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웅의 데이터 政經] 민심의 역습, 잔인한 4월?

2020-01-07 17:11

 

합리성을 추구하는 미국인은 2년마다 선거를 치르는 지혜를 냈다. 임기 4년인 대통령 선거 중간에 임기 2년짜리 하원의원 선거를 배치했으며, 이때 6년 임기의 상원의원도 3분의1씩 개선한다. 이는 특정정당이 행정부(대통령)와 의회(상·하원)를 독식할 수 없도록 하고, 사람들의 참을성을 2년 안팎으로 설계한 미국 민주주의의 기막힌 시스템이다. 통상 중간선거는 현직 대통령의 신임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즉, 지난 2년 동안 대통령과 행정부가 펼친 국정에 대한 여론을 묻는다는 측면에서 중간 평가적인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선거역사를 보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과 민주당 구분할 것 없이 대통령이 소속된 정당이 승리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20세기 이후 1902년부터 2018년까지 총 30차례 실시된 중간선거에서 여당이 하원 의석을 늘린 건 1902년, 1934년, 1998년, 2002년 단 네 차례뿐이다. 그나마 1902년은 여당인 공화당이 11석을 늘렸으나 의원정수가 29명 증가함에 따라 의석비율은 55.5%에서 54.1%로 오히려 줄었다. 1934년과 1998년에는 여당 득표율은 감소했으나 소선거구제 특성에 따라 의석이 각각 9석과 5석으로 약간 증가했을 뿐이다. 따라서 실질적인 여당 승리는 2002년 조지 W 부시 시절 단 한 차례밖에 없다. 이때 공화당은 9·11 테러 이후 안보문제를 쟁점화하는 데 성공하며 상원의석까지 동시에 늘렸다. 한편 16차례 방어에 나선 공화당이 평균 27.4석, 14차례의 민주당은 29.6석 등 중간선거는 민주당이 2석 이상 더 많이 패배했다. 심지어 뉴딜정책을 추진하며 12년간 집권한 프랭클린 루스벨트도 1934년 1승 이후 나머지는 각각 72석과 45석을 잃는 대패를 당했다.

이렇듯 중간선거는 기본적으로 여당에 대한 심판 프레임이 작동한다. 유권자들은 변화를 갈망하며 최소 2년을 참고 기다리지만 고대하던 변화가 없으면 지지층부터 실망해 투표장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 소속 당의 성적표가 부진하기 마련이다. 이는 우리나라라고 예외는 아니다. 5천년 역사에 처음 맞는 외환위기를 조기 극복한 김대중 전 대통령조차 임기 개시 2년 3개월 후 실시된 16대 총선 파고를 넘지 못하고 115석 대 113석으로 패배하였다. 1999~2000년 평균 성장률은 10%를 상회했지만 IMF의 요구에 따른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중산층과 서민들의 기대는 더 빠른 경기회복, 더 많은 고용이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세계 금융위기를 잘 수습하고 보금자리 주택 보급, 부동산 가격 안정 등으로 2010년 6.5%라는 놀라운 성장률을 기록했으나 취임 2년 4개월 차에 실시한 그해 6월 지방선거에서 시·도지사 6 대 10석으로 완패를 당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역시 임기 후반 세계 금융위기를 맞았다. 공공부문 고용을 늘리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게 되자 교육 및 건강 관련 일자리에 보조금을 쏟아붓는 방식으로 실업자를 줄여나갔다. 하지만 결국 그것이 화근을 불러 오바마에게 정권교체를 허용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즉, 연방노동통계청(BLS) 자료를 살펴보면 그가 집권한 8년 동안 비농업부문 및 민간고용은 각각 299만명과 125만명 증가했지만 질적인 면에서 보면 형편없었다. 먼저 산업의 기초가 되는 제조업 고용은 무려 417만개나 줄었다. 그에 파생해 소매업과 무역운송 관련 일자리도 줄줄이 감소했다. 그런데 주로 고소득층 일자리인 금융업과 전문·서비스업은 각각 0.4%씩 신장세를 보이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그 영향으로 2000년 가구 비중 18%를 구성하던 고소득층은 2008년 오히려 20%까지 증가했으나, 중산층은 51%로 3%나 감소했다. 제조업 붕괴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이를 정확하게 짚은 오바마는 1960년 이후 가장 높은 투표율(63%) 속에서 매케인 대통령 후보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경기부양을 통한 경제회복과 오바마케어를 통한 건강보험 개혁이 핵심공약이었는데, 약 1000억 달러 이상의 재원이 필요했다. 그러나 정확하게 2년 동안 인내하고 기다린 흑인 남성 및 히스패닉 유권자를 중심으로 2010년 중간선거에서 오바마에게 완전히 등을 돌렸다. 이들은 2008년 오바마 당선의 일등 공신이었다. 2010년 민주당은 여당 사상 하원의석(63석)을 1938년 이후 가장 많이 잃었다. 상원은 다행히 6석을 늘렸으나 47석 대 51석으로 공화당 과반의석 구조를 바꾸진 못했다. 가장 최근인 2018년 중간선거 또한 트럼프가 하원에서 41석을 잃었다. 보호무역과 고용 최우선 정책추진으로 선거 직전 선진국으로선 이례적인 분기성장률 4%대, 실업률 3%대까지 달성했으나 유권자들은 결코 만족하지 않았다. 즉, 중간선거 역사상 무려 104년 만에 최고 투표율(50.3%)을 기록하며 민주당 지지층 위주로 트럼프 심판대열에 합류했다. 특히 공화당은 2년 전 트럼프 당선의 일등공신이었던 러스트벨트를 포함한 주요 경합주에서만 16석을 잃었다.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고 출범했다. 그런 까닭에 지난 2년(2017년 2분기부터 2019년 2분기까지) 사이 임금근로 일자리는 약 71만개나 늘어났다. 양적으로는 엄청난 증가세이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고용의 질은 썩 좋지 않다. 먼저 제조업 일자리가 통계방식에 따라 2만~10만개 감소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공공·국방·사회보장행정과 보건·사회복지서비스업 등 세금으로 만드는 일자리가 32만~36만개 늘었고, 그 밖에 도소매·음식숙박(22만개) 등 저소득층 일자리가 주로 늘었다. 그 결과 중산층에 해당하는 3분위 균등화 처분가능소득은 지난 2년 사이 채 18만원 증가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에 반해 고소득층인 5분위(소득상위 20%)는 56만원 늘어나는 등 중산층과 고소득층 간 격차는 더욱더 벌어지고 있다. 3분위는 가구주 평균연령이 전세금 마련과 학원비 지출수요가 한창인 49~50세 사이로 5분위보다 더 낮다. 오히려 1분위(소득하위 20%) 평균연령은 63세가 넘어서서 대부분 노인 가구주이다. 고소득층 소득증가는 전문·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금융보험업 일자리가 5만~10만개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체 자영업 일자리는 제자리걸음이었으나 최근 1년 동안에만 나 홀로 가게 등이 13만개나 늘면서 다들 힘겹게 버티는 중이다. 그래서 2017년 문재인 정부 집권 당시 중산층 소득은 그나마 고소득층 대비 약 50%에 달했으나 2년이 지난 지금에는 47.7%로 뚝 떨어졌다. 저소득층은 물론이고 중산층조차 경제 한파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2020년 오늘의 현실이다.
 





 

모든 선거는 심판론이 본질이다. 그것도 가장 중요한 먹고사는 문제가 중심이 된다. 그런데 대통령 취임 직후 또는 1년 안팎 즈음 치르는 선거는 대선 연장전 성격을 갖는다. 그 이유 때문에 2008년 총선과 1998년 지방선거, 그리고 2018년 지방선거는 국정안정론이 힘을 발휘했다. 그렇지만 대통령 임기 만 3년을 앞둔 이번 4·15총선은 문재인 정부 핵심 국정·일자리 정책에 대한 엄중한 중간 평가일 수밖에 없다. 그 평가시험은 유권자를 대신하여 야당이 낸다. 다행히도 정부여당은 아직 14주라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 국민에게 진지한 반성을 하고 임기 후반 새롭고 구체적인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면 다시 한 번 선택될 기회는 충분하다.


최광웅(데이터정경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