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인문학] 이제라도 '박제가'에 귀기울여야
2019-08-20 15:02
서준식 신한BNPP자산운용 부사장
중상주의 실학자 박제가(1750~1805)는 케인스보다 앞서 "소비가 경제에서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근검절약하는 바람에 나라가 가난하다고도 짚었다. 박제가는 "우물을 계속 길어야 마르지 않는다"고 했다. 소비와 생산이 얼마나 큰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역설한 것이다. 그는 "가장 약했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유는 해상무역"이라고도 했다. 박제가가 살았던 때를 감안하면 놀라운 식견이다. 사농공상을 없애고 천대해온 상인을 늘려야 나라가 부강해진다는 주장도 펼쳤다. 지금도 적극적인 통상과 탄탄한 내수 없이는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우리 역사는 박제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도리어 반대와 조롱에 부딪혔다. 물론 경제적인 가치에 지나치게 경도돼 "우리말을 버리고 중국말을 써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런 주장도 박제가를 깎아내리는 데 한몫했을 거다. 결국 그는 노론 벽파로부터 미움을 사 유배형에 처해졌고 3년도 안 돼 생을 마감한다.
'소비가 미덕'이라는 말은 이제는 상식이다. 생산자는 값싸고 질 좋은 상품을 많이 만들어 소비자를 만족시켜야 한다. 물론 이렇게 대량생산한 상품이 모두 소비돼야 생산자도 만족할 수 있다.
주식시장은 얼마 전 기준금리 인하에도 시큰둥했다. 부동산시장에서만 기대감이 커졌다. 실물경기를 부양하려고 푼 돈을 또다시 부동산시장에서 빨아들인다면 이제는 정말 희망이 없다는 걱정도 든다.
정부가 '돈길'을 잘 챙겨야 한다. 부채가 많은 가계가 빚을 줄이거나 여유가 있는 가계가 소비를 늘리면 혜택을 주어야 한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보다는 부채를 줄여 유효수요를 살리는 게 낫다. 지금도 박제가처럼 본질을 꿰뚫어 보고 창의적인 제안을 내놓는 경제학자가 많다. 당파나 이념을 떠나 이런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정치적인 혜안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