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아라비아가 석유 증산 치킨게임 하는 이유

2020-03-17 17:15
사우디, 4월부터 일일 1230만 배럴까지 증산 결정
채산성 낮은 셰일오일 산업 저유가 상황 못견딜 듯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산유국들이 ‘증산 전쟁’에 돌입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국제 유가가 폭락했지만 감산을 통한 가격 지지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유가를 대폭 하락시킴으로써 미국의 셰일오일 산업을 무너뜨려 글로벌 원유 시장의 판을 바꾸겠다는 복심도 작용했다. 

사우디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해 6일 열린 OPEC+(석유수출국기구와 10개 주요 산유국의 연대체)의 추가 감산 협상이 러시아의 반대로 결렬되자 4월부터 일일 1230만 배럴까지 산유량을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러시아도 국영기업을 총가동해 증산에 돌입한 상태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두 나라의 증산 경쟁으로 최대 13억 배럴의 공급 과잉이 벌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두 나라가 증산 치킨게임을 벌인 배경에는, 사우디의 셰일가스 견제 카드가 숨겨져 있다. 셰일가스의 채산성이 낮기 때문에 국제유가를 낮추면 이들이 줄도산할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기던 때 미국의 셰일가스 업체들은 텍사스를 중심으로 이른바 에너지 혁명을 시도하며 에너지 독립을 이뤄냈다. 이는 글로벌 원유 패권을 가진 사우디의 입김을 약화시키고 저유가 상황을 고착시키게 돼 사우디의 영향력이 보다 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에 사우디는 발 밑의 공포로 자라고 있는 미국 셰일가스 업체들에 타격을 주기 위해 증산을 통한 국제유가 하락을 시도한 것이다.

미국과 사우디의 정치적 지형 변화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리아 내전에서 미국과 사우디가 수니파를 지원하며 시아파를 지원하는 이란과 대립각을 세웠으나, 지난해 미군이 시리아 철수를 일방적으로 선언하며 두 나라의 이상기류가 증폭됐다는 말이 나온다.

국제유가가 떨어질 경우 비산유국인 우리나라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국제유가 폭락은 세계 경기 침체 및 수요 감소를 뜻하기 때문에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에 오히려 더 치명적일 수 있다. 전문가들이 평가하는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에게 적정한 국제유가는 배럴당 55~65달러 수준이다.

[사진=AP·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