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법 뜯어보기②] “벤처기업 확인기관장, 공공이 맡으면 용두사미"

2020-01-22 08:04
벤처업계 "민간이 맡아야 4차 산업혁명 시대 변화 대응"
기관장 선임이 핵심...중기부 “모든 가능성 열려 있다”

벤처기업 확인제도는 민간 중심 벤처 생태계 구축의 첫 단추로 여겨진다. 이노비즈인증 등 다른 평가제도가 있지만, 업력과 기술혁신능력 등 조건이 까다로워서 보통 창업 초기 기업은 벤처인증을 가장 먼저 도전한다. 제2벤처 붐 확산에 따라 창업이 늘면서 벤처기업 인증을 받은 기업이 가파르게 증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해 벤처확인 기업은 전년 대비 약 38% 증가했다.

벤처기업으로 인증을 받으면 각종 혜택이 뒤따른다. 법인세‧소득세 등 세제 감면을 포함해 금융, 특허, 기술임치 등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벤처인증을 받은 기업에 투자한 개인투자자는 3000만원 한도 내에서 100% 소득공제가 적용된다. 이 덕분에 벤처인증 기업은 초기투자를 받기가 유리하고, 투자 유치를 준비하는 비인증 기업은 벤처인증을 필수코스로 고려한다.

벤처확인을 받기 위해 직접 벤처투자를 유치하거나 연구개발기업으로 인정받는 선택지도 있다. 하지만 창업 초기 기업이 해당 조건을 충족하기는 어려워서 대부분 기술보증기금의 보증 승인을 통한 벤처 확인,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대출 승인을 통한 벤처 확인을 이용해 왔다.

현재와 같은 보증‧대출 중심의 벤처확인제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자율주행, 헬스케어 등 빠르게 변화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조금 더 유연하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혁신성과 기술성을 판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이번 벤처법 개정의 배경이 됐다.
 

벤처법에서는 벤처기업 확인을 위해 벤처기업 확인기관을 두고, 확인기관은 벤처기업확인위원회를 구성하도록 돼 있다. 확인기관장은 중기부 장관이 지정하고, 확인기관장은 벤처 전문가 등 50여 명을 위원회 위원으로 위촉한다. 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에 필요한 사항은 상반기 중 마련될 중소벤처기업부령으로 정한다.
 


업계에서는 벤처법의 취지를 고려하면 벤처기업 확인기관장을 민간에서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50명 이내의 벤처기업확인위원회를 구성하지만, 기관장이 위원회 위원을 위촉하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해마다 수만 건의 벤처확인신청을 일일이 위원회가 판단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기관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예상이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위원회가 수 만 건의 신청서를 다 평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예를 들어, 벤처확인 기준점이 60점이면 80~90점은 인증서를 바로 주고 50점이나 70점에 걸린 기업을 세부 심사를 통해 확인하는 형태로 역할이 한정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이어 “민간에 이양한다는 문구가 있지만, 어느 정도까지 맡기느냐, 위원회라는 바지사장을 앉혀서 용두사미로 끝나는 것은 아니냐는 불안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며 “벤처확인제가 정부의 민간 중심 벤처 생태계 구성 의지를 판단하는 척도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입장이다. 벤처기업 확인기관은 장관이 민간 또는 공공을 모두 다 지정할 수 있게 돼 있고, 구체적인 운영방안 또한 추후 논의를 통해 시행령 등으로 정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벤처기업 확인기관은 행정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벤처인증의 핵심 업무는 벤처기업확인위원회에서 처리하기 때문에 어떤 선택지라도 민간 중심이라는 방향성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중기부 관계자는 “벤처기업 확인기관은 접수 발급 통계 등 행정적인 업무를 대체하고, 실제로 인증에 대한 논의는 위원회에서 진행하므로 기관장이 혼자 좌우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며 “(기관장을 어디서 맡을지) 예측하기는 조심스럽고, 구체적인 안에 대해서도 준비 중이다. 상반기 중에는 구체화할 예정인데, 민간이 주도하는 벤처제도를 만드는 방향성은 분명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