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ZOOM IN> 필자 안경환(安景煥) 조선대학교 교수 =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아주경제는 최고의 베트남 전문가로 통하는 안경환 교수의 '베트남 ZOOM IN'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안 교수는 1955년 충북 충주시에서 태어났다. 충주고를 졸업하고 한국외대에서 베트남어를 전공했으며, 베트남의 국립호찌민인문사회과학대학교 대학원에서 어문학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베트남 정부로부터 친선문화진흥공로 휘장, 평화우호 휘장을, 호찌민시로부터 휘호, 응에안 성으로부터 호찌민 휘호를 받았고, 베트남문학회에서 외국인 최초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2014년 10월 12일에는 하노이 수복 60주년 기념으로 하노이시에서 '수도 하노이 명예시민'으로 추대된 유일한 한국인이다. 2017년 11월 20일에는 국립호찌민인문사회과학대학 개교 60주년 기념식에서 ‘자랑스러운 동문 60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으며, 2018년 12월 베트남 정부로부터 우호훈장을 수훈했다. 2014년부터 한국베트남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편집자 주]


베트남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베트남은 지리적으로 약 6억3000만명이 살고 있는 아세안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인구 면에서도 1억명에 육박하고 있고, 한국이 선호하는 제1의 투자국이다. 작년도에 343만명의 한국인이 베트남을 찾았고, 올해는 400만명을 넘을 전망이다. 베트남은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 경제발전을 모델로 삼아 홍강의 기적을 이루려고 한다. 베트남과 지속적인 협력 체계를 구축하려면 베트남을 알아야 한다. 베트남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첫째, 정감이 풍부한 사람들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선물 주고받기를 좋아한다. 아주 작은 선물일지라도 서로 주고받으며 우의를 다진다. 조직의 장은 부하 직원들로부터 선물을 받는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긴다. 선물을 주고받는 것은 베트남 사람들이 정감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인간관계에서 정감을 우선시하고, 서로 무엇인가 주고받는 것은 서로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며, 선물을 귀한 정감의 표현으로 간주한다. 고대 베트남인들은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했는데, 높은 자리는 선물을 많이 받기 때문이었다. 마을에서 직급이 높은 사람은 결혼이나 장례식 때 해당 가정으로부터 사례의 선물을 받는다. 그 선물은 쌀 한 되 혹은 흔한 과일 한 개일지라도 받는 사람에게 큰 자부심을 갖게 한다. 또한 그러한 선물은 정신적인 만족감을 준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선물 주고받기는 끈끈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게 하였고 구성원 간에 단결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현대에 들어와 이러한 과거의 풍속은 많이 사라졌지만 선물 주고받기는 여전히 베트남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익숙한 풍습이다. 명절이나 뜻깊은 날, 멀리 갔다가 되돌아 올 때, 베트남 사람들은 친근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잊지 않는다. 비록 아주 작은 선물일지라도 선물을 받으면, 베트남 사람들은 자신이 존중을 받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선물을 주고받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긴다.

둘째, 공동의 안녕을 위해 평범한 사람을 필요로 한다.

일도 같이 하고, 먹는 것도 같이 하고, 공부도 같이 하고, 노는 것도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이 베트남 사람들의 일반적인 심리이다. 거래처 사장과 식사를 하게 되면 사장의 운전기사도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함께 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베트남 사람들의 평등주의 사상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베트남 사람들은 모두가 전우요, 한 동포로서 지위의 고하를 떠나 함께 어울린다는 것이 통일 베트남이 있게 한 원동력이다. 그러면 베트남 사람들은 왜 평등주의를 좋아할까? 베트남 전통사회는 공동체 정신이 오래전부터 발전해온 사회이다. 논농사를 짓는 수도작 농경사회에 있어서 물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강우량이 전국 평균 1800mm에 달하는데, 우기에 집중적으로 비가 쏟아진다. 홍수를 막기 위해 둑을 쌓는 일은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한 사람의 능력이나 힘만으로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공동체 전 구성원이 힘을 모아 대처하지 않으면 마을 전체가 공멸하게 된다. 때문에 베트남은 특출한 1~2사람보다는 공동의 안녕을 위해 함께 호흡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 톡톡 튀지 않는 사람을 필요로 해왔다. 이런 연유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다는 평등주의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수상(총리)의 급여나 장관의 급여나 비슷하고, 대학교수나 일반 사무직 근로자 급여와 별 차이가 없다. 이런 공동체 문화는 독립과 통일을 달성하기까지는 좋은 전통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이제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경제 건설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기에, 위아래 구분을 애매하게 하는 평등주의는 그것이 갖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조만간 변화하지 않을까?

셋째, 외제를 선호하는 사람들이다.

베트남은 동남아 한류의 진원지이다. 1999년 ‘의가 형제’가 베트남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된 이래 현재까지 약 200편의 한국 영화나 드라마가 베트남에 소개되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식에 매료되어 결혼식, 얼굴화장 등 모두 한국 스타일을 모방하려는 분위기이다. 일반적으로 베트남에서는 외국인이라면 내국인보다 대접을 받는다. 전에는 러시아 사람이 가장 중시되었는데 그것은 베트남을 가장 많이 도와주었기 때문이고, 미국인을 가장 미워했는데 베트남을 가장 많이 파괴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미국을 제일 높이 평가하는데, 나라가 부강하기 때문이다. 스웨덴 사람은 그들의 인도주의적 심성 때문에 존중받는다. 단 며칠일지라도 외국에 나가는 것은 베트남 사람들에게 큰 자부심을 갖게 한다. 여러 국가에 갈수록 그 자부심은 커지고 외국에 여행을 다녀오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받는다. 만일 외국으로 유학을 간다면 비록 그 나라의 수준이 베트남과 비슷할지라도 국내에서 공부한 것보다 높이 평가받는다. 베트남인들은 외제를 아주 선호한다. 어떤 것이든지 외제는 국산보다 좋은 것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베트남에는 일본, 한국과 같은 국산품 애용의 사상이 부족하다. 선물도 외제일 경우 국산보다 높이 평가받는다. 때문에 소위 “짝퉁”이라고 하는 가짜 유명 메이커 상품이 잘 팔리는 것이다. 베트남을 방문해 보면 “...여객”, “... 교회”...한글이 그대로 적혀있는 중고버스가 시내에 운행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베트남 사람들의 외제선호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사회의 단면이다. 1986년 ‘도이머이’ 개방화 정책을 시행하기 전에는 외국과의 교류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외국에 대한 호기심이 커졌다. 전쟁의 여파로 공업발전이 늦어 품질이 우수한 외제상품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베트남도 공업이 발달되고 경제가 발전하여 구매력이 커지면 외제선호사상도 많이 사라지지 않을까?

넷째,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들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인정이 많은 사람들이다. 더운 지방이지만 베트남에서는 뜨거운 차를 마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따라준 차를 마시고 나면 금방 채워주는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들이다. 술도 마찬가지다. 술잔을 비우기 전 잔을 채워주는 첨잔을 꺼리는 한국과 달리 베트남 사람들은 한 모금 마시고 나면 한 모금만큼 따라 잔을 채워 준다. 단, 자기 술잔으로 권하지 않고 상대방의 술잔에 채워주는 것이 다르다. 베트남 전통사회에서는 즐거운 일, 심지어 장례와 같은 슬픈 일이 있을 때도 대부분 손님들에게 접대를 해야 했으며, 과거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마을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베풀어야 했기에 술 권하는 풍습은 일상적인 일이고 자연스럽다. 승진을 해도 한 턱, 복권에 당첨되어도 한 턱, 자식이 시험에 합격해도 한 턱을 내는데 체면을 중시하는 베트남 사회이고 보면, 대개 접대비용이 자신들의 소득 범위를 벗어나게 마련이다. 이러한 술 마시기 풍습이 보편적인 것은 남부 베트남 사람들이다. 남부는 땅은 넓고 인구는 적었다. 인구에 비해 먹을 것이 풍부하니 이곳 주민들은 자연과 싸울 필요도 없었고 굳이 절약하거나 먹을 것을 비축할 필요가 없었다. 내일 먹을 것은 내일 다시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남부의 많은 지역에서 여성들은 하루에 두 번 시장을 간다.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서인데 그렇게 하는 것은 식품을 미리 사둘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외국인 투자가 증가하면서 새로운 스타일의 사교문화 또는 음주문화가 생겨나고 있는데, 소위 한국 스타일의 폭탄주가 생긴 것도 최근의 일이다.

다섯째, 상대방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가정집을 방문한다.

베트남 사람들은 같은 직장 동료들끼리 서로 상대방의 집에 자주 놀러다닌다. 만일 부하 직원이 상급자의 집을 방문하면 상급자는 대단히 좋아한다. 이는 베트남 사람들이 상대방 집으로 방문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정감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상대방에게 부탁을 하기 위한 것이다. 개인집에서는 여러 사람이 있을 때 하기 어려운 공적인 이야기도 마음 편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을 사과하기 위해서, 서먹서먹한 것을 해소하기 위해서, 장래를 대비하여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서 등 다양한 동기와 형태가 있으나, 집으로 방문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이해된다. 베트남 속담에 “겉으로는 이치, 속으로는 정” 이라는 말이 있다. 법과 이치는 겉포장에 지나지 않고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힘은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정감인 것이다. 상대방 개인 집을 방문하는 습관은 마을 공동체에서부터 형성된 것인데 좁은 골목에서 같이 살다보니 집을 찾아가는 것은 일상적인 일로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개인집 방문이 자연스러운 일로 굳어진 것이다.

비가 우기에 집중적으로 쏟아지기 때문에 상조상부하지 않으면 홍수를 막을 수 없었던 자연조건은 베트남 국민들로 하여금 단결심을 키워주었고, 식민통치를 받음으로써 독립 없는 국가의 국민은 노예와 같음을 피부로 느낀 베트남은 민족적 단결심과 자존심이 강하고 외세에 극히 배타적인 민족이 되었다. 베트남은 이제 외침을 막아낼 때 발휘하였던 민족적인 응집력을 경제건설에 쏟아 붓고 있다. 자원이 풍부하고, 노동력이 풍부한 나라, 혈연적으로, 역사적으로, 정신문화적으로 4촌 관계인 듯 가까운 베트남과 손을 맞잡고 21세기 아시아-태평양시대를 개척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