 한국은 3%에 그쳤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도 "코로나가 만든 전 지구적 언택트 실험은 클라우드와 인공지능화되는 세계를 확인시켜주고 있다"며 "다만 국내 기업들은 뛰어난 기술과 자금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전략적 의사 결정에서 미국 기업들에 비해 뒤쳐져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지현 스페셜리스트는 보고서를 통해 “대다수 전문가는 우리나라에서 건강한 창업생태계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실리콘밸리와 같이 대기업들이 혁신적인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적극적으로 투자, 유치, 인수하는 M&A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고 지적한다”며 “ 이를 위해서는 M&A를 단순히 비용 지출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투자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국내 기업들도 M&A에 대한 가치관을 재정립하고, 미래를 대비한 전략적인 기술 인수로 경쟁력을 제고하고 사업의 다각화를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