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코로나로 엇갈린 세계 지도자들의 운명

2020-03-23 18:09

[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


무서운 기세로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대부분 국가 지도자들에게 크나큰 시련을 안겨주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초기에 이 전염병의 파괴력을 과소평가하고 안일한 대응을 했다가 사태가 급격히 확산되면서 큰 비난에 직면하고 있다. 경제 호황으로 재선을 자신하던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엄청난 악재가 되어 잘못하면 11월 선거에서 패배할 수도 있는 지경에 놓이게 되었다. 자신의 임기 중 기록적으로 올랐던 주가는 이제 임기 전 수준으로 폭락했고, 미국 경제는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유럽의 지도자들도 초기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다가 이제 상황이 엄청나게 악화되는 상황에서 많은 시련을 겪고 있다. 피해가 가장 큰 이탈리아뿐 아니라 희생자가 계속 증가하는 인근 스페인, 프랑스에서도 정부 당국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증폭하고 있다. 유럽 역시 경제는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고 시민들의 공포는 날로 커지고 있다. 유럽 통합의 상징인 자유 통행의 원칙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각국은 빗장을 걸어잠그며 주변국을 경계하고 있다. 시민들의 희생과 불편이 가중될수록 정치권에 대한 반감은 더욱 확산될 것이다.

최초에 이 바이러스가 발병한 중국의 상황은 아직 가변적이다. 초기에 중국 정부의 대처가 소극적이었고 느렸기 때문에 문제가 악화되었다는 점에서 당국의 책임은 면할 수 없다. 게다가 처음부터 이 전염병의 위험성을 경고한 의료진에게 압력을 가하고 이들을 침묵시킨 점은 크나큰 실책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나마 공격적으로 발병 도시인 우한 및 인근 후베이 성을 봉쇄하고 신속하게 임시 병동을 건설하고 모든 의료 자원을 총동원하여 사태를 진정시킨 점은 인정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사태가 완전히 끝났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중국 당국의 발표에 대한 신빙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기 대응 실패로 비난 받던 시진핑 주석이 이를 만회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는 점은 문제가 된다. 중국 당국은 관영 언론을 동원해 시 주석의 대처 능력을 칭송하고 있지만 한 번 금이 간 그에 대한 신뢰감이 쉽게 회복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이 초기 발병국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번 사태로 시 주석의 지도력은 큰 타격을 받을 것이고 어쩌면 그의 장기 집권 계획에도 차질을 빚게 될 것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찬반이 교체되는 상황이다. 외부에서는 한국 정부의 발 빠른 대처에 대체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내리는 반면, 국내 내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중국인들의 입국을 초기에 막지 않은 점에 대해 공격하고 있다. 외부의 긍정 평가는 주로 신속한 테스트, 철저한 확진자 추적 및 격리,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에 기인한다. 그러나 사태가 막 확산하려는 시점에 문재인 대통령이 상황이 곧 끝날 것이라는 안일한 발표를 한 점이나 우리도 부족한 마스크를 해외에 수출하고 지원했던 점 등은 정부의 큰 실책으로 평가된다. 향후 이 바이러스의 진행 및 이에 따른 피해 여부, 정부의 대처 등은 다음 달 국회의원 선거에서 큰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보면 유럽·미국 등 서방 사회가 현재 더 큰 희생자를 보이는 반면, 최초 발병지인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는 사태가 진정되고 있고 이에 따라 이 지역 지도자들은 상대적으로 덜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다. 특히 홍콩·싱가포르·대만 등이 성공적으로 바이러스에 대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고, 그에 따라 이들 국가 지도자가 인정받고 있다. 싱가포르의 리셴룽 총리와 대만의 차이잉원 총통이 특히 그러한데, 이들 국가가 중국과 지리적 혹은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인데도 이번에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대만의 경우는 전염병 대처에 있어 향후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 대만은 총통 선거가 한창이던 12월 말 벌써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신속한 대처에 나섰다. 보건 당국자들이 우한을 방문하여 상황을 현장에서 파악하고 1월에 접어들자 바로 중국 방문객의 입국 금지와 함께 마스크 수출을 금지했다. 마스크 생산을 늘리고 한 장당 가격을 200원에 묶었으며, 빅데이터를 이용해 의심환자들을 철저히 추적하고 격리시켰다. 총 124개의 안전 수칙을 발표했고, 언론 기관을 통해 예방법 등을 지속적으로 공지 및 교육시켰다. 그 결과 현재 확진자는 100명 내외이고 사망은 단 한명이다.

약 85만명의 내국인이 중국에 거주 중이고 중국에서 불과 130㎞ 해협 건너에 위치한 대만에서 이런 성과를 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2003년 사스 사태 때에 교훈을 얻어 이런 상황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갖춰 놓은 것이 큰 이유이다. 이로 인해 차이잉원 총통의 지지도는 지난달 전 월 대비 약 12% 포인트가 올라 69%에 달했다. 차이 총통은 1월 재선에 성공했는데, 이는 사실 의외의 결과였다. 지난해 홍콩의 대규모 민주화 데모와 이에 대한 중국의 탄압에 자극 받아 대만 국민들은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주장하는 차이 총통에게 지지를 보냈던 것이다. 그 얼마 전만 해도 그의 재선은 불가능하게 보였다. 어쨌든 이번 바이러스 사태에서 차이 총통은 가장 성공적인 리더십을 보였다.

대체적으로 아시아 지도자들이 이번 사태에서 서방의 지도자들보다 돋보였던 것은 운도 따랐기 때문이다. 먼저 발병한 지역이기에 먼저 대처할 수 있었다. 또 지난번 사스 때 크게 당해 이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유분방하고 권위와 규제를 싫어하는 서양인들에 비해 아시아인들은 규율과 절제를 지키는 경향이 높기 때문이다. 불편한 조치를 정부가 요구해도 대부분 묵묵히 따라준다. 그렇다 해도 정치 지도력에 따라 각국에서 이번 바이러스의 명암이 엇갈렸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직 그 명암이 확실치 않은 한국에서는 가능하면 밝은 미래가 있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