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평규 칼럼] 한국, 포퓰리즘으로는 미래가 없다

2020-02-19 07:00
반기업, 친노동, 고임금 등 정책으로 추락한 아르헨티나
위장된 복지 '퍼주기 정책' 반대해야

조평규 전 단국대 석좌교수

포퓰리즘이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면에서 본래의 목적보다 대중의 인기를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 형태로 대중영합주의를 말한다.

대중의 지지나 표를 얻기 위해서 법과 제도를 무시하고 대중을 선동하거나, 국가의 재정 상태나 경제적 합리성을 도외시하고 선심성 정책을 펴서 국고를 바닥낸다.

포퓰리즘으로 경제가 거덜난 나라로는 이탈리아, 스페인, 아르헨티나, 그리스, 터키, 폴란드, 소련, 베네수엘라 등 수도 없이 많다.

최근 우리 정부도 포퓰리즘 정책을 광범위하게 펴기 시작했다. 전체 가구 40%가 넘는 가구에 각종 수당, 보조금을 현금 지급하고, 최근 3년새 실질최저임금도 50% 이상 올렸다.

겉으로 드러나는 취업율을 올리기 위해 알바식의 일자리에 세금을 쏟아 붓고, 정권 장악을 위한 공수처를 만들고, 선거법도 제1야당의 동의 없이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통과시켰다. 검사나 판사들도 자기 입맛에 맞는 인사들로 바꿨다. 공영방송도 이미 정권의 하수인이 된지 오래다. 포퓰리즘을 펼치기 쉬운 법과 제도 시스템으로 급속히 바꾸고 있는 것이다.

국가 부채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몇 번째니 하면서 국가 재정이 건전하니 얼마든지 빼 먹어도 된다는 듯한 태도로 정책을 펴고 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재정적자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의미를 마치 저축해 놓은 자금 인양 마구 써도 된다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어 놀랍다.

포퓰리즘의 악랄함은 수도 없이 많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포퓰리즘 사상으로 무장된 세력들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 국민을 적과 아군으로 분리하여 서로 싸우게 하거나, 자기 추종 세력 만을 국민으로 생각한다. 자기들은 도덕적 우위를 가지고 있다고 선전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자기들만의 이익을 챙기므로, 매우 위선적이다. 정의와 공정을 외치지만, 정의롭거나 공정하지 못하다.

현실에서 발생하는 모순이나 잘못은 옛날 정권이나 부자, 혹은 미국 등 선진 자본주의 나라의 탓으로 돌린다. 기존의 질서나 엘리트들을 적폐로 몰아 감옥으로 보내거나, 공격하는데 서슴지 않는다. 그들은 직접민주주의를 매우 좋아한다. 길거리에서 벌이는 시위를 통한 이벤트에 능하고 선전 선동에도 뛰어나다.

포퓰리즘에 빠지면 국민들은 개인의 자유가 심각하게 제한되거나, 경제적으로 궁핍해져야 포퓰리즘에 폐해를 인식하게 된다. 늦게 깨달아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이미 짜인 사회 시스템을 바꿀 수 없다. 차라리 빵 한 조각이라도 더 던져주는 정치가에게 자기의 영혼을 팔게 된다.

대중영합주의로 국운이 쇠퇴한 대표적인 나라가 아르헨티나다. 유럽 이민자가 대부분인 아르헨티나는 1930년대에는 세계 6위 경제대국이었으나, 지금은 25위로 추락했다. 넓은 국토(한국의 12배)와 풍부한 지하자원을 가진 나라였지만, 1946년 남미의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책을 들고 나온 후안 도밍고 페론이 집권하면서 나라의 운명은 나쁘게 바뀌었다.

페론은 반(反)기업 정책, 친노동 정책, 고임금 정책, 보편 복지 정책을 펼쳤다. 공무원을 엄청나게 증원하고, 주요산업을 국유화시키고 외국 자본을 추방했으며, 시장경제 정책은 폐기했다. 통화를 막 찍어 냄으로써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상승)을 조장했다. 국고는 바닥나서  국제통화기금(IMF)에 수십 번이나 구제 금융을 신청하고,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해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지기도 하였다. 아르헨티나는 민중민주주의인 포퓰리즘 국가가 어떻게 추락하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나라가 되었다.

정의를 내세우고 광장민주주의나 포퓰리즘으로 권력을 장악한 세력들은 독재적 장기집권을 추구한다. 부정적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표를 얻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경찰과 수사기관을 동원해서 국민을 통제하고 지배한다. 그들은 쉽게 타락하고, 왕조시대의 폭군정과 마찬가지로 위험해 질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곧 선거가 있다. 선거는 선동에 의하여 변질되기 쉬운 속성을 가진 제도다.

선거 때 나오는 정책을 보면 여야를 막론하고 포퓰리즘 정책이 대부분이다. 이래가지고서야 어찌 나라가 포퓰리즘을 막을 수 있겠는가? 복지정책이나 약자를 돕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헌법과 법률에 기반한 사회적 약자를 위한 합리적이고 정당한 포퓰리즘 정책은 필요하지만, 도덕적 해이를 가져오는 선심성 공약은 국가를 망하게 하는 '악의 정책'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그들의 머리 속에는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심모원려(深謀遠慮)가 없다. 표만 얻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전부다.

포퓰리즘을 막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우선 국민들은 포퓰리즘 정책을 펴는 정부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발하고 투쟁해야 한다. 정부에서 행하는 위장된 복지인 퍼주기 정책을 지지해서는 안 된다. 퍼주기는 헌법과 법률에서 규정한 복지와 완전히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혜택을 받는 국민들은 위장 복지의 달콤함에 빠져, 정부의 각종 퍼주기식 시혜를 복지라고 인식한다. 청년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배급에 익숙해 지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많이 가진 사람들은 자기의 것을 내놓거나 자기 희생으로 솔선수범을 실천해야 한다. 약자들이 자기들을 배려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도록 나누어야 한다. 공동체를 위해서 자기가 가진 것을 내놓고 헌신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는 포퓰리즘을 막을 수 없다. 입장이 다른 부류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공동체의 건전한 생태계를 유지 하기 위해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민중민주주의 포퓰리즘으로는 우리의 미래는 없다. 국민들은 개인적 이익보다 헌법적 가치를 지키는데 용감해져야 한다. 사익을 버리고 공존을 추구하며 주권자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정확하게 행사해야 한다. 많은 국민들이 포퓰리즘이 주는 마약에 중독 되기 전에 막아야한다. 보편복지라는 미명 아래 퍼주기 배급에 의지하는 국가나 사회는 오래가지 못한다.

조평규 전 단국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