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대폭락 맞나…사우디 증산 카드에 "유가 20달러 깨질 수도"

2020-03-08 17:01
러시아 감산에 반기들자 증산과 공급가격인하로 보복
전문가 "코로나 사태에 가격전쟁까지 겹치며 대혼란"

국제유가 시장이 '가격전쟁'에 휘말렸다. 세계 최대 원유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먼저 칼을 빼 들었다.

사우디는 다음달 원유생산량을 대폭 늘리는 것은 물론 정유사에 통보하는 공식판매 가격도 내릴 예정이라고 블룸버그가 7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그야말로 전방위적인 가격 인하 정책을 동원한 것이다.

사우디의 조치는 산유국 간의 감산 제안을 거부한 러시아에 대한 보복이다. 지금보다 유가가 더 하락한다면 안 그래도 어려운 러시아 재정이 더욱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요 감소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나온 사우디의 증산 카드에 전문가들도 적지 않게 놀라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20달러 밑까지 추락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 장관이 5일(현지시간) 추가 감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제178차 석유수출국기구(OPEC) 임시총회와 제8차 주요산유국연합체(OPEC+) 각료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빈의 OPEC본부에 도착했다. [사진=AP·연합뉴스 ]


◆예상 못한 초강수···러시아 무릎 꿇을까

사우디는 내달 원유생산량을 하루 1000만 배럴 이상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블룸버그는 7일 전했다. 현재 사우디의 생산량은 하루 970만 배럴이다.

매체는 익명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사우디는 필요할 경우 생산량을 하루 1200만 배럴 이상 수준까지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안 그래도 수요가 부족한 판에 공급이 줄지는 못할망정 이처럼 늘릴 경우 이미 급락한 국제유가는 더욱더 가파른 하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파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우디 국영회사인 아람코는 20년 만에 정유사들에 통보하는 공식가격을 낮췄다고 7일 외신은 전했다. 아람코는 가격 인하는 이미 결정됐지만, 판매처에 공식적으로 알리는 것은 월요일이 될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보도했다.

아람코는 매달 정유사들에 원유공식판매가격(OSP)을 통보한다. 가격 조정폭은 보통 몇 센트에서 몇 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7일 사우디는 공식 가격을 배럴당 6~8달러 낮춘다고 밝혔다. 사우디가 이처럼 큰 폭의 가격 인하에 나설 경우 다른 산유국들도 뒤따라 공식적인 판매가격을 조정할 수밖에 없다.

사우디가 이처럼 초강수를 둔 것은 러시아를 다시 협상 테이블에 불러들이기 위해서라고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시장을 뒤흔들어 러시아가 더는 버티지 못하는 수준까지 국제유가를 끌어내린다는 계획이다. 재정 악화가 극에 달하면 러시아가 감산 찬성으로 돌아설 수도 있다는 계산이다.

앞서 지난 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OPEC+(OPEC 회원국과 비OPEC 산유국 간의 협의체)에서 감산 합의는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됐다. 당초 OPEC은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 원유 수요가 하루 210만 배럴 줄어든 것을 근거로 하루 원유 생산량을 150만 배럴 줄이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반기를 들었다. 알렉산더 노박 러시아 에너지 장관은 “OPEC과 비OPEC 간 산유량 협상은 더는 없다”고 밝혔다. 감산으로 인한 점유율 하락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에 압둘아지즈 빈살만 사우디 석유장관은 "오늘의 결정은 매우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국제유가 어디까지 추락하나?···20달러 밑으로 떨어질 수도

안 그래도 국제유가 급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발발한 가격 전쟁으로 국제유가 시장은 더욱 소용돌이칠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상품 헤지펀드 매니저는 블룸버그에 "(사우디의) 이런 조치는 전쟁을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밝혔다.

특히 아람코는 북서유럽에 있는 정유사들에 원유 브랜드 중 하나인 아랍라이트의 공식판매 가격을 브렌트 벤치마크 하에서 배럴당 8달러를 할인한 10.25달러에 제공하기로 했다. 러시아의 우랄 원유가 브렌트 벤치마크 기준으로 정유사에 배럴당 2달러의 할인 폭만을 제공하고 있는 것을 고려할 때 시장의 점유율은 크게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트레이더들은 이런 사우디의 움직임은 직접적으로 러시아 기업들을 공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가격 전쟁이 본격화하면 국제유가는 급락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는 유가가 2016년 최저가였던 배럴당 27.10달러 혹은 그 이하까지도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외신은 보도했다. IHS 마킷 컨설턴트의 유가 애널리스트인 로저 다이완은 블룸버그에 "우리는 다음 분기에 국제유가가 20년만에 최저치를 찍는 것을 볼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유가가 20달러 이하로 떨어질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국제유가는 이미 산유국 카르텔의 붕괴로 자유낙하하고 있다. 감산 합의가 깨진 지난 6일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10.1%(4.62달러) 떨어진 41.28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2016년 8월 이후 최저치다. 하루 낙폭도 2014년 11월 28일 이후 5년여만의 최대폭이었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5월물 브렌트유도 9.50%(4.75달러) 내린 45.27달러를 기록했다. 2008년 12월 이후 가장 큰 낙폭을 기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