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건전화 위해 뽑아든 소득세 카드…日 경제 벼랑으로 모나?

2020-02-17 18:03
지난해 8%에서 10%로 올려…소비자들 지갑 빠르게 닫혀
수출도 약화되는 상황서 국내소비 위축까지 겹치면서 '위기'

일본 정부가 지난해 10월 단행한 소비세 인상이 경제를 위협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일본 내각부가 17일 발표한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분기 대비 1.6% 감소했다. 예상치인 0.9% 감소보다 크게 악화한 결과다. GDP의 절반을 차지하는 민간소비의 위축이 지표 악화의 주원인으로 꼽힌다. 기존 8%에서 10%로 껑충 뛰어오른 소비세율이 일본 가계의 돈줄을 조이면서 지난해 4분기 민간소비 지출이 2.9%나 감소했기 때문이다.  

시장의 충격도 컸다. 17일 도쿄주식시장에서 닛케이225지수는 전날보다 0.69% 하락한 2만3523.24를 기록했다. 주가지수는 한때 1% 넘게 급락하기도 했지만, 중국 증시의 상승이 추가 하락을 막았다. 그러나 단기간 내 일본 경제성장률이 반등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당초 소비세율 인상의 명목은 재정건전화와 공약 실현이었다. 그러나 미·중 무역전쟁으로 안 그래도 팍팍한 경제상황에서 꺼내든 증세 카드는 자충수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수출 감소가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소비까지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올해초 코로나 19 확산까지 겹치면서 소비세 증세는 일본 경기침체의 촉발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GDP 절반 차지 민간소비 지출··· "최악의 타이밍에 위기심화"   

정부가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아베노믹스 하에서 소비세 인상은 오래된 숙제였다. 정부의 지출과 부채를 떠받칠 재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이은 선거를 앞두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미 2차례나 인상을 미뤘다. 2014년 12월 중의원 선거와 2016년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잡기 위해 소비세 인상을 유보한 것이다. 

소비세 인상이 단행될 당시에도 여론이 좋지 않았다. 지난해 9월 교도통신이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는 ‘소비세율 10% 인상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51.3%로 ‘찬성한다’(43.3%)를 8.0%P 웃돌았다. 특히 서민과 중산층을 중심으로 생활고가 가중될 것이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다. 

부정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세수증대에 정책 무게를 실었다. 일본 정부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 재정적자를 방치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GDP 대비 정부 부채는 240%에 육박한다. 이처럼 지나친 부채는 일본 국채시장과 엔화 지위를 약화시킬 수 밖에 없다. 아베 정부로서도 증세밖에 선택지가 없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일본 정부는 사회보장 강화를 위해서도 소비세 인상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아소 다로 경제부총리는 "모든 세대의 사회 보장 창출을 위한 안정적인 재정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번 세금 인상이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높은 부채비율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의 씀씀이는 줄지 않는다. 올해 일본 정부의 예산은 2019년 예산과 비교해 1조2009억엔(약 12조7580억원) 증가한 102조6580억엔(약 1090조6796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연간 예산이 일반회계 기준으로 100조엔이 넘어갔다. 

◆소비세 압력에 빠르게 닫힌 지갑···소비약화 상쇄할 수출도 동력 잃어

일본에서 물건과 서비스를 구매할 때 내는 간접세인 소비세 인상이 일본 소비자들에게 끼친 영향은 예상보다 컸다. 전기와 가스 등 공공 서비스 요금은 물론 고속도로 통행료와 철도, 버스 등 교통 운임도 대상이 됐으며, 외식이나 주류는 물론 병원비도 인상됐다. 소비세 인상이 단행되기 전인 지난해 9월 일본의 ‘소비자태도지수’는 현재와 같은 조사 방식이 적용된 2013년 4월 이후 최악인 35.6을 기록하기도 했다.

앞서도 아베 정부는 2014년 4월 소비세율을 5%에서 8%로 올렸다. 당시 소비세율 인상 직전 소비가 집중되고 이후 소비가 침체되는 부작용으로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큰 타격을 입었다. 

문제는 과거에 비해 글로벌 경제상황이 더 악화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일본 경제는 국내 소비의 장기침체를 중국 등의 수출로 상쇄해 왔지만, 무역전쟁으로 인한 경기둔화와 코로나 19 등으로 이마저도 동력을 잃고 있다. 여기에 국내 소비가 소비세로 더욱 위축된다면 영세기업들의 줄도산이 이어질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야마토증권의 이와시타 마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17일 니혼게이자이에 "실질 GDP성장률이 급감한 최대 요인은 지난해 10월 소비세율 인상"이라면서 "올해 1분기에도 어려운 상황은 이어질 것이다. 코로나 19 등의 영향으로 GDP의 약 절반을 차지하는 개인 소비가 증가로 돌아서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진=AP·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