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회계부정 스캔들]사기꾼인가 희생양인가

2020-04-14 06:05
조작 의혹 인정·부인 사례 잇따라
中기업 불신 키워 이익 도모하기도
덩치 불리기보다 수익성 입증 중요

[그래픽=이재호 기자]


지난 2일 '중국판 스타벅스'로 불리던 루이싱(瑞幸)커피의 회계 조작 사실이 드러난 뒤 일주일 새 미국 증시에 상장한 중국 기업 3곳이 추가로 회계 부정 의혹에 휩싸였다.

루이싱커피와 중국 1위의 온·오프라인 교육기업 하오웨이라이(好未來)는 회계 부정을 부분적으로 인정했고, 중국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인 아이치이(愛奇藝)와 또 다른 교육기업 건쉐이쉐(跟誰學)는 의혹을 부인했다.

이들 기업은 주가와 신용도가 추락하고, 최악의 경우 상장 폐지될 위기를 맞았다. 핀둬둬(拼多多·전자상거래)와 비리비리(嗶哩嗶哩·종합 콘텐츠 플랫폼), 더우위(斗魚·생방송 스트리밍) 등 다른 정보기술(IT) 상장사도 비슷한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중국 기업의 관행적인 회계 부정이 재확인됐다는 비판과, 미국 증시가 폭락한 틈에 중국 기업에 대한 불신을 부풀려 이익을 챙기려는 공매도 세력의 음모라는 반론이 공존한다.

창업 초기 기업공개(IPO)로 덩치를 불리는 데만 집착하고 수익성을 명확히 입증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회계 부정의 유혹에 빠지거나 공매도 세력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中기업 불신 증폭에 작심 공격

14일 중국신문주간과 제일재경, 21세기경제보도 등에 따르면 미국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과 공매도 세력 간의 '회계 부정' 진실 공방이 격화하고 있다.

지난 1월 말 투자정보 제공업체인 머디워터스가 익명으로 발표한 89쪽 분량의 보고서가 발단이었다.

이 보고서는 1500여명의 인력을 동원해 981영업일 동안 루이싱커피의 620개 지점 영업 현황을 조사한 결과 매출액 각종 지표의 조작과 비즈니스 모델의 근본적 결함이 드러났다고 폭로했다.

루이싱커피는 사실 무근이라고 버티다가 지난 2일 22억 위안(약 3800억원) 규모의 매출 조작 사실을 시인했다.

이후 지난 7일 아이치이와 하오웨이라이, 8일 건쉐이쉐의 회계 조작 의혹이 잇따라 불거졌다.

하오웨이라이는 일부 직원이 외부 공급업체와 짜고 계약을 조작하는 식으로 2020회계연도 총매출의 3~4%에 해당하는 매출액을 조작했다고 자인했다.

루이싱커피 사태로 중국 기업에 대한 불신이 확대되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실직고를 한 셈이다.

반면 아이이치는 공식 성명을 통해 의혹을 부인했다. 궁위(龔宇) 아이치이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사도는 정도를 이길 수 없다. 최후에 누가 이기는지 보자"는 글을 남기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천샹둥(陳向東) 건쉐이쉐 창업자 겸 회장도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의 경영 행위와 실적 지표는 신용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조작·과장한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이번 회계 부정 스캔들과 관련해 미국 공매도 세력이 중국 기업에 대한 불신을 일부러 키우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루이싱커피와 하오웨이라이의 비리를 폭로한 머디워터스와 아이치이를 공격한 울프팩, 건쉐이쉐의 회계 조작을 고발한 그리즐리 등은 기업 비리를 파헤친 뒤 적절한 시점에 이를 폭로해 공매도로 시세 차익을 올리는 기관투자자다.

미국 증시의 중국 상장사와 공매도 세력 간의 악연은 하루이틀 된 문제가 아닌데 올해는 공세 수위와 범위가 확대됐다.

톈쉬안(田軒) 칭화대 우다커우금융학원 부원장은 "최근 미국 증시가 약세장을 보이고 3월에는 네 차례나 대폭락하며 투자 심리가 얼어붙었다"며 "이럴 때 루이싱커피의 회계 부정으로 중국 기업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자 공매도 전략을 적극적으로 구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공매도 전략이 성과를 거두면 더 많은 기업이 공격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중국신문주간은 "최근 3년간 미국에서 상장한 중국 기업은 80여곳에 달한다"며 "상장한 지 2~3년 지난 신생 기업을 공매도 타깃으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치이와 루이싱커피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 매체는 "2018년 상장한 핀둬둬와 비리비리, 지난해의 더우위와 완다스포츠 등도 비슷한 사례"라며 "이들 기업은 유망 기업으로 분류되지만 매년 손실이 발생해 회계 조작 의혹에 휘말릴 공산이 크다"고 덧붙였다.
 

[사진=루이싱커피 홈페이지]


◆사업성·수익성 입증이 최선

다만 공매도 세력의 공격에 타격을 입는 기업은 일부일 뿐 중국 기업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확대될 것이라는 낙관론도 있다.

홍콩에 본사를 둔 기관투자자로 공매도 전략도 구사하는 스노우레이크캐피탈의 마즈밍(馬自銘) 최고경영자(CEO)는 "(루이싱커피 등) 최근의 조작 사건은 극히 일부의 사례"라며 "미국 내 중국 상장사에 실질적인 손해를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차례 공매도 파동을 겪으며 경영 정보 투명성에 대한 중국 기업들의 인식도 향상됐다.

21세기경제보도는 "알리바바를 비롯해 신둥팡(교육), 웨이핀후이(전자상거래), 왕이(포털) 등이 선전하면서 중국 기업에 대한 평판이 나아지고 있다"며 "회계 조작 등의 현상도 점차 줄어드는 추세"라고 보도했다.

신뢰를 되찾고 공매도 타깃이 되는 걸 피하려면 사업성 및 수익성을 명확히 입증하는 게 우선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사업 손실이 계속되면 IPO로 자금을 유치하거나 주식담보대출을 받아 자본 운용 수익으로 벌충하려는 유혹에 빠진다"며 "이런 기업은 회계가 불투명하고 조작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아 공매도 세력의 공격 대상이 되기 쉽다"고 지적했다.

톈 부원장은 "미국 내 중국 상장사에 중요한 건 내부 심사·통제를 강화해 루이싱커피와 같은 사례를 방지하는 것"이라며 "특히 사업 모델에 대한 의구심을 지우고 기업 가치가 실력에 비해 과도하게 높아지는 걸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