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입주자가 깐깐해졌다…대단지 부실시공 문제 제기 잇따라

2019-09-29 17:14
사전 입주점검 대행 서비스까지 받으며 준공허가 불허ㆍ하자보수 등 강력 요구
SNS 통해 정보 공유 집단행동…청약신청 전 "컨소시엄 단지냐" 등 확인 요청도
갈수록 건설사 시공 책임ㆍ비용 등 부담 커…사업 불투명 속 위험 분산도 쉽지 않아

서울 강동구 고덕동 그라시움그라시움 전경 [사진제공=강동구청]



아파트 소비자들이 깐깐해졌다. 사전점검에서 하자가 드러나면 '집값 떨어질세라' 쉬쉬하던 과거와 달리, 하자 사실을 적극 알리고 시공사와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이다. 신축 아파트에 입주하기 전 사전점검을 통해 하자를 찾아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도 최근 급증하는 등 소비자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과거에는 정보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목소리를 낼 창구가 한정적이었다면, 최근에는 입주자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하자와 관련한 정보를 공유하고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다. 두 개 이상 건설사가 공동 수주해 짓는 컨소시엄 아파트의 경우, “몇 동이 대형 건설사가 짓는 곳이냐”고 확인하는 등 청약을 넣기 전부터 꼼꼼하게 확인하는 소비자들도 많다. 

특히 재개발·재건축의 경우 주택 소비자들이 이처럼 깐깐해지면서 시공사에 대한 조합의 요구조건도 까다로워지고 있다. 시공사 선정 입찰 참여 자격을 제한하거나 특화설계 등 구체적인 시공 품질 수준을 제시한다. 최근 건설 수주난에 허덕이고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 확대 등으로 수익구조가 악화일로에 있는 건설업체들로선 갈수록 성실 책임시공 부담과 비용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특히 주택사업의 위험이 커지는 상황에서 건설업체들이 사업 위험을 분산하기도 쉽지 않다.  

29일 서울 강동구청에 따르면 5000가구에 육박하는 강동구 고덕그라시움 아파트는 전날 준공허가를 받고 30일부터 입주를 시작한다. 이로써 조합원·시공사와 입주민 간 부실시공 갈등을 매듭지었다.

강동구청 관계자는 “고덕그라시움은 28일자로 준공승인이 났다. 하자와 관련해 입주예정자와 조합원·시공사 간 입장차가 있긴 했으나 구청이 적극 나서 의견을 조율했다”고 말했다. 이어 “구청에 들어오는 그라시움 관련 민원이 하루 평균 100여건에 달할 정도로 갈등의 골이 깊었다”고 덧붙였다.

앞서 고덕그라시움 입주예정자협의회는 부실시공으로 중대한 하자가 발생했다면 강동구청이 준공허가를 불허해 달라고 구청에 요청했다. 입주를 앞두고 지난달부터 입주자 사전점검을 진행한 결과, 공용 공간의 마감 수준이 떨어지고, 일부 커뮤니티 공간과 일부 가구 내부 천장에서 누수가 발생해 곰팡이가 생기는 등 부실공사가 심각하다는 주장이었다. 시공사와 조합 측은 “협의회에서 주장하는 중대 하자는 사실이 아니다”고 맞서며 첨예하게 대립했다.

고덕그라시움은 입주와 관련, 강동구청의 중재로 모든 커뮤니티 공간 및 공용공간을 인근단지 솔베뉴, 고덕래미안 힐스테이트와 비교해 동등 이상의 수준으로 개선키로 하면서 입주 대란을 막을 수 있었다.   

주목할 점은 최근 부실시공을 둘러싸고 나타나는 갈등이 고덕그라시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해 말 준공한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아파트도 입주 후 부실시공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실제 이러한 아파트 하자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국토교통부가 운영하는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에 중재를 요청하는 사례는 매년 ​3000~4000건에 달한다.
 




사정이 이러니 신축 아파트 입주 전 사전점검을 통해 하자를 찾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전점검 대행 업체가 인기를 끌고 있다. 수십만원의 비용이 들더라도 사전에 하자를 확인하고 해결하는 게 낫다는 소비자들이 증가한 영향이다.

대행 업계 관계자는 “아파트가 선분양으로 이뤄지니, 사전점검 단계에서나 미흡한 점이 드러나곤 한다. 예전에는 ‘지어진 대로 살자’는 생각이었으나 요즘에는 소비자들이 똑똑해져 적극 문제 해결에 나선다”고 말했다. 이어 “대단지는 그나마 이슈가 되나 중소 단지나 지방은 입주자들이 목소리를 내도 들어주는 이들이 없다”고 덧붙였다.

고덕그라시움과 송파 헬리오시티 등 컨소시엄 아파트의 부실시공 문제가 알려지면서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컨소시엄 아파트는 엉망이다’는 의견도 퍼지고 있다. 강북권 재개발 최대어인 한남3구역을 비롯해 서울 서초구 삼익아파트 등이 입찰 공고에 단독 입찰을 요구하는 내용을 속속 포함시키는 추세다.

건설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컨소시엄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는 “컨소시엄이나 단독이나 하자가 있는 게 사실이다. 컨소시엄 단지들이 대단지이고 랜드마크여서 이슈화가 되는 것 같다”면서도 “부정적 기류가 강하니 컨소시엄 아파트는 모델하우스 리플릿에 어느 건설사가 어느 동을 지었는지를 표기하기도 한다”고 상황을 전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컨소시엄 단지인 서울 잠실 주공아파트를 재건축한 엘·리·트(엘스·리센츠·트리지움)가 준공된 지 10년이 지나며, 컨소의 장단점에 대해 소비자들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며 “컨소시엄은 책임 소재가 분산돼 시공 품질에 대한 불만을 해결하기 어려운 점도 있고, 조합 입장에서는 시공사 간 경쟁을 극대화시켜 더 좋은 조건을 내건 곳과 계약을 하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