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국 칼럼] 에리식톤 콤플렉스
2020-02-08 09:00
그리스∙로마신화에 에리식톤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신들의 저주를 받아 먹어도 먹어도 배고픔이 꺼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자신의 전 재산을 다 팔고 심지어는 자신의 딸까지도 팔아서 먹을 것을 챙겨도 그는 만족할 수 없었다. 결국 에리식톤은 자신의 몸까지 다 뜯어먹어 죽음에 이르면서도 허기를 채워야 한다는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독일 카셀대학의 김덕영 교수는 한국 자본주의의 정신을 에리식톤에 빗대어 에리식톤 콤플렉스라고 했다. 지난날 우리는 못살고 허기진 시절을 극복하기 위해 ‘잘살아보세’라는 표어를 내걸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열심히 뛰고 뛰었다. 그리하여 애초 목적하였듯이 허기를 채우고 가난을 극복하였지만, 한번 발동된 욕망은 멈추지를 않는다. 김 교수는 자신의 책 <에리식톤 콤플렉스>에서 이를 목포에서 서울로 가는 열차 여행에 비유하며 이렇게 말한다.
목포에서 익산, 대전, 조치원, 천안 등에 도착하면 해당 도시와 그 주변 지역을 관광하면서 자연, 역사, 문화, 예술 또는 특산물을 체험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오로지 도착 그 자체가 목표이며, 따라서 한 역에 도착하면 조금도 지체하지 말고 다음 역을 향해 출발해야 한다··· 중단 없는 전진과 휴식 없는 노력을 통해 100달러 역, 200달러 역, 300달러 역으로 달려야 한다. 종착역에 도착하면 다시 여행을 시작해야 하는데, 이때에는 역명이 1000달러 역, 2000달러 역, 3000달러 역 등으로 바뀔 것이다. 결국 열차를 타고 목포에서 서울로 가는 개인들의 존재는 철저하게 생산적 노동과 그 결과의 양적 표현, 즉 돈으로 환원되었다. 이렇게 해서 한국 자본주의에 독특한 에토스, 즉 한국 자본주의의 정신이 생성되었다. 에리식톤 콤플렉스가 생성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에리식톤 콤플렉스는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극복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 1960년대에는 100달러 정도에 불과하던 욕망이 1970년대에는 1000달러로 커졌다. 그리고 김영삼 정권에서는 1만 달러로, 노무현 정권에서는 2만 달러로 그리고 이명박 정권에서는 급기야 4만 달러로 커졌다.
지금 우리 사회, 국가는 물론 개인들도 이 에리식톤 콤플렉스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닐까? 욕망은 멈출 줄을 모른다. 그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 깨어 있는 정신이 없다면 우리 모두는 욕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욕망에 미쳐 돌아다니는 것이다. 지금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과 대립도 결국은 상대를 더불어 사는 존재로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욕망 충족을 위한 수단이나 욕망 충족을 위해 배척해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러한 욕망을 제어하고 영적으로 깨우쳐 주어야 할 종교도 이런 세속적인 욕망에 휩쓸려 들어가는 것 같다. 그러기에 종단 내 이권에만 집착하여 싸움을 벌이고, 교회의 크기와 교인들의 숫자에만 집착하며 물질적 축복을 구하는 교인들에 영합한다. 그래서 김 교수는 교회가 돈과 물질적 재화에 대한 무한한 욕망을 신의 축복으로 정당화하고 신성화하며 에리식톤 콤플렉스를 성화(聖化)한다고 한다. 종교만 그런 것이 아니다. 미래 세대를 올바로 이끌어야 할 교육도 성적 지상주의에 빠져 경쟁에서 살아남는 교육만 중시하지, 이런 거대한 욕망의 흐름에서 깨어 있는 자아에 대한 교육에는 소홀하다.
혹자는 그럴지 모른다. 이 치열한 국가 경쟁 시대에 자칫 방심하면 우린 선진국가로 향하는 대오에서 탈락하는데 그런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느냐, 아니? 벌써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것 아니냐 등등. 경쟁에서 낙오하지 않으려고 치열하게 달려야 하는 것은 언제쯤에나 멈출 수 있을까? 에리식톤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 경주는 죽어서야 멈춘다. 에리식톤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라는 것은 나태해지라는 것이 아니다. 그런 욕망의 노예가 아닌, 욕망을 조절할 수 있는 주체적인 인간, 깨어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글을 접으려는 순간, 문득 요즘 사회를 공포에 물들게 하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도 결국은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괴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