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코로나]中企 사장의 절규 "열흘 더 문 닫으면 망합니다"
2020-02-05 00:20
한 달째 가동 중단, 강제휴무에 퇴출 기로
금융권에선 "한계기업 퇴출 기회" 지적도
채소값 692% 뻥튀기, 궁지 몰리는 서민들
금융권에선 "한계기업 퇴출 기회" 지적도
채소값 692% 뻥튀기, 궁지 몰리는 서민들
#. 지난 1일 중국 장쑤성 우시의 한 공작 기계 제조업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 당국이 명령한 강제 휴무 기간 중 공장을 가동했다가 적발됐다. 해당 업체 사장은 납기일을 못 맞추면 거래처를 잃을 판이라고 하소연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이튿날 업체는 또다시 공장을 돌리다가 들켰고, 사장은 공무 집행 방해로 체포됐다. 몰래 생산한 제품은 압수됐다.
4일 기자와 만난 현대차 협력업체 A사의 한국인 사장 김영선씨(가명)에게 이 사연을 들려주자 "법을 어긴 건 잘못이지만 현 상황을 고려하면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고 반응했다.
춘제(春節·중국 설) 연휴는 지난 2일 끝났지만 A사가 소재한 허베이성을 비롯해 베이징·상하이 등 주요 지역은 오는 9일까지 기업 연휴를 연장한 상태다. 김씨는 "남쪽으로 갔던 직원들이 복귀하지 않은 데다 아직 방역 마스크도 못 구해 9일이 지나도 공장을 정상 가동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당국과 현대차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동석한 협력업체 B사의 중국인 사장 류웨이(劉衛·가명)씨는 "현대차 의존도를 낮추려 수출 확대에 주력했는데 이번 (신종 코로나 발병) 사태로 차질이 생겼다"며 "한달째 공장을 돌리지 못하는 바람에 체코의 새 거래처가 요구한 납기일을 맞추는 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씨는 "매출이 급감한 데다 강제 연휴가 길어져 고정비 지출까지 늘어나 부담이 크다"며 "열흘 뒤인 15일 이후에도 상황이 호전되지 않으면 버티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기업은 죽겠다는데··· "옥석 가릴 기회" 주장도
김 사장과 류 사장이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니다. 이날 신경보 등에 따르면 요식 프랜차이즈 기업인 시베이유몐춘(西貝莜麵村)의 창업자 자궈룽(賈國龍) 회장은 춘제 연휴 전후로 한달간 7억~8억 위안(약 1187억~1356억원)의 손실을 봤다고 밝혔다.
중국 내 점포 400여개, 직원 수 2만명 이상인 시베이유몐춘의 연 매출은 60억 위안이다. 자 회장은 "현재 1만명 넘는 직원을 기숙사에서 관리하고 있다"며 "신종 코로나 사태가 지속하면 보유 현금에 대출을 더해도 3개월 후에는 임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당국도 이런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삼성전자 가전 공장과 반도체 후공정 공장이 있는 장쑤성 쑤저우 정부는 실업 보험료 절반 환불, 사회보험료 및 토지·부동산세 납부 시한 연장 등의 조치를 내놨다. 베이징과 상하이 등은 쇼핑몰과 상업용 빌딩 입주 업체의 임대료를 감면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중국 시장조사업체 윈드(WIND)는 3일 하루 동안 중국 각지에서 발표된 임대료 감면 조치로 100억 위안(약 1조7000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한계기업 퇴출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의외의 목소리도 나온다. 루정웨이(魯政委) 흥업은행 수석애널리스트는 금융시보와의 인터뷰에서 "전염병 발생은 좋은 기업을 가리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며 "제대로 대처하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 것이고 그러지 못한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금융·증권가의 많은 인사가 이런 의견에 동조한다. 신종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문을 닫는 기업이 속출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폭리에 재고 부족까지··· 소비 위축 불가피
왕장핑(王江平) 중국 공업정보화부 부부장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생산 대국이지만 (춘제 연휴와 전염병 때문에)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며 "최대한 노력했지만 40% 수준"이라고 고백했다.
당연히 식자재와 생필품, 방역 물품 공급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 와중에 폭리를 취하려던 기업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중국중앙방송(CCTV)에 따르면 상하이의 까르푸 쉬후이(徐匯)점은 배추 등 채소를 최대 692% 비싸게 팔다가 걸려 지난달 30일 200만 위안(약 3억4000만원)의 벌금을 얻어맞았다. 허베이성에서 백화점과 마트를 운영하는 바오바이(保百)그룹도 같은 혐의로 같은 액수의 벌금이 부과됐다. CCTV는 지난 일주일 동안 50만 위안(약 8500만원) 이상의 벌금이 부과된 기업만 10곳에 이르는 것으로 보도했다.
지역도 허베이·허난·칭하이·후난·장시·산둥·산시·장쑤성 등으로 다양하다. 사실상 중국 전역에서 소비자를 상대로 한 불공정 거래가 판치는 셈이다.
바이러스 감염을 우려해 외출을 극도로 꺼리는 탓에 나 홀로 호황을 누리는 전자상거래 플랫폼 등 정보기술(IT) 기업들의 상황은 다를까.
기자가 직접 신선식품 매장의 모바일 앱을 통해 200위안어치의 물건을 구매해 봤다. 구매액의 9%에 해당하는 18위안의 배송비가 붙었다. 춘제 연휴 전보다 30% 이상 상향 조정된 금액이다. 밖에 나갈 엄두는 안 나는데 배달원은 부족하고 배송비도 비싸다. 생수 등 주요 물품 재고량도 충분치 않다.
기자의 거주지 반경 5㎞ 이내 신선식품 매장 중 5분의2가 여전히 문을 열지 않았다. 바이러스의 습격을 받은 중국인들의 삶이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