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규 스페셜 칼럼] ‘친미’와 ‘친중’의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2020-01-01 19:03
'격난'의 핵심은 미·중 전략경쟁 시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중은 각기의 전략적 이해에 따라 한반도 문제를 해석하면서, 문제의 ‘해결’보다는 ‘활용’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극심한 정책의 변화가 가능한 불안정성, 불확실성, 불명확성 등이 가중되고 있다. 혼돈의 시기이다.
미·중 관계가 전략적 협력에 방점이 놓였을 때 북핵문제는 협력의 대상이었다. 미·중은 남북대화를 추구하도록 압박하였고, 미·중이 협력한다면 북한의 정책 공간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당시 국내는 친북이냐 반공이냐를 놓고 진보와 보수의 프레이밍(framing)을 만들어 정쟁을 하였다. 북한과 대화를 선호하면 친북이 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과감히 진보적 어젠다를 통해 우리의 내적 역량을 강화한다는 전략을 택하였다. 미·중은 물론 다수의 국민들도 이러한 정책에 호응하였다.
그러나 최근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전략적 경쟁 시대로의 전환은 더 이상 기존의 대북 유화 정책들을 전면적으로 추진하기 어렵다는 것을 말해준다. 미국의 대북정책은 북한을 친미화하지 못한다면, 대중 견제를 위한 수단으로서 보수적인 정책을 선호할 것이다. 중국은 이러한 미국의 전략에 저항하기 위해 진보적인 남북관계를 여전히 지지하면서도 동시에 자신들의 대북 정책수단들을 강화하려 노력할 것이다. 북한도 제 살길을 찾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한국의 역량만으로 이 구조적 제약을 뚫고 나가기가 버겁다. 함수가 복잡해진다.
한국의 지정학적인 위치는 미·중 사이에 낀 국가라는 것이다. 한국은 미·중에 대해 각기 대체 불가능할 정도로 안보와 경제 의존성이 높다. 선택하는 순간 국가의 존망이 흔들린다. 이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한국은 지속적으로 미·중의 압력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지정학과 의존의 현실이 국내를 끊임없이 ‘친중’과 ‘친미’의 갈등으로 갈라놓을 것이다. 미·중은 그리고 국내정치 일각에서는 의도적으로 이를 부추길 수도 있다. 이런 현실에서 향후 보수와 진보의 기준은 ‘친미’와 ‘친중’의 프레이밍이 될 개연성이 높다. 어느 길도 우리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길이다.
문재인 정부가 직면한 새로운 도전은 미·중 전략경쟁 시기에 이러한 프레이밍을 거둬내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시기 한·중관계는 사실 과거 어느 정부보다도 소원하고 교류가 없는 외안내빈(外安內貧)의 상황이었다. 중국을 어떻게 활용하고 다뤄나갈지에 대한 전략적 사고와 자신감도 부재하다. 중국은 문 정부가 친미정부라 생각한다. 미국은 문 정부가 미국의 이해에 제대로 순응하지 않는 노무현 2.0정부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다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금년에는 아마 시진핑 주석의 방한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러 수교 30주년을 맞이하면서 푸틴의 방한이 추진될지도 모른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외연이 급격히 군사부문으로 확대되면서 중거리 탄도미사일의 배치문제가 공론화될지도 모른다. 주한미군 주둔의 분담금 증폭문제로 미국은 계속 한국을 압박할 것이다. 국내 여론이 ‘친미’냐 ‘친중’이냐로 확연히 갈라질 수 있는 여건이 잘 형성되고 있다. 대외정책을 국내정치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하려는 경향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북한은 이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자신들의 생존 공간을 확보하려 할 것이다. 우리 스스로 이러한 프레이밍 전쟁을 시도·강화하는 것은 망국책이다.
경자년이 상징하는 ‘쥐’와 같은 생존력이 절실하다. 우리의 담론은 한국이 처한 현실과 우리의 역량, 그리고 객관적 실재에 대한 냉정한 평가 위에서 현 한·중관계, 그리고 미·중 전략경쟁에 대한 대응책이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과거 120여년 전 이완용이 직면했던 자기 좌절과 망국에 일조하는 역할을 이 시대의 지식인들이 똑같이 저지르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