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의 시샘]대통령이 유행시킨 '흔들 수 없는 나라' 시인 김기림은 누구
2019-08-15 20:43
2019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통령은 두 편의 시를 읊었다.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은 심훈의 시 '그날이 오면'이었고, 용광로에 불을 켜라 새나라의 심장에 철선을 뽑고 철근을 늘리고 철판을 펴자. 시멘트와 철과 희망 위에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나라 세워가자"라는 구절은 김기림의 시 '새나라송(頌)'의 한 구절이었다. 심훈의 시는 비교적 대중적으로 익숙한 반면, 김기림의 시는 다소 낯설다. 대통령은 왜 하필 김기림의 시를 인용했으며 그의 시 속에 들어있는 '흔들 수 없는 나라'라는 구절을 찾아냈을까.
얼마전 문대통령은 청와대 비서관들에게 "광복 직후의 문학작품 중에서 경제건설 이야기가 나오는 작품을 한번 찾아보라"고 지시했고, 이에 연설문을 준비하는 비서관실에서 몇 편의 시를 대통령에게 추천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용광로에 불을 켜라 새나라의 심장에"라는 구절이 있는 김기림의 시를 낙점했다. 그 시에는 일본과의 갈등 및 각종 외교적 난제 속에서 고심하는 한국이 지향해야할 뜻밖의 메시지가 들어있었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 나라'라는 대목이었다. 최근 국가이기주의와 무역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이 이 나라를 흔들고 있는 상황인지라, 우리가 더욱 부강한 나라로 거듭나야 한다는 당위를 품을 수 있었다. 게다가, 문재인정부의 의욕을 폄하하고 비전을 공허하다고 일축하는 이들의 비판에 대항하는 의미도 들어있었다.
김기림은 1907년 함경북도 학성군에서 태어나 6.25 전쟁 중에 납북됐고 북한에서 타계한 것으로 알려진 시인이다. 보성고등보통학교를 나온 뒤 일본의 니혼대학 영문학과를 중퇴했고 도호쿠 제국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1930년 조선일보 공채 1기로 최연소 입사해 학예부 기자로 뛰었다. 조선일보에 '가거라 새로운 생활로'라는 작품으로 등단을 했고, '시의 기술,인식,현실 등 제문제'라는 평론을 쓰면서 평론가로도 활동했다, 1933년 이상, 이효석, 박태원과 함께 구인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1942년 고향으로 내려가 함북 경성(鏡城)의 중학교사로 일했다. 1945년 해방 뒤엔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했는데, 3년쯤 뒤에 탈퇴한다. 소련이 북한을 점령하자 남쪽으로 내려와 살았다. 중앙대,연세대 강사로 일했고 서울대조교수로도 근무했다. 1990년 6월9일 김광균과 구상 등 시인들이 주도해 모교 보성고등학교에 김기림 시비를 세웠다. 구인회에서 함께 활동한 이상이 김기림에게 보낸 편지가 여러 편 남아 있다. 그중에 하나를 소개한다.
"기림 형. 인천 가 있다가 어제 왔소. 해변에도 우울밖에는 없소. 어디를 가나 이 영혼은 즐거워할 줄을 모르니 딱하구려! 전원도 우리들의 병원이 아니라고 형은 그랬지만 바다가 또한 우리들의 약국이 아닙니다.
고황(膏肓)을 든, 이 문학병을…… 이 익애(溺愛)의, 이 도취의…… 이 굴레를 제발 좀 벗고 표연할 수 있는 제법 근량 나가는 인간이 되고 싶소. 여기서 같은 환경에서는 자기 부패작용을 일으켜서 그대로 연화(煙化)할 것 같소. 동경이라는 곳에 오직 나를 매질할 빈고가 있을 뿐인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컨디션이 필요하단 말이오. 컨디션, 사표(師表), 시야, 아니 안계(眼界), 구속, 어째 적당한 어휘가 발견되지 않소만그려!
태원은 어쩌다나 만나오. 그 군도 어째 세대고(世帶苦) 때문에 활갯짓이 잘 안 나오나 봅디다.
지용은 한 번도 못 만났소. 세상 사람들이 다 제각기의 흥분, 도취에서 사는 판이니까 타인의 용훼(容喙)는 불허하나 봅디다. 즉 연애, 여행, 시, 횡재, 명성 ─ 이렇게 제 것만이 세상에 제일인 줄들 아나 봅디다. 자, 기림 형은 나하고나 악수합시다.
하, 하.
편지 부디 주기 바라오. 그리고 도동 길에 꼭 좀 만나기로 합시다. 굿바이."
# 한국 주지주의 시의 선구자
이 시인은 한국 주지주의(主知主義) 시 계열에서 선구적인 자리를 지닌다. 당시 유행하던 모더니즘 시가 기교주의로 흐르는 것을 비판하고 형식과 내용이 조화를 이루는 '전체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오늘도
푸른 바다 대신에 꾸겨진 구름을 바라보려
'엘리베이터'로 오층꼭대기를 올라간다.
거기서 우리들은
될 수 잇는 대로 머–리를 고향을 떠나있는 것처름
서투른 손짓으로 인사를 바꾸고
그리고는 바닷가인 것처름
소매를 훨신 거둬 올리고 난간에 기대서서
동그라케 담배연기를 뿜어올린다.
김기림의 '바다의 향수'
김기림의 시에 등장하는 바다는 진짜 바다가 아니라 도시 한 복판을 가리키는 듯 하다. 서울의 화신백화점 꼭대기에서 도시를 바라보며 바다를 떠올린다. 그에게 백화점은 바다를 항해하는 거대한 선박이다. 새로운 문명을 응시하며 인간과 사물간에 생겨나는 새로운 관계들과 삶의 양식들을 시 속에 '당시로선 참신하게' 그려낸다. 이런 경향은, 당시 유행했던 T,S 엘리어트의 열광에 대한 자취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상품에 매혹되는 인간의 마음과 이국적인 분위기를 소비하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내면을 탐구했던 시인이었다.
# 국내 보성고와 일본 도호쿠 대학에 김기림 기념비
이달 초(2019년 8월) 시사저널은, 김기림이 졸업한 일본 도호쿠 제국대학에서 그의 학적부를 찾아내 공개했다. "조선 함경북도 성진군 학중면 임명동 276번지 / 양반 김병연의 장남/ 메이지40년(1907년)4월5일 출생/가족 : 김병연(친아버지 62세 농업) 이성연(52세 계모) 신보금(25세 처) /아버지의 과수원으로 상당한 생계/온순하며 사려깊고 양국(한국과 일본) 문필에 능함/취미는 특별히 없음/신장 169cm, 체중 69kg,호흡기 주의 요함/졸업 후의 근무처 : 조선일보사 편집국" 등의 기록이 들어있다. 이 기사를 쓴 분은 이인자 일본 도호쿠대학 문화인류학 교수로, 이 대학에서 역시 이 학교 출신인 중국 루쉰과 더불어 김기림 기념비가 세워졌다는 얘기를 전한다.
# 대표작 '바다와 나비' 읽기
김기림의 작품중 대표작으로 자주 꼽히는 것은 '바다와 나비'다. 일전에 필자(빈섬)가 이 작품을 읽고 시의 내면을 엿본 간단한 평문이 있어서 함께 소개한다.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
이렇게 아름다운 시라니...어린 시절 여러 번 읽은 시였는데, 새삼 보인다. 이 시를 쓰기 위해선 나비의 심장에 붙어 그 박동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나비의 뺨에 붙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어리고 약한 마음의 갈피를 잴 수 있어야 한다. 이 시에 닿기 위해선 정말 나비 한 마리로 꽉 찬 바다가 보이는 해안에 한 일년쯤 서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저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선 그려지지 않은 것들을 향해 멈춘 채 두근거릴 수 있어야 한다.
무서움이란 대개 섣부른 지식이거나 오버하는 상상이다. 나비가 저 바다 앞에서 도무지 겁이 없는 건, 그 깊이를 누군가가 얘기해주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그렇기에 바다의 깊이와 자신의 깊이를 비교해보며 굳이 주눅들 이유가 아직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인 앞에서 천진하게 구는 아이들이 그렇듯이 말이다. 바다가 무서워진다는 것은 바다를 건너갈 대상으로 생각하고 다리가 닿아야 안심하는 처세법들 때문이 아니던가. 파아란 넓은 도화지 위에 흰 점 하나, 아니 겹쳐 찍은 듯한 두 개의 점. 누가 파랑이 너무 많다거나 하양이 너무 적다고 나무랄 사람 없다. 그래야 바다답고 그래야 나비답기 때문이다.
돌아올 계산을 하고 한발짝씩 갸웃거리며 내딛지 않았기에 푸르른 청무우밭 같은 그곳의 저편 너무 멀리까지 갔다. 그리고 내려가봤더니 전에 봤던 그 무우밭들과는 조금 다르다. 이건 뭐야? 다시 날아오르려는데 힘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거기다 무밭에 앉으려다 적신 날개가 무겁다. 어쩌나. 그래도 길 잃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씩씩하게 돌아온다. 물론 기운이 다 빠졌다. 파티에서 지쳐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며 자기 이마를 짚어보는 포즈처럼 느릿느릿 팔락이며 해안에 닿는 나비.
김기림은 끝까지 나비의 꿈을 놓치지 않는다. 바다처럼 생각하지 않고 나비의 편에서 생각을 민다. 청무우밭이 꽃이 피지 않은 거야. 꽃만 피었다면 한참을 놀다올 수 있었는데...푸른 바다를 돌아보며 나비는 중얼거린다. 아, 배고파. 허리를 틀며 기지개를 해보는 나비 옆에 마침 초저녁 달이 떴다. 나비처럼 예쁜 초생달. 그러고 보니 바다 한 조각이 나비에 붙어온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나비 허리에 붙은 초승달에, 가냘픈 나비의 전신이 바르르 떤다. '시리다'는 말은 그렇게 내게 들린다. 언어는 뛰어난 화구(畵具)이다. 이 그림 하나 사려면 얼마인가? 프라이스리스이다.
물론 이 시의 '바다'를 바다로만 읽지 않고, 또 '나비'를 진짜 나비로 읽지 않으며, 도시를 떠도는 천진한 시인 자신을 가리킨다는 풀이도 나와 있다. 문대통령이 인용한 '새나라송' 전문을 소개하면서, 모처럼 대통령의 소개로 일약 국가화두처럼 떠오른 시 한 편의 바람을 음미해본다. 이 나라의 새마을운동과 '한강의 기적'이 이 시 속에 예고되어 있다면 지나친 얘길까. 시는 미래를 예언하는 가장 예민한 촉수인 건 분명하다.
거리로 마을로 산으로 골짜구니로
이어가는 전선은 새 나라의 신경
이름 없는 나루 외따른 동리일망정
빠진 곳 하나 없이 기름과 피
골고루 돌아 다사론 땅이 되라
어린 기사들 어서 자라나
굴뚝마다 우리들의 검은 꽃묶음
연기를 올리자
김빠진 공장마다 동력을 보내서
그대와 나 온 백성이 새 나라 키워 가자
산신과 살기와 염병이 함께 사는 비석이 흔한 마을에 모―터와
전기를 보내서
산신을 쫓고 마마를 몰아내자
기름 친 기계로 운명과 농장을 휘몰아 갈
희망과 자신과 힘을 보내자
용광로에 불을 켜라 새 나라의 심장에
철선을 뽑고 철근을 늘이고 철판을 피리자
세멘과 철과 희망 위에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 나라 세워 가자
녹슬은 궤도에 우리들의 기관차 달리자
전쟁에 해어진 화차와 트럭에
벽돌을 싣자 세멘을 올리자
애매한 지배와 굴욕이 좀먹던 부락과 나루에
내 나라 굳은 터 다져 가자
김기림의 '새나라송'
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