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1000년 '무라샤카이(村社會)' 생존법칙에 이유 있었다

2020-04-17 06:00
[노다니엘의 일본 풍경화] (8)

[노다니엘]

[노다니엘의 일본 풍경화] 역사가 강요하는 인내

일본 역사상 최장기 총리를 지내고 있는 아베 신조에게 위기가 닥치고 있다. 일본 보수언론의 대표인 요미우리신문의 4월 12일 조사에 따르면, 아베의 지지율은 42%, 비지지율은 47%이다. 지지율이 떨어진 가장 큰 원인은 코로나 사태에 대한 대응이 너무 둔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리즈의 전편에서도 지적하였듯이, 총리관저에서 후생성의 의무기감 등 관계자들이 모여 회의를 거듭한 것이 이미 작년 12월부터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늦은가?

이 소식을 접하며 떠오르는 추억이 하나 있다. 2011년에 교토에 있는 일본의 어느 국립연구소에 초빙연구원으로 있을 때였다. 서울의 Y대학교 K교수가 추가로 오게 되었다. 1년간 일본대학 교수에 준하는 월급을 받게 되어 있었고, 연구소는 우체국 통장을 마련하라는 것이었다. 인근의 우체국으로 가서 계좌를 개설하려고 하니, 카운터에 있는 여자 직원이 K교수의 신분상 어렵다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물어보니 명확히 대답을 못하고 시간이 경과하자 쩔쩔매며 사과를 한다. 그 뒤에 있는 중간관리자가 나오더니 반응은 마찬가지이다. 이유가 무엇인지 확실하다면 돌아서겠는데 그것도 아니니, 우체국장에게 항의를 하였다. 그러자 아주 드문 경우여서 자기로서는 결정을 못한다며 늙수그레한 우체국장도 고개를 숙인다.

결국 한 시간 동안 실랑이를 하며 통장을 개설하지는 못하고 수십번의 사과를 듣고 돌아섰다. K교수는 분노하였지만, 일본을 30년 경험한 내겐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스마트폰에서 간단히 보낼 수 있는 금액을 일본의 은행에서 이체하려면 최소한 30분 정도는 소요되며, 그 과정에서 마치 범죄를 통해 얻은 금전이 아닌가 하는 신문을 받아야 한다.

내가 아는 일본이라는 사회는 수많은 규칙들이 얽혀 있는 거대한 거미줄이다. 이 규칙들은 대부분 법적으로 정해져 어딘가에 공식적으로 인쇄되어 있다. 단칸방을 하나 얻어도 부동산업자는 마지막에 계약서의 뒷면에 있는 깨알 같은 글씨를 모두 낭독하며, 이를 듣기를 거부하고 나오는 사람은 없다.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런데 한국문화에 익숙한 사람에게 더 힘든 것은 관행(慣行)적 규칙들이다. 이를 가리키는 일본의 어휘들이 데준(手順), 단도리(段取り), 데쓰즈키(手続), 하코비(運び), 야리카타(やり方), 스스메가타(進め方) 등이다. 이러한 관행적 규칙들을 사무적으로 정형화한 것이 링기(稟議)와 겟사이(決裁)이다(이들 어휘와 관행의 많은 것들이 한국에서 지금도 그대로 쓰이고 있다. 한국의 조직에서 오늘도 품의를 돌리고 결재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사결정 과정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비공식적 내지는 음성적으로 협의 또는 로비를 하는 것은 ‘네마와시’라고 한다. 네마와시(根回し)의 사전적인 의미는 나무를 옮겨 심기 전에 뿌리가 다치지 않도록 잘 싸두는 것인데, 사회생활에서는 이해관계자들의 사전협의를 말한다. 접대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 네마와시가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요정일 것이다. 일본의 정치가들이 저녁 때 요정에서 만나 담화를 나누었다는 것은 언론보도의 일상적 표현이다.

이러한 사회문화가 오랜 기간을 통하여 정착되었다면, 그것이 왜 유독 일본에서 가능하였을까? 그 대답은 사회인류학적으로 설명해야 할 것이다. 내 돈으로 우편저금통장 하나 만드는 데 한 시간을 허비하고 결국 모르는 사람에게 사과만 잔뜩 받고 돌아섰다면, 우리말로는 ‘정말 돌아버리겠네’이고 영어로는 ‘freak out’이다. 그러면 왜 일본사람들은 돌아버리지 않는가? 참는 것이 제2의 천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참는 데는 지지 않을 것 같은 한국인보다 훨씬 능가하는 일본인의 인내심은 오랜 생존환경에서 형성된 것이다.


자연이 빚은 DNA

무엇보다 자연조건이 다르다. 일본의 자연은 한국인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험악하다. 한반도에서 표고 2000m를 넘는 산이 백두산을 포함하여 북한에 50여개가 있고 남한에는 없는데, 일본에는 824개가 있다. 옛날 인간의 체력이 지금만 못했을 때에는 높이 1000m가 넘는 산을 넘어 이주를 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한반도 면적 22만㎢의 1.7배인 38만㎢의 땅이 여러 섬으로 갈려 수천개의 1000m가 넘는 산이 들어차 있는 것이 일본의 자연적 조건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근대 이전의 일본에서는 인간이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산에 둘러싸인 마을에서 태어나 수십년을 살다가 세상을 떠나는 것이었다. 이러한 환경에는 익명성이 없다. 객지에 가서 허세를 부리거나 싸움을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만약 마을에서 질이 떨어지는 무라하치부(村八分)로 손가락질을 받는다면 평생 차별을 받아야 한다. 일본의 드라마에서 남녀가 눈이 맞거나 새로운 일을 위하여 다른 마을로 도망가서 성공하는 스토리는 없다.

이것이 사회학에서 일본을 설명하는 데 기초개념인 ‘무라샤카이(村社會)'이다. 이 사회는 ‘촌스럽다’는 의미가 아니고, 인간의 생존과 행동 패턴의 기본적 결정단위라는 것이다. 일본의 지리적 조건은 산이 많은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빈발하는 지진, 4개의 큰 섬을 포함하여 4000개 이상의 섬으로 구성되는 열도를 수시로 위협하는 해일·홍수·가뭄 등 일본열도는 그야말로 자연재해의 박물관이다.

이런 자연조건 속에서 수천년을 살아온 일본인에게 형성된 가장 큰 특징은 참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에서 집단노동으로 벼농사를 해서 먹고 살며 평생을 같이 보내야 하는 수십명 내지 수백명의 마을 사람들이 서로 단합하고 사이좋게 지내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 생존의 법칙이었다. 이는 얼핏 보면 ‘집단주의’라는 인상을 주지만, 내용적으로는 ‘규범합치성(norm conformity)'이다. 생존의 법칙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오랜 시간을 거쳐 가치체계를 공유하게 된다. 말을 바꾼다면, 공통의 행동규칙에 따라 산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일본인들이 행동거지가 비슷하고 개성이 없어 보이는 연유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일본인들이 잘 쓰는 표현에 ‘튀어나온 말뚝은 두들겨맞는다(出る杭は打たれる)'는 말이 있다. 한국의 표현으로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이다. 잘난 척하거나 집단의 룰에 따르지 않는 인간은 당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연적인 조건에 따라 형성된 규범합치주의를 더 강하게 만든 또 하나의 중요한 환경이 있었다. 일본열도가 수많은 ‘구니(國)'로 나뉘어져 각 구니를 무사계급이 지배하던 봉건제도가 오랫동안 있었다는 것이다. 794년에 시작된 헤이안(平安)시대에서 1867년의 메이지유신까지의 긴 기간에 일본에서는 칼 찬 사무라이(士)들이 나머지 직업을 가진 평민(農工商)과 그 이하의 천민들을 지배하였다. 이 시기의 큰 특징 중의 하나는 검을 휴대한 사무라이들이 평민이나 천민을 즉결처분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생사여탈권이 남용된 것은 아니었지만 사회심리적으로 생존을 결정하는 내용까지 포함하는 위계질서가 1000년 이상 지속되었던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의 가장 큰 의미는 일본에서 시민혁명이 한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일본의 근대를 연 메이지유신(維新)은 기존질서를 뒤엎는 혁명이 아니라 기존질서를 변혁하거나 새롭게 하는 것이었다. 서구권에서 이 사건을 Meiji Restoration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통치권이 무사계급에서 황족으로 복원(restore)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명색이 선진국인 일본에서는 한번도 시민계급이 기존의 질서를 뒤엎은 혁명이 없었던 것이다. 이는 한국인의 정치적 경험과 큰 대조를 이룬다. 현행의 헌법 전문은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했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국의 헌법은 “일본국민은 ··· 우리 나라 전역에 걸쳐 자유가 가져다주는 혜택을 확보하고, 정부의 행위로 인해 다시는 전쟁의 참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을 결의한다"는 전문으로 시작한다. 요컨대 한국의 헌법이 불의한 것에 대한 항거와 타파를 강조한 반면, 일본의 헌법은 자유에 대한 희구와 전쟁범죄에 대한 반성을 강조한 것이다.


전후의 ‘평화치매’

기나긴 역사를 통하여 시민의 손으로 기존질서를 바꾸어 본 적이 없는 일본에서 혁명이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게다가 전후의 질서는 적이었던 미국이 보장해주는 평화(Pax Americana)에 안주해 온 것이었다. 이러한 사회에서 한국에서 보는 4·19의거, 5·16군사정변, 광주민주항쟁, 촛불시위, 태극기부대 등의 격렬한 시민운동은 일본인의 역사적 DNA에는 아예 등록이 될 수 없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었던 광우병사태의 원인이었던 미국의 쇠고기는 일본에서 더 많이 소비되었으나 사소한 항의조차 없었다.

미국이 보장하는 국제체제 속에서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여 크게 부유하지는 않지만 의식주에 부족함이 없이 사는, ‘지금 그대로가 좋아’라는 소박한 표현에 잘 담겨 있는 일본인의 ‘작은 평화(小さな平和)'에 대한 희구는 전후에 평화치매(平和ボケ)라는 비판적 용어에 잘 담겨 있다. 여기서 ボケ란 흔히 치매를 가리키는 어휘인데, 한자로는 呆け 또는 耄け이다. 둘 다 판단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呆け는 포대기에 싸인 아이를 지칭하는 말이고 耄け는 90대의 노인을 말한다. 이 표현이 가리키는 상황은 전쟁이나 안전보장에 관한, 자국을 둘러싼 현상이나 세계정세를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하지 않고, 다툼 없이 평화로운 일상이 계속 된다는 환상을 말한다.

기나긴 역사 속에서 한번도 시민의 집단적 행동으로 정치질서를 바꾼 적이 없는 일본에서 1955년에 만들어진 자민당이 오늘날까지 6년여의 예외를 빼고 계속 집권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자민당의 실권을 예측하는 정치평론가는 없다. 아버지가 외무대신이고 외할아버지가 총리였던 덕에 총리가 된 아베 신조라는 정치가가 전 세계를 위협하는 코로나19 사태에 대응이 늦어도 이에 항의하여 대학생들이 데모를 하거나, 도쿄시내에 모여 일본국기를 들고 무언가 하라고 외치는 사람들은 없다.

이러한 풍경은 오늘을 사는 한국인에게 매우 이질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일본인이 볼 때 한국인이 매우 이질적인 것이다. 그들이 볼 때는 많은 비용과 노력을 들여 대통령을 뽑아놓고 다시 그 대통령을 내쫓거나 자살하게 하거나 감옥에 가두거나, 심지어 총으로 암살하는 한국사회가 이해가 안 간다.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대응에 있어 한국은 지금 세계의 교과서로 부각되고 있다. 그 반면에 일본은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이를 우열의 시각에서 볼 수는 없다. 두 나라의 수도는 비행기로 두 시간 거리이다. 그러나 두 나라 국민의 역사적 DNA의 거리는 그 수십배일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는 가운데 마스크를 쓴 직장인들이 14일 오전 일본 도쿄도 미나토구 소재 JR 신바시역 앞을 걷고 있다. [도쿄= 교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