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베트남 포커스] (3) 베트남은 지금 사회주의 체제인가, 자본주의 체제인가?

2020-03-01 20:03

 

[하노이 홍강 강변에서 이한우 교수]


 

 아주경제는 베트남 개혁·개방을 연구하는 최고 전문가 서강대 이한우 교수의 칼럼을 연재한다. '이한우의 베트남 포커스'는 베트남의 개혁 과정을 톺아보고 분석하며 날로 확대되고 있는 한·베트남 관계에 대한 현황을 살피고 전망을 내놓을 것이다. 이한우 교수는 서강대에서 베트남 개혁정책을 주제로 정치학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서강대 동아연구소 및 동남아시아학 협동과정 교수로 있다. 베트남 국민경제대학 객원연구원으로도 있었다. 그는 베트남 정치경제 개혁과정을 주로 연구하고 있으며 개혁으로 인한 사회문화 변화에도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베트남 경제개혁의 정치경제>, <한국-베트남 관계 20년> 등 책과 베트남 개혁에 관한 연구 논문을 여러 편 냈다. [편집자 주]


개혁정책이 가져온 경제체제 변화

베트남을 방문하면, 이 나라가 지금 사회주의 국가인가 아닌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국가명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으로 보면 분명 사회주의 국가인데, 일상에서는 사회주의 분위기를 느끼기 어렵다. 현재 베트남은 어떤 상황이고, 이 체제는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가?

베트남 사회가 “사회주의 지향 시장경제체제” 논리에 기반하고 있지만, 현실은 어떤가? 농업부문은 1988년에 농가경영제를 시행하면서 거의 다 개인영농화됐다. 농가경영제는 토지를 장기간 배분하여 농가가 자율적으로 경작하고 세금만 내는 제도다. 토지는 국가 소유지만, 국민들은 일정 기간 토지사용권을 갖는다. 농지 사용권은 1993년 토지법에서 20년이었다가 2014년 7월 발효한 새 토지법에서 50년으로 연장됐다. 농지 이외 토지의 사용권 보유기한은 보통 50년 또는 장기 프로젝트일 경우 70년까지다. 주택의 토지사용권은 영구적이어서 개인소유와 마찬가지다. 나는 토지사용권 보유기간이 만료될 때 농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까 궁금했다. 농민들이 1993년 토지법으로 20년간 사용권을 받았으니 2013년에 무슨 조치가 있어야 했다. 이에 정부가 토지법을 바꿔 사용권을 50년으로 연장하는 것이었다. 이러니 ‘실질적’ 사유화라고 하는 게 맞지 않겠나! 하지만 국가가 필요에 의해 국민들의 토지를 수용할 수 있는 여지가 늘 있어 한계는 있다. 지금도 수많은 토지분규가 발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토지사용권 증명서, 레드 북에서 핑크 북으로 바뀌고 있다. 사진@이한우 1995



개혁 이전 기업으로 국영기업과 협동조합 형태의 합작사가 있었다. 합작사는 주로 소규모 수공업 기업이었기에 국가 경제의 근간은 국영기업이었다. 개혁과정에서 국영기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큰 과제였다. 정부는 1990년대 초에 약 1만2000개였던 국영기업을 재등록하게 하여 6000개로 감축하였다. 이후 기업 개혁을 추진한다. 기업 개혁의 방식은 합병, 파산 등도 있었으나, 주로 주식회사로 만드는 것이었다. 주식회사화는 국영기업을 공개하면서 정부가 일부 주식을 보유하고, 일부를 기업 고용인, 즉 관리자와 노동자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판매하며, 일부를 기업 외부 투자자에게 판매하는 방식이다. 개혁 초기에는 중소기업부터 시작해 이제는 대형 국영기업도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주식 전부를 공개하는 민영화와는 좀 다르다. 이제까지 주식회사로 전환한 국영기업은 4000개 이상이다. 그런데 국가의 주요 기업은 주식회사로 전환한 후에도 여전히 정부의 지배하에 있게 된다. 가령 국가중앙은행이 비엣꼼 뱅크(Vietcom Bank) 주식의 77%를 보유하고 있다. 정부에게 그보다 덜 중요한 기업인 비나밀크(Vinamilk) 유가공 회사 주식의 36%를 2017년 말에 국가자본투자공사가 보유하고 있었다. 이처럼 국유기업을 주식회사로 전환한 이후에도, 정부가 지배주주로서 기업 지배를 지속한다.

한편 베트남 정부는 국유기업의 시장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1990년대 중반에 주요 기업들을 몇 개 묶어 ‘총공사’를 100개 정도까지 만들었다. 베트남은 이를 영어로 ‘General Corporation’이라고 하는데, 영어로만 보면 무슨 뜻인지 모호한데, 소규모 기업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대형 기업을 중심으로 2005년 이후 한국의 재벌 같은 ‘기업집단’을 만든다. 영어로는 그대로 ‘Business Group’이라고 한다. 기업집단 산하에는 유사한 업종이지만 다양한 형태의 기업이 속해 있고, 핵심 기업은 국영기업이다. 이제까지 13개 기업집단이 출범했다가 10개로 감소했고, 2020년에는 3개만 남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 세개 기업집단은 석유공사, 전력공사, 비엣텔(Viettel) 이동통신회사다. 2018년 5월 기준, 정부가 100% 지분을 가지는 국유기업은 기업집단 7개, 총공사 57개, 각부처 소속 기업 441개였고, 개별기업수로는 1200개 정도였다.

2000년부터 새로운 기업법을 시행하면서 민간기업의 성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 기업수는 2018년말 기준 70만개 정도였다. 최근에 와서 몇 개의 재벌급 민간기업이 약진하고 있다. 부동산, 리조트 분야의 강자면서 최근 자동차와 휴대폰 분야에 진출한 빈(Vin) 그룹이 대표적이다.


 

[사이공 강과 빈 그룹의 랜드마크 81. 베트남 대도시 하늘도 흐려졌다. 사진@이한우 2019



 베트남의 사회주의와 탈사회주의

이렇게 변화한 경제 현실이 경제체제 전반에는 어떻게 나타날까? 베트남이 전면적 개혁에 착수한 198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소유부문별 GDP(국내총생산) 비중을 보면, 국유경제부문이 1990년대 중·후반까지 40% 정도였으나 1999년 40% 이하로 된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다. 지금 베트남 전체 GDP 중 국유경제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30% 이하인데, 비국유경제부문, 즉 민간경제부문의 비중이 50% 정도다. 외국인투자부문은 1998년 전체 GDP의 10%를 차지한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 현재 20%에 이르렀다. 이를 보면 국유경제부문의 감소분이 외국인투자부문으로 이전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공업생산량은 이런 추세와는 다른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공업생산량 중 국유경제부문 비중은 1995년까지 50% 이상이었는데, 1999년에 40% 이하로 하락했다. 이 비중은 2007년에 20% 이하, 현재 15% 정도로 됐다. 이에 반해 외국인투자부문의 비중은 1990년 4.5%에서 1999년 39%로 증가했고 근래에는 50%에 이르게 됐다. 국내 민간경제부문은 1999년까지 감소 추세였으나, 2000년을 기점으로 증가세를 보여, 현재 비중은 35% 정도다. 베트남 산업화가 진전되면 국내 민간경제부문과 외국인투자부문의 비중이 더 증가할 것이기에, 국유경제부문의 감소세는 이어지리라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베트남이 사회주의 체제인지 아닌지, 앞으로 이 체제는 어떻게 변할지 전망해볼 필요가 있겠다. 베트남 공산당과 정부는 국유경제가 경제 전체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규정짓고 있다. 원유, 전력, 통신 등 국가 기간산업을 국유기업으로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국유경제부문이 국가의 중추로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전체 GDP에서 국유경제부문 비중이 현재 30% 정도고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 경제부문에서 사회주의 체제 유지는 머지않아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베트남이 2013년에 헌법을 개정하면서 헌법에 국유경제부문이 국가경제의 주도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규정을 넣을까 뺄까 하는 문제로 논쟁을 벌였다. 결국 헌법은 이 규정을 그대로 가지고 있지만, 현실은 변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베트남이 공산당 1당 통치를 유지하고 있고, 앞으로도 단기 또는 중기간에 급격한 정치변동이 나타나리라고 볼 수는 없다. 장기적으로 어떤 변화가 올지 지금으로서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현 체제 자체가 급격히 변화할 가능성은 적다. 그것은 현 집권세력이 경제성장에 따른 ‘업적정당성’을 어느 정도 확보했고, 현 체제를 부정하는 반체제 인사들이 대부분 집단화하지 못하고 산발적으로 저항하고 있어 정치적 대안세력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로 보면, 베트남이 명목상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지만, 내용상 탈사회주의화는 계속될 것이다. 정치체제가 사회주의인지 자유주의인지 따질 필요 없는 날이 오지 않을까싶다. 베트남 헌법은 국가 목표를 이렇게 적고 있다. “베트남은 부유한 인민, 강하고 민주적이고 공평하고 문명된 국가, 모든 이가 편안하고 자유롭고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고, 전면적 발전의 조건을 보유하는 사회를 추구한다.” 이대로 실현된 국가와 사회라면 충분하지 않겠나! <서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