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한계 돌파는 더 이상 신화가 아니다.

2019-09-10 06:18
박상철의 100투더퓨처 ④

[박상철 교수]



<100 to the future> 필자 박상철 교수 =이제 120세 시대로 나아가는 지금. 노화(老化) 연구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박상철 교수의 ‘100 to the future(백, 투더퓨처)’ 시리즈 연재를 시작합니다. 박 교수는 서울대 의과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뒤 30년간 서울대 의대 생화학과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과기부 노화세포사멸연구센터와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을 역임했고, 현재 전남대 연구석좌교수로 활동 중입니다. 노화 분야 국제학술지 ‘노화의 원리’에서 동양인 최초 편집인을 지냈고 국제 백세인연구단 의장, 국제노화학회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노화 연구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노화이론을 세운 그의 논문은 과학저널 ‘네이처’지에 소개됐습니다.

<100 to the future>는 100세까지 보편적으로 사는 미래에 대비하자는 의미로 영화 '백투더퓨처'의 미래 귀환 뉘앙스를 차용한 시리즈 제목입니다. 이제 우리는 100세 시대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앞당겨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필자는 그 길어진 삶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건강하고 풍요로운 내일에 대해 실감나게 짚어나갈 계획입니다.<편집자주>


 인간에게 한계 돌파는 더 이상 신화가 아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이나 식물과 차별되는 특별한 위상을 가지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꿈이 있다는 것이다. 꿈은 인간을 보다 더 나은 그리고 더 멋진 세상으로 이끌어 나가게 하는 원동력이고, 생명체로서의 단순한 진화 차원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질적 발전과 도약을 가능케 하는 문화적 근원이 되어 왔다. 인간의 꿈은 산과 들을 마음대로 뛰어다니는 짐승들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와 바다를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들을 보면서 연상작용으로 반인반수(半人半獸)의 생명체를 창안해 냈다. 반인반마(半人半馬) 켄타로스, 반인반우(半人半牛) 미노타우로스, 반인반호(半人半狐) 구미호, 반인반어(半人半魚) 인어, 반인반조(半人半鳥) 세이렌, 반인반사(半人半獅) 스핑크스, 반인반사(半人半蛇) 복희, 반인반상(半人半象) 가네샤 등이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늘과 땅과 바다를 자유자재로 향유하는 동물들과 병합한 개체를 이룬다는 신화에는 신체적 능력의 확대뿐 아니라 인성이 지닌 심리적 한계까지도 초월하고 싶은 욕망이 담겨 있다. 나아가 인간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꿈의 형태가 더욱 발전한 것이 바로 반인반신(半人半神)의 존재이다. 신은 죽지 않는 영생의 존재이며 대자연의 모든 것을 알고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초능력의 존재였다. 그래서 신과 인간의 결합에서 태어난 존재를 상상하고 영웅성을 부여하여 특별한 숭배를 하였다.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쉬, 그리스의 헤라클레스, 아킬레스, 디오니소스, 우리나라의 단군을 비롯한 각국의 건국시조들은 모두 그런 영웅들이었다. 그러나 이들 반인반신들은 결국 신(God)은 되지 못하고 반신(Demigod)에 그쳤다. 아무리 신과 같은 능력을 신체적으로 갖추었더라도 인성이 공존하는 한 수명에 있어서 영생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으로 여겼다. 사람과 짐승 그리고 사람과 신의 육체가 서로 결합될 수 있다는 개념은 이후로 각종 하이브리드 생명체의 출현을 가능하게 하였다.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젊은 개체와 늙은 개체를 병체결합(竝體結合, parabiosis)하여 생명연장과 노화를 제어하는 혁신적인 방안을 개발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병체개념은 확대되어 이제는 인간과 동물, 인간과 신의 하이브리드가 아닌, 인간이 스스로 제조한 산물인 인공기계와의 하이브리드인 반인반기(半人半機)의 출현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인체 내 또는 인체 외부에 기계장치를 넣거나 부착하여 신체 능력을 증대한 트랜스휴먼이 등장한 것이다. 치아를 대신하는 임플란트, 의수 의족을 비롯한 각종 행동 보조장치, 인공혈관, 인공심장, 인공신장, 인공간뿐 아니라 시각 청각 등의 감각을 증강 보조할 수 있는 장치들도 이미 상용화되어 널리 이용되고 있다. 이러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지능마저도 대체한 후생인류의 출현으로 발전할 것은 분명하며 결과적으로 새로운 인류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다.

불로장생을 더 이상 신화에 멈추어 있게 하지 않고 직접 현실화하려는 시도들은 이미 2천년 전부터 이루어졌다. 약관의 나이에 왕위에 올라 마흔 무렵에 막강한 권력과 군사력으로 천하통일을 이룬 진시황의 마지막 남은 욕망은 죽지않는 것, 즉 불멸의 수명을 갖는 일이었다. 그의 불로장생에 대한 도전은 역사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전개된 엄청난 경비와 노력을 들인 불로초 탐구나 장생술 개발은 신비주의적 경향을 띠게 되고, 밀교적 형태로 변형되어 오직 한정된 특수층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비밀리에 보급되었다. 결국 수천년간 이어져 왔던 연금술사의 비밀주의에 의한 술법들은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고, 인간의 불로장생 꿈은 그대로 허무하게 끝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듯하였다.

그러나 최근 인간의 불로장생이라는 주제에 객관적 설득이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혁신적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생명과학기술의 발전과 전자공학을 바탕으로 한 IT기술의 눈부신 업적은 기술의 융합을 통하여 지금껏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미증유의 새로운 생명의 세계가 전개될 수 있음을 기대하게 하고 있다. 타임지가 2013년 9월호에 낸 특집의 제목이 “죽음을 정복할 수 있는가?”이었다. 구글사가 설립한 벤처기업인 칼리코사가 불로장생탐구가 목표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에 대하여 언급한 내용이 흥미롭다. 만일 구글이 하고자하는 일이 아니라면 말도 안되는 일이겠지만, 구글이 한다고 하니 불로장생이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동안 인간의 불로장생을 공개석상에서 논의하는 일은 금기였다. 불로장생은 불가능하고 비현실적인 신화적 유물이며, 이에 대한 논의 자체마저도 연금술시대의 사기적인 행위의 연장이며 논리적 근거가 부족한 채로 과장적인 표현을 하는 사이비 학자들의 행위로 간주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계적 IT 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지도자들이 한결같이 큰 관심을 표명하면서 인간의 불로장생 추구 연구가 새로운 단계로 들어서게 되었다. 이들 지도자들은 모두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IT 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이다. 이들은 컴퓨터나 모바일폰 등의 제조자가 아니라 첨단기술을 활용하여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이를 확대 발전시켜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환경과도 연결시키려는 천재적 전문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보통사람들과는 생각의 차원이 전연 다른 다차원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그 옛날 진시황이 가졌던 꿈 그러나 결국은 달성할 수 없었던 신화 속의 염원을 이천년이 지난 지금 승계하여 달성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집념이 상호 보완하면서 협력적으로 추진된다면 불로장생의 현실화도 상당부분 가능해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이미 인간은 신화시대부터 꿈같이 여겼던 달도 다녀왔고, 그리스 신화의 이카루스나 디달루스가 시도했던 것처럼 하늘도 날아 다니고, 각종 이동수단을 마음대로 활용하여 바다와 땅을 누비고, 수만리 떨어진 가족과 얼굴을 보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시간과 공간의 동시화와 공유화가 모두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인간은 신화 속에 나오는 신들만이 공유하여 왔던 공간에 들어가 활동할 수 있게 되었고, 신과 같이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 영원히 살고자 하는 욕망도 가질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바로 신화에서 거론된 인류의 꿈은 한계를 수용하는 차원이었지만 이제는 이러한 시간과 공간의 한계가 돌파될 수 있다는 희망이 제기되면서 인간에게는 새로운 차원의 세계가 열릴 것을 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