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철스님의 ‘가로세로’] 행만리로(行萬里路)-만리길을 걸어라
2020-02-26 14:05
[원철스님의 ‘가로세로’] 행만리로(行萬里路)-만리길을 걸어라
겨울비라고 부를 수도 없고 봄비라고도 할 수 없는 비가 밤새 내렸다. 아침 해가 뜰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주변은 여전히 흐릿하다. 짙은 구름이 가득한 날씨 탓이리라. 뿌연 안개까지 옅게 더해진 ‘북한산 자락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진입부의 나무데크로 만든 길이 지그재그로 거듭 중첩된 모양이 보은 속리산 입구의 말티재를 연상케한다.
이마에 땀이 맺힐 무렵 걸음을 멈추고 산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운무 속에서 아파트 단지만 실루엣처럼 윤곽이 드러나고 단독주택은 납작 엎드린 채 보일 듯 말 듯 묻혀있다. 홍제천과 내부순환도로가 나란히 달리는가 싶더니 이내 갈라지면서 각자 자기 길로 내달린다. 풍수이론에서 왜 길을 물로 설명하는지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 고가도로 위로 자동차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물처럼 흘러가기 때문일 것이다. 한 때 하천을 복개하여 길을 만들고서 교통란을 해결하던 시절도 있었다. 아스팔트를 기준으로 아래로는 물이 달리고 위로는 차가 달렸으니 물길이 곧 차길이었던 것이다. 이제 복개된 차길을 걷어내고 다시 물길을 드러내는 시대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흐름과 소통이라는 두 길의 기능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한 구비를 돌아드니 육이오 때 계급장도 없이 참전하여 전사한 용사의 이름만 적힌 소박한 비석이 서있다. 앞에 놓아 둔 프라스틱으로 만든 조화가 검은 비석의 외로움을 달래준다. 1986년 세웠으니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세운 이들은 기억으로만 충분하지 않다고 여긴 모양이다. 기억해주는 이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용사는 가슴 속에 살아있는 것이다. 앞으로 자락길 주변에도 이렇게 산 자와 죽은 자의 스토리가 하루하루 쌓여갈 터이다.
거의 흙을 밟지 않아도 되는 나무데크 길만 4km가 넘는다. 만들 때도 자연훼손을 최소화하고 이용 시에도 지면손상을 최소화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데크 사이사이에 이미 자기자리를 잡고 있는 별로 크지도 않는 그저 그런 나무까지 보존하려는 공생(共生)을 위한 귀찮음도 저어하지 않았다. 산 정상 방향으로 군데군데 하얀 화강암 표면에 푸른 이끼가 자란다, 이끼는 청정을 상징하는 식물군으로 분류된다. 데크 길을 사이에 두고 아파트와 자연의 공존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주민과 길손의 상생(相生)을 위해 군데군데 나무로 차단벽을 설치했다. 담장너머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움을 추구한다는 명분을 내건 이른 바 ‘숲세권’ 아파트를 짓는 고공크레인은 산보다 더 높이 하늘을 향해 서있다.
길 이름을 짓는 것도 쉽지 않다. 어느 나라 어떤 지역이건 나름의 좋은 이름은 이미 선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 올래길도 있고 지리산 둘레길도 있고 해인사 소릿길도 있다. 경북 청도에는 ‘몰래길’이 있다. 올레길 이름을 그대로 빌리면서도 이응(ㅇ)자을 미음(ㅁ)자로 살짝 바꾸었다. 방해받지 않고 혼자 혹은 둘이 물래 걷는 호젓한 길을 컨셉으로 잡았다고 한다. 유명 연애인 전유성 선생이 작명했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은 골목길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순환길도 아니다. 산자락을 걷는 길이다. 그래서 ‘자락길’이 되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빨리빨리 산 정상을 향한 가파른 직선길이 아니라 쉬엄쉬엄 산언저리를 도는 둘레길로 걷는 문화가 바뀌었다. ‘자락길’은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사도 10%이하의 기울기를 유지하는 까닭에 남녀노소 심지어 휠체어까지 통행이 가능한 ‘무장애 자락길’이 되었다. 가까이 있는 길이며 언제든지 갈 수 있는 동네길인 것이다. 게다가 안전한 바닥처리로 인하여 땅을 의식하지 않고 편안하게 걸으면서 하늘과 자연을 마음놓고 볼 수 있는 여유가 덤으로 주어진다.
그렇다고 ‘혼자 잘난 길’은 아니다. 일방적 소통이 아니라 주변길과 연계성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위로는 북한산 둘레길(옛성길)과 군데군데 이어진다. 아래로는 여기저기 동네로 내려가는 길과 연결된다. 게다가 옛길을 살려 300m정도는 흙길을 밟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데크를 밟을 때와는 사뭇 다른 촉감을 준다. 제법 연륜이 쌓인 개나리동산을 감상하며 걸으라고 보존한 길이다. 잔뜩 물머금은 개나리 가지를 보면서 봄날의 화사함을 미리 만끽했다.
옛사람들은 길을 걸으며 ‘만권의 책을 읽던지 만리길을 걸어라(讀萬卷書 行萬里路)’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만리행은 만권의 독서를 하는 것 만큼 견문을 넓혀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 십리행을 했으니 책 몇 권을 읽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