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공공 클라우드 시장 열렸는데.. 갈길 먼 'SW 제값 받기'

2019-08-29 00:05
공공 클라우드 시장 60%대 약탈적 투찰 횡행... SW 제값 받기 유명무실
가격 경쟁 치중으로 클라우드 사업 전반 경쟁력 약화 우려... 제살 깎아먹기 지적도

공공 클라우드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투찰(投札) 가격을 사업금액의 60% 수준까지 낮추는 등 클라우드 업계에서 약탈적 거래가 횡행하고 있다. 정부가 '소프트웨어(SW) 혁신전략'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SW 제값 주기’ 사업이 유명무실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공공 클라우드 도입 활성화를 위해 추진 중인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의 ‘한국어능력 진단-보정 시스템’과 농촌진흥청의 ‘스마트팜 클라우드 전환 사업’이 초기 사업금액의 60% 수준에서 낙찰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국내 SW 기업 경쟁력 향상을 위해 SW 제값 주기 사업을 추진하며, 공공사업 입찰 시 사업금액의 80% 미만으로 입찰하면 ‘가격평가’ 점수에서 30%를 감점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대규모 SW 기업이 과도하게 가격을 인하해 중소 SW 기업이 공공시장에 참여하지 못하는 문제를 방지하고, SW에 제대로 된 가치를 부여해 국내 SW 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해당 정책은 SW 가격이 공개돼 있는 나라장터 공개입찰에만 적용된다. 시스템 구축을 위해 특정 사업자만 참여할 수 있는 비공개입찰에는 80% 제한이 없다. 특정 사업자가 향후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80% 미만의 약탈적 가격을 제시하더라도 이를 제지할 수 있는 뾰족한 수단이 없다. 사업규모가 5000만원 미만일 경우 입찰 가격을 사업금액에서 최대 2%까지만 낮출 수 있다는 제한이 있지만, 대부분의 용역 사업 규모가 5000만원을 넘는 관계로 유명무실한 규정이라는 평가다.

현재 나라장터에는 정부의 보안 인증을 받은 KT, 네이버비즈니스플랫폼(NBP), NHN, 가비아, LG CNS 등 5개 업체가 클라우드 용역 사업자로 등록돼 있다. 이들 5개 업체만이 공공 클라우드 구축 용역 사업자로 참여할 수 있다.

업계에 따르면 가비아가 한국어능력 진단-보정 시스템을, NHN이 스마트팜 클라우드 전환 사업을 각각 수주했다. 가비아가 향후 공공 클라우드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어능력 진단-보정 시스템 구축 사업을 원가 수준인 60%대까지 낮춰 수주했고, 이를 확인한 타 업체들도 스마트팜 클라우드 전환 사업에 참여하면서 입찰 가격을 60%대로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업 수주전에는 KT, NBP, NHN, 가비아 등이 참여하고 LG CNS는 참여하지 않았다.

클라우드 업계에선 공공 클라우드에 참여하는 업체들이 가격 경쟁에만 몰두하고 기술 경쟁을 소홀히 하게 될 것이라 우려한다. 해외 클라우드 업체들은 기술 우위를 활용해 기업들에 클라우드 서비스에 대해 제값을 받고 있는데, 국내 업체들은 가격 경쟁으로 제살만 깎아 먹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공공 영역에서 가격 경쟁이 심화되면 단가를 맞추기 위해 운영 자동화, 모듈식 서비스 등 필수 기술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무늬만 클라우드 서비스로 구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정부 기관이 모든 시스템을 클라우드로 전환하기로 결정한 사례가 나오면서 이러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 20일, 한국정보화진흥원(NIA)은 서비스 효율을 향상시키고 개방형 개발 플랫폼 ‘파스타(PaaS-TA)’를 민간에 더 효율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모든 시스템을 클라우드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사업에는 KT, NBP, NHN, 가비아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 향후 공공 클라우드 시장 주도권 확보를 위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대어'다. 앞서 두 사업에서 벌어진 60%대 출혈 경쟁이 충분히 재현될 수 있는 상황이다.

클라우드 업계 관계자는 "NIA는 단순 클라우드 전환뿐만 아니라 전환된 시스템에 파스타를 올려 국내 기업들에 공개할 계획인 만큼 고품질 클라우드 서비스 구축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며 "국내 클라우드 업체들이 가격 경쟁에만 과도하게 집중하고 기술 개발을 소홀히 하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기술인 클라우드 관련 경쟁력을 상실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