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회장, 대우 파업으로 인연 맺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홍영표 의원

2019-12-10 12:31
차에 노조 비대위원장 숨겨 도피 도와
386 운동권 채용 등 노동권에 비교적 우호적인 태도였다는 평가도

고(故)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노동조합과의 관계를 비교적 잘 풀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0년대 대우 계열사 파업 당시 파격적인 양보안에 합의하고, 당시 노동자 측 대표이던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도피를 돕기도 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1985년 4월 김 전 회장과 농성근로자대표인 홍 의원은 부평공장 임시회의장에서 단독으로 만나 대우자동차 파업과 관련한 담판 협상을 진행했다.

두 사람은 긴 협상 끝에 기본급 8% 인상과 장기근속수당신설 등 총 16.4%의 임금 인상을 내용으로 한 타협안에 합의했다. 당시 경총의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은 5.2%였다. 타협안에는 직원 식사 개선과 사원 기숙사 착공, 사원주택신축 등 복지 향상에 대한 부분도 포함됐다.

타협안은 당초 노동자 측의 요구인 기본급 18.7%인상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노동자 측 요구사안을 상당 부분 반영한 양보안으로 평가받았다.

김 전 회장은 그의 저서 '김우중 어록'에서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8일간 하루 1~2시간밖에 잠을 못 자고 대화에 임했다며 노사문제 해결의 실마리로 대화를 강조하기도 했다.

또한 김 전 회장은 당시 불법 파업으로 수배자가 된 홍 의원을 본인 차 트렁크에 숨겨 경찰 포위망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운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후 김 전 회장은 1990년대 초 386 운동권 출신 100여 명을 대거 대우그룹에 채용해 이목을 끌기도 했다.

과거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는 운동권 출신들에게 '기업이 30년 이상 되면 보수화돼 고인 물처럼 썩는다. 대우 어디든 가서 운동권 방식으로 싸우면서 문제제기를 하라'며 개혁을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2005년 김 전 회장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해외 도피 생활을 할 때 대우그룹에 취업한 386 운동권 출신 중 일부가 김 전 회장 구명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한편 김 전 회장은 생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본인을 특별사면한 이후, 노 전 대통령이 본인을 '노조 탄압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한 것 같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옥포 조선소에서 노사관계를 모범적으로 만들려고 노력한 점이나 학생운동권 출신을 채용한 점을 들어 노 전 대통령이 대우에 좋은 이미지를 가진 것으로 생각한다고 회고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87년 9월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씨가 최루탄을 맞고 사망하자 사인 규명 작업에 직접 나서 '3자 개입'과 '장례식 방해' 혐의로 구속되고 변호사 업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또한 90년대 대우조선의 거제 공장 파업에 적극 참여해 노사 중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생전 김 전 회장에 대한 노동자 측의 비판도 상당했다.

박노해 시인은 1989년 9월 '노동래방문학 통권제5호'을 통해 김우중 회장의 자본철학에 대해 맹렬히 비판했다.

박 시인은 김 전 회장이 본인의 저서에서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에 대해 '타인의 시간을 강제로 앗아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죄악'이라며 김우중 회장이 노동자들의 노동과 시간을 착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시인은 대우 조선 노동자들의 투신을 언급하며 김 전 회장에게 '당신은 대우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대우노동자들의 시간을 앗아감으로써 오늘의 대우왕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며 대우 노동자들이 필요노동시간 이상의 노동을 하고 있고, 그들의 잉여노동에서 창출되는 가치가 전적으로 김우중 회장에게 돌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숙환으로 별세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빈소가 10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