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유휴 부지 놓고 진흙탕 싸움...반박에 반박 거듭하는 코레일-메리츠
2019-08-02 14:34
메리츠 컨소 "철도사업법에 따라 지분구조 변동 없을 수 없어...코레일의 자가당착"
코레일 "메리츠 컨소 측 계획은 철도사업법상 점용허가 대상 아냐...국유재산법 등에 따른 사용허가 신청대상"
코레일 "메리츠 컨소 측 계획은 철도사업법상 점용허가 대상 아냐...국유재산법 등에 따른 사용허가 신청대상"
코레일은 입찰 지침서를 기반으로 메리츠 컨소 측이 자격 위반이라 주장하지만, 메리츠 컨소 측은 입찰 지침서 자체에 흠결이 있다며 자사가 최고 입찰가를 제시한 만큼 우선협상자 탈락은 불합리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코레일 측이 이에 대해 또 한 번의 반박을 내놓으면서 갈등의 불씨는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2일 코레일에 따르면 메리츠 컨소시엄과 한화종합화학 컨소시엄이 제시한 토지매입가는 각각 5651억원과 5326억원으로 325억원 차이다. 세간에 알려진 '2000억원 괴리설'은 사실이 아니란 게 코레일 측 입장이다. 임대비율은 각각 26.6%와 20.6%로 6%p 차이가 난다.
서울역 북부역세권 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봉래동 2가 122 일대의 코레일 부지를 서울역과 연계 개발하는 사업이다. 컨벤션센터와 업무·숙박·주거·상업 등 복합시설이 들어설 예정으로 ‘강북판 코엑스’라 불리고 있다.
지난 3월 입찰 공고 이후 수많은 기업이 검토에 들어갔고 한화 컨소시엄(한화종합화학·한화건설·한화역사·한화호텔앤드리조트·한화에스테이트)·메리츠 컨소시엄(메리츠종금증권·메리츠화재·STX·롯데건설·이지스자산운용)·삼성물산 컨소시엄(삼성물산·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미래에셋자산운용·미래에셋컨설팅) 등이 입찰 경쟁을 벌였다.
코레일은 지난 9일 한화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삼성물산 컨소시엄을 차순위협상자로 선정했고, 가장 높은 입찰가를 써낸 것으로 알려진 메리츠 컨소시엄이 탈락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코레일은 블라인드 방식으로 진행된 1차 심사에서는 3개사 모두 '사업계획서상' 적격이란 판정을 내렸다. 다만 1차 심사 적격자를 대상으로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등 관계법령 저촉 여부를 전문가들과 심의한 결과, 메리츠 컨소시엄은 사업주관사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금산법 제24조 제1항은 동일계열 금융기관이 다른 회사의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 총수의 20% 이상을 소유하거나, 5% 이상 소유하고 그 회사를 사실상 지배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해당 행위를 하려면 미리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메리츠 컨소는 메리츠종금증권, 메리츠화재, 롯데건설, STX, 이지스자산운용 등으로 구성됐다. 메리츠종금증권의 지분율이 35%, 메리츠화재가 10% 등을 출자해 메리츠금융그룹 지분만 45%에 달하는 만큼 금융위 사전 승인이 필요했다. 메리츠 컨소가 무의결권 주식을 상법이 허용하는 최대치(25%)까지 발행한다 하더라도 의결권 주식은 20%가 돼 '20% 미만'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코레일 측은 입찰사들에 금산법을 준수하라는 통보를 내리진 않았지만 입찰 지침서에 이를 간접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코레일 관계자는 "모든 법률을 기재할 수는 없으므로, 공모 지침서 제10조 4항에 자격요건을 구비하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모 지침서 제10조 제4항에 따르면 사업주관자는 사업수행이 가능하도록 관계법령이 정하는 허가·인가·면허·등록·신고 등을 받거나 자격요건을 구비해야 한다.
이에 대해 메리츠 컨소 측은 "특수목적법인(SPC) 설립 때 메리츠금융그룹이 의결권 있는 지분을 20% 미만으로 낮추면 금융위 승인을 피할 수 있다"는 주장이지만, 공모지침서 제30조 3항에 따르면 사업신청 시 제출한 컨소시엄 대표자 및 컨소시엄 구성원의 지분율은 SPC 설립 때와 동일해야 한다.
코레일의 연이은 반박에 메리츠 컨소는 "입찰 지침서 자체에 흠결이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메리스 컨소 관계자는 "법무법인에 위탁해 소송을 준비 중"이라며 "코레일은 입찰 지침서를 근거로 지분구조에 변동이 없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철도사업법에 따르면 사업주체는 철도부지에 대한 '점용허가'를 얻기 위해 출자를 단 1%라도 해야만 한다. 아직 출자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분구조를 확정하라는 건 자기모순 아니냐"고 날을 세웠다.
철도사업법 제42조에 의하면 국토교통부 장관은 국가가 소유·관리하는 철도시설에 건물이나 그 밖의 시설물을 설치하려는 자에게 시설물의 종류 및 기간 등을 정해 점용허가를 할 수 있다. 점용허가는 철도사업자와 철도사업자가 출자·보조 또는 출연한 사업을 경영하는 자에게만 한다.
코레일은 이 같은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고 말한다. 코레일 관계자는 "메리츠 컨소가 제시한 사업계획에 따를 때 공사의 자본출자는 필요한 사항이 아니어서 자격요건을 맞춰주기 위해 공사가 자금을 제공한다면 특혜시비가 제기될 수 있다"며 "메리츠 컨소에서 계획한 철도부지 상부에 대한 브릿지 계획, 입체보행로 설치 등은 철도사업법의 점용허가 대상이 아니고 '국유재산법' 등에 따른 ‘사용허가 신청대상’이다. 철도공사의 지분참여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메리츠 컨소 측은 코레일 측 출자지분 확정이 필요하다 여겨 관련 협의를 요청했는데 코레일이 이를 거절했다고 밝혔지만, 코레일 측은 이 같은 협의요청에 대응할 이유가 없었다고 재반박한 것이다.
메리츠 컨소 측 주장대로 입찰 지침서에 흠결이 있었다면, 왜 메리츠 컨소는 이에 대해 진작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을까. 이에 대해 메리츠 컨소 관계자는 "코레일은 이 사업 외에도 전국에 있는 철도부지내지는 코레일이 보유하고 있는 부지에 여러 사업을 해왔다"며 "지금과 입찰 지침서 내용이 같았던 이전 사례를 살펴보면, 코레일이 우리 측과 동일한 조건을 갖춘 업체에 금융위 사전 승인을 받으라는 요구를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입찰 지침서 내용을 숙지했지만, 이 내용이 이전에 금융 주관사의 발목을 잡은 적이 없었던 만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는 이야기다.
메리츠 컨소 측은 '이전 사례'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달란 질문엔 "소송전에서 밝혀질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메리츠 컨소가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 코레일 측이 이 같은 주장에 대해 "금융사가 주관사인 사례는 이전에 없었다"고 대응하면서 메리츠 컨소 측 주장을 뒤받치는 실체적 근거가 없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명백한 잘못임을 알고도 과거에 문제가 되지 않았단 이유로 공모지침서 내용을 무시한 것은 안일한 시각이란 비판도 따른다. 한화 컨소 관계자는 "우리 측이나 삼성물산 컨소시엄 등이 금융계열사를 주관사로 내세우지 않은 건 공모지침서 규정을 준수하기 위함이었다"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한편 일각에서는 메리츠 컨소가 '위장 주관사'인 것 아니냔 논란이 일었다. 메리츠 금융그룹이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후 의결권 있는 주식을 20% 미만으로 낮추는 게 가능하다 해도, 이는 사실상 사업주관사를 포기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서다.
이 경우 최대 의결권을 가진 회사가 STX(지분 25%)로 바뀌기 때문에, 메리츠 금융그룹이 최대 지분을 투자했음에도 최대 의결권을 갖지 못하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STX가 실질적인 사업의 주체임에도 낮은 신용등급 때문에 주관사로 나설 수 없자, 메리츠 금융그룹을 위장주관사로 내세웠다는 주장도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