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가 기회다-①삼성] 글로벌 삼성 만든 이건희의 '패러독스 경영'
2020-04-20 07:00
1993년 반도체 호황때 위기론 설파
외환위기에 능동적 혁신으로 전화위복 계기 마련
외환위기에 능동적 혁신으로 전화위복 계기 마련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되고 지금처럼 잘해봐야 1.5류입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꿉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취임 5년째인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 호텔에서 임원 200여명을 모아놓고 설파한 신경영 선언 중 일부다.
이 같은 이 회장의 '위기론'을 바탕으로 한 신경영은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선 이후, 지금까지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 각 분야에서 견고한 1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꼽힌다. 삼성이 1997년 외환위기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도 위기를 준비했던 ‘이건희 리더십’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이 회장이 강하게 밀어붙였지만 신경영이 하루아침에 자리 잡은 것은 아니다. 이 회장은 1993년 당시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간 프랑크푸르트, 영국 런던, 일본 도쿄와 오사카 등에서 총 48회 350여시간에 걸쳐 임직원 1800명을 대상으로 강연했다. 이 내용을 정리한 강의록만 8500쪽에 달했다. 그만큼 이 회장은 절박하게 변화를 부르짖었다.
당시 분위기는 이 회장의 위기론이 과하다고 생각하던 임직원이 대다수였다. 1994년은 삼성전자가 반도체 산업 호황에 힘입어 국내에서 처음 ‘조’ 단위의 이익을 실현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회장의 혜안이 있었기에 삼성은 곧이어 다가온 외환위기에서 신속하게 생존전략을 구사할 수 있었다.
삼성은 외환위기 당시 적자사업과 저부가가치, 비핵심사업을 대부분 정리했다. 1997년말 59개였던 계열사는 1년 만에 40개로 줄어들었을 정도다. 삼성중공업의 건설기계부문, 지게차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연 1000억원의 이익이 나던 경기 부천 반도체 공장을 매각하기도 했다.
이 덕분에 위기는 기회가 됐다. 품질경영은 자리 잡았고, 세계 1위에 도전할 수 있는 삼성계열사만 남으며 그룹의 역량이 강화됐다. 1997년 296%였던 부채비율은 2000년에는 66%로 크게 내려갔고, 1999년에는 삼성전자의 모든 해외 사업장이 흑자를 기록했다. 2000년에는 6조원의 당기순이익을 내며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신경영을 통한 위기 극복은 코로나19에도 적용된다. 사태의 장기화로 삼성은 외환위기 이상의 도전에 직면했다. 이 회장식 위기 관리가 삼성에 절실하다는 뜻이다.
송재용 서울대 교수는 본인의 책 <삼성웨이>에서 “대부분 기업 혁신은 위기가 현실화한 이후에 실현되지만, 삼성의 신경영은 위기가 도래하기 이전에 대비하는 성격이었다”며 “예견된 위기가 1990년대 중반 이후 현실화했을 때 오히려 혁신이 능동적으로 이뤄져 큰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