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케이뱅크' KT 자회사 증자도 어렵다

2020-03-11 05:00
특례법 개정안 부결에 KT 유상증자 막혀
42개 자회사 5000억원 이상 자금 감당 못해
다른 금융사 등 제3의 주주 끌어들여 해결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면서 제1호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의 앞날에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KT에서 증자를 받아내는 플랜A가 막힌 상태에서 생존을 위해서 시급하게 '플랜B'를 찾아야 하지만 거론되는 방안이 실현 가능성이 없거나 대주주인 KT의 위상을 흔드는 내용이라는 점이 문제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임시 국회 이후 케이뱅크는 플랜B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지난 5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인터넷은행법 개정안을 표결에 부쳤지만 반대(82표)가 찬성(75표)보다 많아 부결된 탓이다.

인터넷은행법 개정안은 인터넷은행 대주주의 한도 초과 지분보유 승인 요건 중 공정거래법 위반 항목을 삭제하는 것이 골자다. 법안 부결로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가 있는 KT는 케이뱅크 지분을 더 늘리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1월경 추진했던 59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도 실현하기 어렵게 됐다.

대주주인 KT로부터 유상증자라는 손쉬운 방법이 막히면서 케이뱅크의 생존을 위해 플랜B가 필요한 상황이다. 금융권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방안은 KT의 자회사 활용안이다.

이는 카카오뱅크 2대 주주인 한국투자금융지주가 활용했던 방식이기도 하다. 한국투자금융지주는 자회사인 한국투자증권에 카카오뱅크 지분을 넘기려 했으나 공정거래법 위반 전력 때문에 손자회사인 한국밸류투자자산운용을 우회로로 활용했다.

 
그러나 KT와 케이뱅크가 이 사례를 그대로 벤치마킹하기는 석연치 않다. 한투지주는 카카오뱅크에서 2대 주주에 불과해 최대주주에 오르려하는 KT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최대주주가 이 같은 우회로 방식을 활용한다면 꼼수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KT와 카카오뱅크 모두에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우회로를 찾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금융권에서는 현재 케이뱅크에 의미 있는 수준의 지원을 위해서는 KT 자회사가 5000억원 정도의 증자를 해줄 만한 체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KT의 자회사 42개(지난해 9월 말 기준) 중 자산 2조원이 넘는 계열사는 BC카드(3조6526억원) 하나에 불과하다. 가장 규모가 큰 자회사인 BC카드도 현금성 자산으로 3385억원을 보유하고 있는 수준이라, 손쉽게 증자대금을 마련하기는 어렵다. 비난을 감수하고서 우회로를 활용하려 해도 실질적 지원을 하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결국 기존 주주가 나서 증자를 하거나 제3의 주주를 끌어들이는 방안이 현실적이다. 금융권에서는 케이뱅크 참여 주주 중에서 지분율이 그나마 높은 우리은행(13.79%)과 NH투자증권(10%)이 증자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또 KT 역할을 맡아줄 만한 새로운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을 찾아야 근본적 해결이 된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문제는 어느 방안을 선택하더라도 현 대주주인 KT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KT의 지분이 10% 수준으로 묶여 있는 사이 다른 금융사나 ICT 기업이 상당수 지분을 쥐게 될 경우 물밑에서 경영권 다툼이 발생할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KT의 자회사는 인터넷은행의 대주주 역할을 감당할 만한 규모까지 성장하지 못했다"며 "결국 KT 측의 손발이 묶여 있는 동안 다른 금융사나 ICT 기업이 유상증자를 감행하거나 아니면 계속 케이뱅크가 개점 휴업 상태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인터넷은행법 개정안 국회 통과 불발로 이달 말 임기 만료를 앞둔 심성훈 케이뱅크 행장 후임을 정하는 과정 역시 순탄치 않다. KT 측 추천 인사인 이문환 전 BC카드 사장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KT의 대주주 역할이 불분명해지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케이뱅크는 이달 중순 안에 차기 행장 후보를 낙점한다는 계획이다.

 

[사진=연합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