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레포시장 유동성 위기, 또 반복된다?..."구조적 요인 탓"

2019-09-23 16:26
전문가들 "레포시장 발작 근본 원인은 은행권 유동성 경색 환경"
양적긴축·금융규제 강화·美재정적자 확대가 유동성 흡수

지난주 미국 금융시스템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업체들이 단기자금을 조달하는 오버나이트 레포(Repo·환매조건부채권) 시장의 유동성 경색에 차입금리가 10%까지 뛰면서다. 미국 금융업체들은 국채 같은 증권을 담보로 내놓고 이를 되사는 조건으로 하루짜리(오버나이트) 돈을 빌리는데, 이런 거래가 이뤄지는 시장을 레포시장이라고 한다.

평소 연준의 기준금리 수준에서 움직이던 하루 만기 레포 금리가 4배 넘게 급등하자 금융시장 소방수로 통하는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이 17일(현지시간)부터 나흘 연속 단기 유동성을 투입해 시장 진화에 나섰다. 연준이 레포시장에 긴급자금을 수혈한 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었다.
 

미국 오버나이트 레포금리 추이 [그래픽=CNN머니]


연준은 레포시장 발작이 기업들의 세금 납부와 국채 입찰 결제 등 기술적 요인으로 단기자금 수요가 급증해 벌어진 일이라고 설명했지만, 은행권에서 유동성이 부족해진 미국 금융시스템의 약점이 노출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레포금리 급등이 여타 금융시장이나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제한적이다. 거래 주체가 제한적인 단기자금 도매시장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포시장은 자본시장 전반이 원활히 돌아도록 윤활유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갖는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지적했다. 헤지펀드가 고수익 자산 매입을 위해 레포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국채 경매에 참여하는 '프라이머리 딜러' 은행들이 국채 입찰에 자기자본을 쓰는 대신 레포시장을 이용하는 게 그 예다. 

경기 상승기엔 레포시장 불안이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지금 같은 경기 하강기엔 금융시스템 전반에 충격파를 던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빌 캠벨 더블라인캐피털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아직까진 '배관' 문제에 불과하지만 빠르게 신뢰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블룸버그는 은행들의 유동성 부족의 배경으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일어난 두 가지 구조적 변화를 꼽았다. 연준의 양적긴축과 금융권 규제 강화다.

연준은 2008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던 시중 채권을 사들여 수조 달러에 이르는 유동성을 투입했다. 양적완화였다. 차츰 경제가 회복하자 2017년 10월부터는 보유 채권을 매각해 시중 유동성을 빨아들이는 양적긴축으로 방향을 바꿨다. 양적긴축은 22개월 동안 이어지다가 지난달부터 중단됐다.

양적긴축은 금융규제 강화로 가용 유동성이 부족해진 상황과 맞물렸다. 도드프랭크법이나 바젤III 등 금융위기 재발 방지를 위해 강화된 규제는 은행들에 자본 확충을 요구했다. 또 유동성 활용에 제약이 있다는 건 은행들이 수익률이 낮은 레포시장에서 자금을 대량으로 풀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지난주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최고경영자(CEO)가 "은행들은 엄청난 유동성을 보유하고도 쓸 수 있는 유동성에 엄청난 제약을 받고 있다"고 말한 게 이런 맥락에서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재정적자 확대도 은행들의 유동성 압박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투자자나 딜러가 채권 매입 형태로 정부에 빌려주는 돈이 은행권에서 빼낸 것이기 때문이다. 국채 발행 증가에 프라이머 딜러들의 레포시장 이용도 크게 늘었다. 올해 들어서만 국채 발행액이 1조2000억 달러에 이른다. 이대로라면 지난해 기록한 1조3000억 달러를 넘기는 건 시간문제다. 2017년에는 국채 발행액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연준의 금리 통제권 상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양적완화를 재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연준은 단기 유동성 투입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뉴욕 연은은 20일까지 나흘 연속 하루 최대 750억 달러어치 유동성을 투입했고, 10월 10일까지 3주에 걸쳐 지속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은행권 준비금 부족을 해소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단기자금시장 불안이 재발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마이클 페롤리 JP모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아마 우리는 준비금이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는 단서를 확인했는지 모른다"면서 "연준이 변화를 주지 않는 한 비슷한 상황이 더 자주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연준이 핵심 금융권을 상대로 실시한 스트레스테스트(재무건전성 평가)가 사실상 무위에 그친 셈이라고 비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