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미.중.일 하이테크 大戰 마스크 낀채로 붙는다
2020-03-03 17:56
세상 관심이 온통 코로나 CPS에 쏠려 있는 사이에서도 국제 전략가들은 미·중 간에 뜨거운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는 하나의 명백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격화되고 있는 미·중 간의 기술패권 경쟁이 바로 그것이다. 미·중 양국은 지난 1월 무역협의에서 제1단계 합의를 도달했다. 이로써 트럼프 정권이 도발했던 미·중 무역전쟁은 대체로 휴전상태에 들어간 형국이다.
그러나 미국은 5G를 둘러싼 화웨이 배제의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있다. 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바이오라는 전략기술을 둘러싼 미·중의 기술패권 전쟁은 지금부터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물론 금융, 투자, 통화라는 머니게임도 미·중 쟁패의 와중에 벌어질 것이다.
미·중 하이테크 패권을 둘러싼 싸움이 여전히 세계를 흔들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은 중국에 기술이 유출될까 염려해 기술수출 규제를 엄격히 하고 있다. 조만간 중국 이외의 다른 나라 기업들에도 영향이 큰 최첨단 기술 분야의 규제를 담은 수출관리개혁법(ECRA)이 시행된다. 이 법은 중국에 대한 견제용으로 2018년에 제정되었다. 미국은 중국정부가 기술정보를 상용뿐만 아니라 군사용으로도 전용한다는 우려로 강한 위기감을 가지고 있다. 규제의 운용 그 자체는 종래의 수출 규제와 거의 같지만 초점은 그 대상에 AI와 바이오 테크놀러지 등 14개의 ‘신흥기술(emerging technology)'이 추가됐다는 점이다. 최종 규제안은 곧 발표될 것이다. 이는 겉으로 드러난 미국의 대중 견제 대책 가운데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우리가 유념해서 볼 일은 미국과 중국이 서로 닮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술과 경제의 상호의존은 디커플링(분단)되어 가는 반면, 서로 견제하는 정책 개념은 같은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다. 미국은 AI와 5G 분야에서 중국이 국가자본주의(전체주의적인 중앙정부에 의한 계획경제)를 발동하고 있다고 비판해 왔으나 지금은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모습이다. 윌리엄 바 미국 법무장관은 최근 중국에 대한 대응책으로 중앙정부를 중심으로 한 계획경제로 산학(産學)과 협력해 미국의 국가목표를 달성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발언은 미국판 국가자본주의를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트럼프 정권은 중국과의 5G 경쟁에서 패닉에 빠져 해외의 유력한 통신기기 업체와 국내 업계가 동맹을 맺도록 하는 행동지침을 내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는 그 연장선상에서 기업가치 1030억 달러(약 110조원)에 이르는 퀄컴에 이례적인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샌디에이고에 본사를 두고 있는 퀄컴은 5G용 반도체에서 세계 최대 기업이다.
영국 시사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2월 15일자)에서 5G분야에서 미국이 위험한 국가자본주의를 시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월 27일자 뉴욕 타임스는 에릭 슈밋 미 AI 국가안보위원회(NSCA) 의장(전 구글 회장)이 기고한 ‘실리콘 밸리는 연방정부가 필요하다’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실리콘밸리의 리더들은 그동안 신기술에 있어서 민간 섹터가 글로벌 리더십을 끌고 왔다고 굳게 믿어 왔으나 이제는 그 리더십을 보장할 수 없게 됐다고 우려한다는 내용이다. 미국 경제와 안보가 중국에 위협당하고 있기에 정부가 과거처럼 산·학·관(産學官) 협력의 스크럼을 짜야 한다고 슈밋 의장은 강조했다.
이에 앞서 미국은 2019년 2월 트럼프 대통령의 AI 전략을 위한 행정명령, 3월 의회에서 NSCA 첫 회의, 7월 NSCA 첫 보고서, 10월 스탠퍼드대 휴먼AI 연구소(HAI)의 ‘국가비전 AI’ 발표, 11월 NSCA 중간보고서, 2020년 1월 백악관 예산관리국 (OMB)의 ‘AI 10대 원칙’ 발표, 1월 30일 싱크탱크 브루킹스 연구소의 AI 보고서 등을 내놓았다. 산·학·관에서 협력 전략을 잇달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3월 중에 NSCA 최종 보고서가 나올 예정이다.
일본 정책평론가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는 2020년대 세계는 몇 개의 메가 지경학(地經學)적 도전에 직면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경학은 지정학적인 목적을 위해 경제를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가장 큰 도전은 첨단기술이다. 제4차 산업혁명의 가장 첨예한 기술인 AI, 사물인터넷(IoT), 블록체인, 빅데이터, 바이오 분야에서 중국의 전제체제 하의 ‘한정된(illiberal) 이노베이션’이 중국을 기술 초강대국으로 끌어올릴 것이라는 예상이다. 실제로 2005년과 2017년의 AI와 양자 컴퓨터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특허출원을 보면 이 예상은 빗나가지 않을 것 같다. 지적재산 데이터베이스를 운영하는 아스타뮤제에 따르면, 중국은 2005년 AI, 양자컴퓨터, 재생의료, 블록체인, 사이버보안, 가상현실(VR), 리튬 이온전지 등의 세계 특허출원 통계에서 3·4위권에 있었으나 2017년에는 자율주행차, 드론, 전도성 고분자를 포함해 거의 모든 분야에서 1위로 올라섰다. 미국이 초조해하고, 유럽·일본 등이 우려하는 이유를 알 수 있는 통계다.
일본 정부는 오는 4월 내각부 국가안전보장국(NSS)에 경제안전보장팀을 설치해 운영한다. 여기서는 5G, AI, 해저케이블 등에 더해 에너지, 일대일로, 국제금융 등 메가 지경학적 과제 전반에 대응한다고 한다.
이런 미국, 중국, 일본의 움직임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 첫째, 세계 각국은 기술력을 자국의 안전보장 상의 이익에 연결시킨다는 점이다. 둘째, 국가의 기술력은 군사력의 우열만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은 외교수단으로서도 활용된다는 점이다. 셋째, AI를 핵으로 한 첨단기술이 권위주의적 국가의 체제보장을 위해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기술패권을 둘러싼 국제경쟁은 기술의 우위를 둘러싼 경쟁이다. 기술로 국제질서가 재편되는 시기다. 자원과 무역의 해외의존도가 높고 미·중과 단단한 가치사슬(밸류체인)로 엮여 있는 한국에 미·중의 디커플링은 위기다. 그러나 한국은 과학기술, 특히 IT 강국으로서의 잠재력을 잘 살리면 신 국제질서 재편 과정에서 선도국으로 나설 수 있는 기회도 있다. 우리나라도 기술을 국가안보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 사태의 종식 이후 이러한 시각에서 국가 혁신 시스템(National Innovation System)을 서둘러 정비해야 한다.
미국의 규제가 예상되는 14개 신흥기술
① 바이오 테크놀러지
② AI·기계학습
③ 위치측정 기술
④ 마이크로프로세서
⑤ 첨단 컴퓨팅
⑥ 데이터 분석
⑦ 양자정보·양자센싱 기술
⑧ 수송 관련 기술
⑨ 3D 프린터와 적층제조 기술
⑩ 로보틱스
⑪ 브레인 컴퓨터 인터페이스
⑫ 극초음속 기술
⑬ 첨단재료
⑭ 첨단 보안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