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미국 대통령 선거와 한국
2020-01-30 18:00
미국 대통령 선거는 아직 9개월이나 남았지만 다음 주 월요일에는 그 전초전이라 할 수 있는 아이오와 주의 민주당 코커스(당원대회)가 열린다. 여기서 민주당원들은 자신들의 대선 후보를 뽑게 된다. 그 다음 며칠 후에는 뉴햄프셔 주에서 당원들과 일반인이 참여하는 프라이머리(예비선거)를 통해 후보를 선출하게 된다. 여름이 오기까지 각 주에서 이런 과정을 거쳐 민주당의 후보를 결정하게 되고, 이 후보는 11월 초 공화당의 트럼프 대통령과 최종 승부를 가리게 된다. 이렇게 복잡하고 긴 미국의 선거 과정을 한국으로서는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안보나 경제 등 모든 문제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현 트럼프 행정부가 주한 미군 주둔 비용을 다섯배나 올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마당에 많은 한국인은 아마 트럼프의 패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통상 문제에 있어서도 한국에 계속적인 압력을 가하고 있고 한국을 동맹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사업 거래처로 여기는 듯한 그의 태도에 분개하는 한국인이 늘고 있다. 그가 대 중국 관세 강화 등 보호무역정책을 밀어붙여 세계 무역 질서를 흔들고 있는 것도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있어서는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한때 한반도를 뜨겁게 했던 북한 김정은과의 대화도 동력을 잃은 상황에서 남북 관계에 있어서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크게 기대를 걸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아직까지 북·미 대화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한국 정부만이 아마 그의 재선을 바라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트럼프와 대항하게 될 민주당 후보는 누가 될 것인가? 아직까지 명확한 선두 주자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여러 후보가 경합하고 있고 이 중에 4명이 아이오와 당원대회에서 앞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버니 샌더스 버몬트 주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 매사추세츠 주 상원의원, 피터 부티지지 인디애나 주 사우스밴드 시장이 그들이다. 이들 중 바이든과 부티지지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정책 노선을 견지하지만 샌더스와 워런은 보다 진보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 두 상원의원은 특히 미국의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부유세나 건강보험의 대폭 확대 등 급진적인 재분배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후보의 선거 공약은 대부분 미국 국내 문제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외교나 통상 등 대외 정책은 아직까지 확실하게 차별화되지 않고 있다.
다음 주 민주당 당원대회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민주당 후보가 있다. 총 재산이 60조원에 달하고 세계에서 아홉째로 부자인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이다. 엄청난 자신의 재산을 바탕으로 막대한 선거 광고를 무기로 삼고 있는 블룸버그는 민주당 경선에서 가장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벌써 2억 달러 이상을 텔레비전과 인터넷 광고에 쏟아부었고 대선까지 총 10억 달러를 선거 자금으로 쓸 예정이다. 이 때문에 다른 후보들로부터 선거를 “매수하고 있다”는 비난까지 듣고 있다. 때늦게 지난해 11월 출마를 단행한 블룸버그는 초기 당원대회나 예비선거에 참여하지 않고 3월에 있을 슈퍼 화요일(Super Tuesday) 예비선거로 직행할 계획이다. 텍사스 등 선거인단 규모가 큰 다수의 주에서 열리는 이 예비선거에서 블룸버그 시장은 선두 그룹에 합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구 온난화 등 문제에 있어 진보적 입장을 보이고 있는 블룸버그 시장은 미국 사회를 갈수록 보수화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을 낙선시키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여기고 있다. 실제로 현재까지 그가 집행한 텔레비전과 페이스북 광고는 다른 민주당 후보를 겨냥하기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얼마 전 인터뷰에서는 설령 자신이 민주당 후보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민주당 최종 후보를 위해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만큼 트럼프의 재선을 막기 위한 그의 결심은 확고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