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수돗물 100일] ② 환경부가 컨트롤타워?…말로만 지자체 관리감독 강화
2019-09-08 06:00
"지자체 의무라며 환경부 손놓고 있어" 질타 이어져
'수도관 관리' 추상적 발표만…구체적 대책은 부실해
전문가 "지침마련 오래 걸리지도 않는데 왜 안하나"
'수도관 관리' 추상적 발표만…구체적 대책은 부실해
전문가 "지침마련 오래 걸리지도 않는데 왜 안하나"
인천 붉은 수돗물 사태가 발생한 뒤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상수도 수질에 문제가 있다는 민원이 잇따랐다.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을 비롯해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평택시 동삭동, 광주시 송정동 등 수도권을 비롯해 경북 포항시, 충북 청주시, 강원도 춘천시 등지에서도 민원이 접수되면서 수돗물 논란은 더욱 확산됐다.
지난 2017년 수돗물홍보협의회와 수돗물시민네트워크가 실시했던 ‘실태 조사’에서 보통이상 만족한다고 답한 시민은 90%에 달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수돗물의 신뢰는 곤두박질 칠 위기에 놓였다. 당장 환경부를 비롯해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상수도 공급체계에 대한 대책 발표와 대응 회의를 잇따라 열고 있다.
그러나 최근 정책 당국에서 내놓는 대책과 회의들이 당장 눈앞의 비판을 피하기 위한 방패막이용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당혹스러운 환경부…"지자체 감시기능에 의문 제기"
올해 들어 곳곳에서 터진 수돗물 대란으로 가장 당혹스러운 곳은 환경부다. 수도(水道)에 관한 종합적인 계획 수립과 관리사항을 포함하고 있는 수도법 상 환경부가 우리나라 수도정비를 책임지는 컨트롤 타워다.
지자체 한 곳도 아닌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수도대란'은 당장 환경부가 이 컨트롤 타워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는 비판을 불러왔다.
서울시 수도관리 관계자는 "인천처럼 지자체 한 곳에서 문제가 터지면, 인천시의 책임이 될 수 있지만, 사태가 전국적으로 확산하면서 환경부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인천시 붉은 수돗물 사태는 100% 인재(人災)라고 질책했던 조명래 환경부 장관의 발언은 '책임 떠넘기기'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수도법 2조는 특별시장을 비롯해 광역시장, 시장, 군수 등 지자체장이 주민이 질 좋은 물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상수원과 수도시설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지자체가 수돗물 질과 공급 관리의 주체이자 책임기관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동시에 수도법 4조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수도정비기본계획을 수립하려면 환경부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환경부가 전국 수돗물 관리의 최고 책임기관으로 불리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결국 지난 7월 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에서 환경부는 그야말로 난타를 당했다. 자유한국당 환노위 간사인 임이자 의원은 환경부가 5년마다 수도시설의 기술진단을 실시토록 한 수도법 74조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임 의원은 "환경부가 지금까지 상수도와 관련해서는 지방자치단체의 고유 업무라면서 손을 놓고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당의 신보라 의원 역시 환경부가 형식적으로 각 지방자치단체의 위기대응을 조사했다고 지적했다. 환경부가 위기대응능력 부문에서 인천시에 높은 점수를 줬기 때문이다.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수도정비 기본계획에는 수도관 현황조사나 평소 청소 주기 등 내용이 전혀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같은 당의 설훈 의원도 "국민들이 마음 놓고 마시게 하도록 장기적으로는 지방정부에 맡길 게 아니라 중앙정부에서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자체 관리강화 '동어반복'"···전문가 "단기간 내 가능한 지침 마련, 왜 안하나"
환경부가 좀더 체계적으로 수돗물 관리를 해야 한다는 지적은 최근에 나온 것이 아니다. 환경부 역시 수십년 전부터 지자체의 수돗물관리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 2001년 환경부에서 발표한 '수돗물 수질관리 종합대책'에서도 지방자치단체의 수돗물 위생관리 책무강화를 과제로 내놓고 있다.
그러나 매번 '관리강화'라는 추상적 대책 발표에 머물렀을 뿐 구체적 매뉴얼은 여전히 구축되지 못했다. 특히 이번 수돗물 대란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는 노후관 부실 사고도 구체적 매뉴얼 부족으로 발생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배재근 서울과학기술대학교 환경공학과 교수는 "환경부에서는 전국적 노후관 교체 계획, 관리지침 둘 다 나오지 않았다. 노후관 교체 계획 같은 경우에는 예산이 많이 들기 때문에 환경부가 계획을 세워도 지자체 예산 반영 등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면서도 "관리 지침을 세우는 건 오래 걸리고 어려운 일도 아닌데 왜 안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배 교수는 또 "우리나라 수도관 대부분이 30~40년 돼 노후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환경부가 큰 흐름에서 종합계획을 수립하는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면서 "지자체가 환경부 매뉴얼에 따라 똑같이 행동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배 교수는 매뉴얼에는 노후관 교체, 청소주기, 주민홍보 방법, 수도관 관리 행동 요령 등을 포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환경부 2017년 9월부터 관망관리 강화"···관련 용역은 지난 4월에야 착수
지난 2017년 9월 환경부는 "정수장부터 가정 수도꼭지까지 수돗물 공급 과정의 위생관리 강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수돗물 안전관리 강화 대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한다"고 밝혔다. 당시 발표된 자료는 상수도 관망 관리의무 강화를 비롯해 4개 분야의 11개 과제가 제시돼 있다.
전국적인 수돗물대란의 원인으로 꼽히는 부실한 관망관리 문제점을 당시에도 이미 인지하고 있었던 셈이다. 당시 환경부는 "수질 취약구간의 수도관을 세척하거나 수돗물이 샐 것으로 우려되는 지역의 누수 탐사와 복구 작업 등 수도사업자의 여건에 따라 단계적으로 상수도 관망 관리 책임이 의무화 된다"고 발표했다.
또 "상수도 관망의 유지관리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민간 전문업체 및 관망운영 관리사 등 전문인력도 양성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지방상수도 현대화사업에서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적극 도입해 사업 완료 지자체에는 유지·관리하는 법적의무가 강화될 방침이라는 포부를 강조했다.
그러나 대책 발표가 나온 지 만 2년이 된 2019년 9월 현재 환경부에 진척 사항을 문의했지만 "아직 발표하거나, 외부에 공개할 수 있는 수준의 결과물은 없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지자체에 관망관리를 의무화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아직 파악하는 단계라는 것이다. 파악을 위한 전문업체에 용역을 맡기기는 했지만, 그것도 올해 4월에야 시작됐다. 최종보고서는 내년 4월에 나올 예정이다.
만약 당초 개선 계획을 발표했던 2017년 말 전문업체에 용역을 의뢰했더라면 2018년말 최종보고서가 나올 수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관망관리 강화의 구체적 사안 검토를 위한 용역 착수 자체가 늦어지면서 환경부는 관망관리 체계와 관련한 여러가지 사안에 대해 대부분 '검토중'이라는 답변만을 내놓은 것이다.
환경부의 물통합정책국 물이용기획과의 오지현 사무관은 "전문업체에 용역을 맡겨 각 지방자치 단체들이 의무적으로 관리를 하도록 하는 방안을 만들고 있다"면서도 "(지자체의) 관망관리 유지가 의무화 될 경우에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검토'하는 단계"라고 밝혔다. 관련 법 제정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냐는 질문에도 필요한지 그렇지 않은지 '검토중'인 상황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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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가 밝혔던 전문인력 육성 계획에 대해서는 "(2017년) 당시 보도자료에 표현만 그렇게 됐을 뿐이지 환경부가 (관망관리) 인력을 직접 육성한다는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환경부의 물통합정책국 물이용기획과의 조석훈 과장 역시 "수도관망 세척 의무화를 위해서 관망유지 관리업을 만들 예정이다. 물론 이것도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조 과장은 "예전 정부가 정책을 수립할 때 사무실에서 몇몇 사람들끼리 전문가 의견 몇가지만으로 후다닥 만들었다"면서 "이제는 기본적인 방향을 잡고 충분히 의견을 듣기 위해 시간을 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관리강화 대책이 실질적으로 진전은 이뤄지지 않은 채 대책 위에 대책만을 내놓는다면 또다시 이런 위기는 재발할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서울시립대 환경공학부 구자용 교수는 지난 8월 29일 열린 '수돗물 안전관리를 위한 상수도 기술세미나' 발표 자료에서 "1970년대 이후 경제개발과 동시에 상수도관로 를 집중적으로 매설하면서 동시다발적인 상수도 사고가 앞으로도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상수도 사태 악화를 막기 위해서는 단기적으로 기술관리에 대한 진단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