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식 칼럼] 우산과 가면

2019-11-26 16:12


                   

 

한달 전에 서울에서 만난 홍콩의 한 대학 교수는 1997년 홍콩의 주권이 중국에 반환된 이래 홍콩시민들이 경험한 다섯 차례의 민주화운동을 열과 성을 다하여 설명하면서, 광동어의 세계 홍콩에 가해지고 있는 중국 '베이징어'의 압력이 상상 이상임을 알려주었다. 홍콩의 민주화운동의 전체 모습을 언제 방문하면 잘 볼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그는 바로 지금이라고 답했다.

그가 말한 홍콩 민주화운동은 2003년 홍콩 정부가 홍콩판 국가보안법 제정을 추진했을 때, 50만명의 시민들이 반대 시위에 나서면서 시작되었다. 이 반대운동으로 홍콩 정부는 그 법안을 철회하였다. 두 번째의 민주화운동은 2009년 중국 전국 인민대표대회에서 홍콩 기본법을 개정하려면 중국의 사전 승인을 받으라는 반분열국가법 홍콩조항을 만들었을 때였다. 홍콩 시민들은 이에 강력하게 저항하였다. 세 번째는 2012년 홍콩 정부가 친중국적 ‘애국교육’ 과목을 필수 교과목으로 지정하려고 하면서 발생했다. 홍콩정부는 고교생들이 주축이 된 대규모 반대 시위에 직면하여 이를 철회하였다.

네 번째 민주화운동은 우리에게 우산혁명으로 잘 알려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요구 시위이다. 2014년 9월 홍콩의 대학생들은 홍콩 행정장관직 후보자격 제한에 반발하여 대규모 시위를 하였고, 경찰은 엄청난 최루탄을 쏘면서 시위를 진압하였다. 학생들은 휴대하고 있던 우산으로 최루탄을 막아내려고 안간 힘을 썼고, 그 우산들은 홍콩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다섯 번째가 올해 3월부터 시작해 6월에 100만명에 이른 시위로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그 출발은 범죄인 인도법 반대시위였는데, 홍콩정부가 이를 철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중학생과 대학생, 그리고 시민들은 그동안의 경찰 강경 진압에 대한 조사,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을 요구하면서 시위를 계속하였다. 이 과정에서 홍콩경찰은 시위대의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는 '복면금지법'을 시행했지만, 시위대는 마스크 대신 가면을 쓰고 더 강력하게 저항하였다. 홍콩 시민들이 쓰고 있는 가면은 그들이 느끼고 있는 절절한 위기감을 표현하는 도구가 되었지만, 그 가면들이 대부분 중국에서 생산된 것이라는 아이러니는 복잡한 홍콩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끈질기게 반복되는 홍콩 민주화운동은 1990년 제정된 홍콩기본법과 1997년부터 적용된 일국양제, 특히 홍콩의 자치권에 대한 중국정부와 홍콩 시민들간의 해석의 차이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중국정부는 ‘일국양제’에서 전자에 방점을 찍지만, 홍콩의 민주파 시민들은 후자를 강조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홍콩의 근현대사를 식민주의의 맥락에서 해석하지만, 홍콩시민들은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번영에 익숙해있다. 중국은 홍콩의 미래에 외부세력이 개입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경찰의 강력한 탄압에 직면한 홍콩 시민들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국제 연대를 호소하고 있다.

홍콩 시민들은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지난 6월의 대규모 시위가 시작될 때, 홍콩 시민들은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경찰의 탄압이 격화되고, 급기야 중국 인민해방군이 홍콩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홍콩 시민들의 연대요청에 응하는 한국의 인권단체와 대학생들에 대하여 중국에서 온 유학생들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사드문제로 오랫동안 갈등을 빚었던 한중관계가 겨우 복원되려고 하는 상황에서 홍콩의 민주화운동에 접근하는 태도에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한국 정부나 시민사회의 입장이다.

지난 24일 치루어진 홍콩 구의회 선거에서 민주파가 친중파를 누르고 압승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결과에 안도하였지만, 과연 이 선거결과가 6개월동안 지속된 민주화투쟁을 일단락지우고 홍콩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올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2020년의 입법회 의원선거, 2022년의 행정장관 선거는 주민 직선제가 아닌 여러 제도적 장벽을 친 간접선거이기 때문에 주민들의 자치권에 대한 요구와 충돌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일국양제의 실험장인 홍콩문제가 주변국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당장 대만이 긴장하고 있으며, 싱가포르를 비롯한 동남아시아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냉전분단체제를 극복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상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랫동안 다르게 살아온 두 사회를 통합하는 것은 다르게 살아온 만큼의 기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지 모른다. 1954년 금사향이 불렀던 홍콩아가씨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최루탄 가스와 먹구름이 드리운 홍콩의 밤하늘에 다시 별이 반짝이는 날이 오기를 기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