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선주자 2위? 꿈 깨라 보수! 野! '정치중립이 생명'이란 그의 생명 빼앗을 참인가
2020-02-11 18:25
누가 검찰총장을 불러냈나
1. 누가 검찰총장을 불러냈나.
윤석열 검찰총장이 한 신문사의 대선 여론조사(차기 대통령 적합도 조사)에서 10.8%로 일약 2위에 올랐다. 그는 즉각 “형사법 집행을 총괄하고 정치적으로 중립이어야 할 검찰총장에 대해 이런 조사를 하는 건 부적절하다”면서 앞으로는 조사대상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했다. 그렇다고 빠질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그는 이미 어떤 대선 여론조사에서도 이름을 빼기 어려운 존재가 돼버렸다. 대체 누가, 무엇이 현직 검찰총장을 정치판으로 불러냈을까.
여권이 윤 총장을 계속 핍박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현명한 대응 같지 않다. 조국 사태 때 일방적인 조국 비호와 검찰 압박이 윤의 존재감을 키웠고, 그를 불러낸 단초가 됐다. 윤을 적폐 청산의 ‘도구’로 썼지만, 윤의 칼이 이 정권의 적폐까지 겨눌 줄은 몰랐다. 그 칼날을 무디게 하려고 ‘대학살 인사’를 하고, 억지논리로 공소장 공개까지 거부했지만 부정적 여론만 낳았다. 여권은 3대 사건의 사법처리 여부를 총선 후로 미뤘지만 윤 총장의 임기는 2021년 7월까지다. 권력과 검찰의 진짜 승부가 남아 있는 셈인데, 그 결과가 정치판은 물론 윤 총장의 미래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2022년 3월 대선까지 그 파장을 이어갈 것이다.
자유한국당도 윤 총장을 불러내는 데 한몫했다. 당이 반문(反文) 연대의 중심으로서 보수진영에 신뢰와 희망을 주지 못하고, 당 대표가 험지 출마 문제를 놓고 좌고우면하는 사이에 일종의 대체재로서 윤의 주가는 수직 상승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여론조사에서 윤 총장이 오차 범위 안이지만 황교안 대표(10.1%, 3위)를 제친 데서도 드러난다. 황 대표의 종로 출마 결단은 윤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낼 수 있다. 그렇게 되려면 한국당은 황 대표가 반문진영의 대표 전사(戰士)로서의 정통성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게 긴요해 보인다.
윤 총장이 3대 비리의혹 사건을 수사하면서 권력의 눈치를 안 보는 걸로 비쳐져 그에 대한 보수진영의 인식에도 변화가 있는 듯하다. 조갑제씨(조갑제 닷컴 대표)는 “한때 보수층으로부터 가장 미움을 받던 사람이 지금은 가장 지지를 받고 있다”면서 “윤 총장을 찍자는 서명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윤 총장을 “검찰주의자가 아닌 헌법주의자,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의 수호자”라고 치켜세웠다(조갑제 TV 2월 3일).
윤석열은 최순실 게이트 특검 수사팀장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냄으로써 보수정권의 몰락과 진보·좌파정권의 재집권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람이다. 전직 대통령 둘을 감옥에 보냈고, 적폐수사를 진두지휘해 전 정권의 많은 사람들을 법정에 세웠다. 보수의 공적 1호나 다름없는 그가 보수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면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물론 보수라고 다 같지는 않다. 조갑제로 대표되는 보수와 자유한국당의 보수는 서로 조금 다르다. 이념의 스펙트럼으로 본다면 전자는 맨 오른쪽에, 후자는 보다 왼쪽에 위치한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여기에 김문수와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는 보수도 있다. 지금 윤 총장에게 일부 보수가 호의를 보이고 있다고 해서 모든 보수가 다 그럴 거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윤 총장이 설령 정치에 뜻이 있다고 해도 이런 다양한 보수들과 과연 상응(相應)의 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도, 나아가려 할지도 의문이다.
따라서 윤 총장에게 보수가 반색하는 것은, 검사로서의 그의 올곧은 자세에 대한 평가 탓도 있겠지만, 그간 청와대와 각을 세운 데 대한 ‘환호’로 보는 게 맞는다. 사인(私人) 간 다툼에서도 역성을 들어준 사람에게는 동료의식을 느끼는 법이다. 과도한 의미 부여는 성급하다는 얘기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보수는 검찰 수사를 둘러싼 윤 총장과 청와대 간 알력을 ‘문재인 정권 대 보수’의 대리전으로 인식하고, 윤 총장을 대리전사쯤으로 보지만 이는 착각”이라면서 “만약 4월 총선에서 보수가 이기면 보수는 윤 총장을 버릴 것”이라고 했다.
3. 보수, 윤석열을 얼마나 알고 있나.
윤 총장은 좌(左)도 우(右)도 아니고, 검사로서 자신의 직분에 충실할 뿐이라는 게 지배적인 세평이다. 죄가 있으면 상대가 누구건 파헤쳐 책임을 묻는, 말 그대로 검사일 뿐이라는 얘기다. 윤 총장 자신도 평소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른바 검찰의 ‘대학살 인사’로 자신의 수족 같은 검사들이 모두 내쳐졌을 때도 그는 담담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사석에서 이런 취지의 말로 심경을 대신했다고 한다. “걱정할 것 없다. 후임자들에게도 검사의 피가 흐를 것이다. 1중대가 없으면 2중대로 하면 된다.”
검찰에 대한 그의 장악력은 확고해 보인다. 한 법조인의 분석이다. “그가 서울중앙지검장이 됐을 때, 검찰은 당시 문무일 총장보다는 서울중앙지검장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가 총장이 되자 이번엔 대통령의 대학후배가 서울중앙지검장(이성윤)으로 내려왔음에도 검찰은 총장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윤 총장은 10일 열린 전국 지검장회의에서 “검사가 정치적으로 편향된 것은 부패한 것과 같다”면서 선거사건 처리의 공정성이 의심 받지 않도록 해줄 것을 당부했다. 선거철이면 으레 듣게 되는 얘기지만 이번엔 왠지 엄중하게 다가온다고 느끼는 건 비단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그게 윤석열의 힘일 것이다. 문제는 그 힘이 권력과 충돌한다는 데 있다.
충돌의 강도를 지켜보면서 보수는 앞으로도 윤 총장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싶은 유혹을 받을 것이다. 그때마다 스스로 윤 총장에 대해 우리는 뭘, 얼마나 알고 있는지부터 물어야 한다. 그런 노력 없이 그에게 다가가는 건 짝사랑에 불과하다. 적어도 이념적으로 지향하는 방향은 같아야 할 것 아닌가. 적(敵)의 적(敵)은 친구라는 단순논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4.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
정치가 지나치게 법의 판단에 의존하는 게 한국정치의 고질병 중의 하나다.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너무 쉽게 법의 영역으로 가져간다. 정치의 사법화다. 작년 4월 여야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문제로 충돌하는 바람에 28명의 의원(한국당 23명, 민주당 5명)이 국회법 위반과 폭행혐의 등으로 기소된 것은 비근한 예다. 법의 판단을 구하기 전에 국회 차원에서 정치적으로(대화와 타협으로) 풀 수 있는 문제는 풀어야 한다. 그럴 거면 정치가, 국회가 왜 필요한가. 한국정치의 비효율과 무책임의 극치다.
사법의 정치화는 법이 정치의 영역을 넘나드는 것이다. 유착이라고 할 수 있다. 법의 외양을 갖췄지만 뒤로는 정치적 이익을 위해 복무해 정치검찰, 정치판사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그런 경우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사건을 비판했던 일부 판사들이 민주당에 입당한 걸 두고도 말들이 많다.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지난 2일 “법원이 건국 이래 가장 혹독한 사법파동을 겪었는데 당시 그 한가운데 섰던 법관들 중 일부가 선거철이 오니 정치를 하러 가셨다”고 했다. 그는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고, 피선거권에 제한이 없는데 정치를 하는 게 무슨 잘못이겠느냐”면서도 “그분들 몸에 투영된 법관의 이미지가 채 가시기도 전에 서둘러 정치로 입문하셨다”고 했다.
만에 하나 윤 총장이 정치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면 이 또한 ‘사법의 정치화’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마침내 ‘사법과 정치의 일체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냉소적 반응도 있지만, “이회창 전 대법관도 정치에 뛰어들어 대선 후보까지 가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다. 윤 총장은 이날 검사장회의에서 “검찰에게 정치적 중립은 생명과도 같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중립에 최선을 다하다가 임기를 마치고 나오면 그땐 어떻게 될까. 윤 총장 자신만이 알 터이나 나는 그가 끝까지 중립을 생명처럼 아는 ‘영원한 검사’로 남았으면 한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예컨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7일 “윤석열의 검찰조직은 힘으로 제압하지 않으면 통제가 안 된다”고 했던 것처럼, 그를 계속 압박해 끝내 정치판으로 끌어내게 된다면 그땐 또 어쩔 수가 없는 것 아닌가 하고 그저 생각해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