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는 우리 몸 속 여행 유전자를 못 꺾는다 ②

2020-05-01 09:33
북클럽 '지중해 오디세이' 20

 

 
 
 
    

[지중해 오디세이 20]
코로나는 우리 몸 속 여행 유전자를 못 꺾는다 ②
방구석 여행으로 DRD4 7r 달래 온 옛 사람들


‘와유(臥遊)’는 눕거나 엎드려서 좋은 산수화나 산수시첩을 보면서 DRD4 7r의 충동, 여행 욕구를 채우는 오래된 동양 습속이지요. 한 글쟁이가 모아놓은 와유에 대한 글에는 중국 남송 때 사람으로 서화를 좋아했던 종병(宗炳)이라는 사람이 늙고 병들어 명산을 두루 다 편답하지 못하겠다며, 예전에 구경했던 것들을 그려서 방에 붙이고는 누워서 유람한 데서 와유라는 말이 비롯됐다고 나옵니다.

서양 사람들은 와유를 ‘소파 여행(travelling on couch)’, 혹은 ‘침대 여행(traveling on bed)’이라고 한다 해서 검색을 해봤더니 “코로나 시대에 여행 욕구를 달래려면 소파에 앉거나 침대에 누워서 여행을 주제로 한 영화를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며 작년에 한국에서도 상영한 ‘그린북’ 같은 영화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몇 매체는 코로나가 오래 가자 ‘방구석 여행법’이라는 기사를 다뤘는데, 와유와 소파 여행을 묶은 조어(造語)입니다.

영화는 물론 제대로 된 시화집을 접할 수 없었던 옛 사람들은 나그네에게서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여행 욕구를 해소했습니다.

<크레타 섬의 꽤 큰 마을에 사시던 내 외조부에겐 매일 저녁 등불을 들고 거리를 다니면서 혹 갓 도착한 나그네가 없나 찾아보는 버릇이 있었다. 있으면 집으로 데려와 맛있는 음식과 술을 대접하고는 안락의자에 앉아 길쭉한 터키식 장죽에 불을 붙이고서 나그네(이제 밥값을 할 때가 된)를 내려다보며 지엄한 분부를 내리는 것이었다. “말하소!” “무슨 말을 하라는 겁니까, 무스토요르기 영감님?” “자네 직업이 뭣이며, 자네 이름이 무엇이며, 어디에서 왔는지, 자네가 본 도시와 마을이 무엇 무엇인지 깡그리, 그렇지, 깡그리 이야기 해 주게. 자 말을 해보소.” 이렇게 되면 나그네는 있는 말 없는 말, 겪은 일 안 겪은 일을 되는대로 주섬주섬 주워섬겼고, 외조부는 안락의자에 편히 앉아 장죽을 문 채 귀를 기울이며 이 나그네를 따라 여행길로 나서는 것이었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 사람 조르바>에서 읽은 구절입니다. 그가 세계의 나그네로 여행을 많이 하고 여행 작가로도 이름이 높아진 건 어릴 때부터 외조부 옆에서 나그네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 조부님 사랑방에도 과객이 끊이지 않아 숙모님들이 그분들을 대접할 독상(獨床)을 차려내느라 힘들어 하시던 걸 기억하는데, 나는 그동안 뭐 하느라 이제야 여행기를 쓰고 있나, 그것도 남의 글을 짜깁기한 저급한 와유기라니!

“굳이 여행을 해서는 뭐 하나”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꽤 있습니다. 1884년에 출간된 J.K. 위스망스(1848~1907, 프랑스)의 기묘한 소설 <거꾸로(유진현 옮김, 문학과 지성사)>의 주인공 데 제생트 공작은 찰스 디킨스의 소설에 나오는 런던 구경이 하고 싶어 파리를 떠납니다. 하지만 런던 행 배를 타기 직전에 갑작스런 비(런던에는 매우 자주 내리는)를 맞고, 부근 술집에 들어갔다가 런던에서 왔거나 떠나려는, 왁자지껄한 런던 사람들을 잔뜩 봅니다. 공작은 순간, “런던에 가면 뭐 하나, 여기서 다 경험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에 발길을 돌립니다. 아는 거 많고 글 잘 쓰는 스위스 사람 알랭 드 보통(1969~ )은 자신의 여행기 <여행의 기술>에서 데 제생트 공작이 여행을 포기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여행을 기대하면서, 그 과정에서 우리가 어떤 장소를 상상하는 것과 실제로 그곳에 도착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 사이의 차이에 대해서 매우 염세적인 분석을 했다”라고 썼습니다.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는 여행을 많이 했고, 여행을 하면서 본 것, 만난 사람들, 이국의 풍속을 소재로 많은 시를 썼고, 여행 자체를 찬양하는 <여행에의 초대>라는 시도 남겼지만, <여행>이라는 시에서는 “우리는 별들을 보았지/ 파도도 보았지, 모래도 보았지. 그러나 수많은 위기와 예측 못 했던 재난에도 불구하고/우리는 자주 따분했다네, 여기서와 마찬가지로”라며 “여행? 해봤자 그저 그렇지 뭐”라는 생각을 비칩니다.

중국의 옛 시인 소동파의 시에도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게 있습니다. <여산의 는개비와 절강의 조수를 廬山煙雨浙江潮/ 못 가본 때는 천 가지 한이 적지 않더니 未到千盤恨不少/ 가서 보고 돌아오니 별 거 없더라 到得歸來無別事/ 여산의 는개비와 절강의 조수일 뿐이더라 廬山煙雨浙江潮>

“여산과, 절강의 조수는 천하의 명승이요 절경인데,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이미 머리와 마음속에서 수도 없이 다녀왔기 때문이다. 가서 보니 과연 내 생각과 같더라는 감탄을 소동파는 이렇게 표현했다. 그곳이 별것 아니라거나 여행이 무의미하다고 말한 게 아니다”라는 설명도 있습니다만 나에게는 “가서 보고 돌아오니 별 거 없더라”라는 구절이 글자 그대로 다가옵니다. 시적 상상력, 시적 감수성이 이것밖에 안 되니 어릴 때 조부님 사랑방에 머물던 과객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코로나19는 극복될 겁니다. 여행은 다시 시작될 겁니다. 우리 몸속의 여행 유전자 DRD4 7r은 수십만 년 동안 우리 몸을 거듭 거듭 침공해온 된 병균, 세균, 박테리아, 바이러스를 물리쳐왔습니다. 이번에도 그럴 겁니다. 그때까지는 와유든 침대 여행이든 방구석 여행이든 취향에 맞는 방법으로 여행 욕구를 달랩시다. 나는 페이스북에서 만난 친구들이 보내준 사진으로 그러겠습니다.

(사진은 크로아티아에서 허환 씨가 찍은 현지 해변 풍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