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기지 4곳 즉시 반환... 1100억원 정화 비용 떠안나

2019-12-12 08:43
주민 건강 우려 탓… 부평 캠프마켓 정화 비용에만 773억원
정부 부인하지만... 방위비분담금 협상과 연계 전략 가능성

우리 정부가 장기간 반환이 지연돼온 4개 폐쇄 미군 기지를 반환받았지만, 미군과 오염 책임 정도를 합의하지 못해 1100억원으로 추정되는 정화 비용을 우선 부담키로 해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11일 오후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서 미국과 제200차 SOFA(주한미군지위협정) 합동위원회를 개최하고 원주 캠프이글(2009년 3월 폐쇄)와 캠프 롱(2010년 6월 폐쇄), 부평 캠프마켓(2011년 7월 폐쇄), 동두천 캠프 호비 쉐아사격장(2011년 10월 폐쇄)을 반환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미 양측은 △오염 정화 책임 △주한미군이 현재 사용 중인 기지의 환경관리 강화 방안 △한국이 제안하는 SOFA 관련 문서 개정 가능성 등에 관해 협의를 지속한다는 조건으로 4개 기지 즉시 반환에 합의했다.

기지 4곳의 정화 비용은 캠프 마켓 773억원, 캠프 롱 200억원, 캠프 호비 72억원, 캠프 이글 20억원으로 추산된다. 4개 기지 오염은 유류·중금속 등의 오염인 것으로 파악됐으며 캠프 마켓에는 다이옥신이 검출돼 정화 작업에 이미 들어갔다.

정부는 미군 주둔으로 환경오염이 발생했으니 정화 비용을 미군이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미군은 자신들이 오염 정화의 책임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미군은 4개 기지에 대한 환경 오염이 있다는 것은 동의하지만, 오염 정도가 'KISE'(인간 건강에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특히 원상회복과 보상의 의무가 없다는 입장으로, 현재까지 반환된 54개 미군 기지 중 정화 비용을 미군이 부담한 적은 없다.

결국, 정부는 오염확산 가능성과 개발계획 차질로 경제적·사회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해당 지역에서 조기 반환 요청이 지속해서 제기되는 상황을 고려해 조기 반환에 합의했다.

시민단체 녹색연합은 이날 성명을 통해 "이는 미측에 어떤 정화 책임도 묻지 않고 관련한 모든 비용을 우리 정부가 부담한다는 말"이라며 "정부는 환경관리 강화 방안, SOFA개정 등 그 어떤 것도 미측에 받아내지 못하고 오염덩어리 기지만 돌려받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이번에 반환받은 미군 기지 4곳에 대한 환경 기초조사 결과 토양에서 다이옥신, 폴리염화바이페닐(PCBs) 등 독성 물질이 확인됐고, 석유계총탄화수소(TPH), 구리, 납, 아연, 니켈 등이 기준을 초과했다. 

원주 캠프 롱은 2017년 조사에서 TPH, 벤젠, 카드뮴, 아연으로 인한 토양 오염이 심각했고, 동두천 캠프 호비도 2016년 납 오염이 기준치를 2.4배 초과했다.

반환대상으로 남은 22곳 중 용산 기지의 경우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아 향후 정화 비용이 수천억원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SOFA에는 환경 치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명확한 합의 사항이 없다"며 "미군과 논의를 하면서 SOFA에 (이러한 부분들을) 어떻게 반영할지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재로서는 오염 정화 비용을 직접 방위비 협상 목록에 포함시킬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나온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에 포함시킬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며 "증액 명분이 필요한 우리 입장에서 오염 정화 비용이 증액되면 자동적으로 우리 증액분이 늘어난다. 협상 측면에서는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와 군 관계자 등은 이번 조치와 관련해 "방위비분담금 협상과는 관련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녹색연합은 "우리나라의 국익을 위해 미측에 정화 책임을 묻기 위한 어떤 전략도 카드도 없이 협상에 임한 결과"라면서 "6조원의 방위비분담금을 요구하며 단 한푼의 오염 정화비도 내지 못하겠다는 미국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환되는 부평 미군기지 캠프마켓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