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여자빨치산' 황순희 장례식 김정은 불참한 채 국장으로…최룡해 등 참석
2020-01-20 08:38
황순희, 김일성·'김정일 생모' 김정숙과 인연…'여자 빨치산 혈통' 대표 인물
북한 ‘혁명 1세대’ 황순희의 장례식이 북한 평양에서 국장으로 치러졌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조선중앙통신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며 조선혁명박물관 관장인 항일혁명투사 황순희 동지의 장의식이 19일 평양에서 국장으로 진행됐다”고 전했다.
통신에 따르면 장례식에는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원장 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비롯한 당·정·군 고위간부 70명으로 구성된 국가장의위원회 위원들과 유가족이 참석했다.
앞서 통신은 황순희가 17일 급성폐렴으로 인한 호흡부전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알리며 장의위원회 명단을 공개했다. 해당 명단 공개로 북한의 외교라인 ‘투톱’인 리수용 국제담당 부위원장과 리용호 외무성 외무상의 해임 사실이 확인됐다.
황순희 사망 당일 평양시 보통강구역 서장회관에 마련된 빈소를 조문했던 김 위원장은 이날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황순희는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모인 김정숙 등과 함께 동북항일연군에서 활동한 ‘여자 빨치산 혈통’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6·25 전쟁 당시 서울에 처음 입성한 류경수 전 105탱크사단장의 아내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숙의 주선으로 부부의 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황순희의 이런 인맥과 빨치산 출신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그를 예우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지난 2017년 조선혁명박물관 시찰 때에는 휠체어를 탄 황순희를 끌어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한편 최 제1부원장은 영결식 애도사에서 “절세위인들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 혁명가로서, 여성으로서 값높은 삶을 누려온 한생이였다”며 “수령의 사상과 권위, 영도를 백방으로 옹호하고 충직하게 받들어온 견결한 전위투사의 한생이였다”며 황순희를 회고했다.
이어 “그가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 앞에 세운 공적은 길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순희의 유해는 남편 류경수의 묘에 합장됐다. 고인의 시신이 실은 영구차가 대성산혁명열사능으로 이동할 때 평양 시민들은 슬픔에 잠겨 발걸음을 멈추고 깊은 애도의 뜻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20일 조선중앙통신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며 조선혁명박물관 관장인 항일혁명투사 황순희 동지의 장의식이 19일 평양에서 국장으로 진행됐다”고 전했다.
통신에 따르면 장례식에는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원장 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비롯한 당·정·군 고위간부 70명으로 구성된 국가장의위원회 위원들과 유가족이 참석했다.
앞서 통신은 황순희가 17일 급성폐렴으로 인한 호흡부전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알리며 장의위원회 명단을 공개했다. 해당 명단 공개로 북한의 외교라인 ‘투톱’인 리수용 국제담당 부위원장과 리용호 외무성 외무상의 해임 사실이 확인됐다.
황순희 사망 당일 평양시 보통강구역 서장회관에 마련된 빈소를 조문했던 김 위원장은 이날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황순희는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모인 김정숙 등과 함께 동북항일연군에서 활동한 ‘여자 빨치산 혈통’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6·25 전쟁 당시 서울에 처음 입성한 류경수 전 105탱크사단장의 아내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숙의 주선으로 부부의 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황순희의 이런 인맥과 빨치산 출신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그를 예우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지난 2017년 조선혁명박물관 시찰 때에는 휠체어를 탄 황순희를 끌어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한편 최 제1부원장은 영결식 애도사에서 “절세위인들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 혁명가로서, 여성으로서 값높은 삶을 누려온 한생이였다”며 “수령의 사상과 권위, 영도를 백방으로 옹호하고 충직하게 받들어온 견결한 전위투사의 한생이였다”며 황순희를 회고했다.
이어 “그가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 앞에 세운 공적은 길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순희의 유해는 남편 류경수의 묘에 합장됐다. 고인의 시신이 실은 영구차가 대성산혁명열사능으로 이동할 때 평양 시민들은 슬픔에 잠겨 발걸음을 멈추고 깊은 애도의 뜻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