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교육·경력 개발경로 다양화해야 국가경쟁력 높아져”

2019-07-21 14:55
‘직업교육진흥법’ 제정으로 전문대학을 고등직업교육기관화 해야
인천재능대 총장 취임 후 ‘열등감’ 극복에 최우선
학령인구 감소·등록금 동결에 전문대도 대비해야
안정적인 예산 확보 위해 ‘고등직업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 추진

이기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장[사진=인천재능대]

“그간 우리 사회는 일반대학에 진학하는 것만을 정답인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제는 학력 과잉과 졸업 후 취업교육, 전문대학으로의 유턴입학 등 사회·교육적 낭비와 기회비용 상실을 해소하고 자신의 소질과 적성을 고려해 직업교육을 당당히 선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다양한 교육경로와 경력개발경로를 만들어주는 것이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입니다.”

이기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장은 전문대학을 고등직업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이는 그가 제안한 ‘직업교육진흥법’에서 읽을 수 있다.

직업교육진흥법 제안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문대학 어젠다’ 마련을 위해 2017년 고등직업교육 혁신 촉구를 위한 정책 1차 대토론회로부터 시작했다. 2차 토론회에서는 각 정당의 고등직업교육 정책을 듣고 대선공약 채택을 위한 결의대회도 추진됐다.

2018년 1월부터 7월까지는 민관합동 추진단이 ‘평생직업 교육훈련 혁신과 과제’를 진행했다. 이 회장은 여기에서 직업교육법 제정을 건의했고, 이를 토대로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이하 전문대교협)에서 ‘직업교육 법제 정비방안’ 연구를 수행, 지난 2월부터 본격적으로 직업교육진흥법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법안에는 △직업교육 중장기 발전계획 수립 시행 △직업교육 성장 경로 마련 △직업교육 정체성 확립 △안정적 재원 마련과 질 관리 △직업교육 육성지원체제 마련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 회장은 “현재 교육부와 고등직업교육정책TF가 심도 깊게 논의 중이며, 다음달에는 대국민 공청회를 열어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지속적인 의견수렴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010년부터 136개 전문대 목소리 대변하는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장으로 
전문대교협은 136개 전문대의 의견을 기반으로 정부와 국회, 직능과 기업·단체 등 고등직업교육 유관기관과 소통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이 회장 취임 후 전문대들의 목소리는 한층 더 커졌다는 평이다. 이 회장은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전문대교협의 달라진 위상은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교육부, 고용노동부, 중소기업벤처부 등의 유관기관 실무책임자들과 장·차관, 국회교육위 의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전문대학 정책을 숙의하는 모습은 이전에는 없던 풍경이다. 특히 국가교육회의에서도 전문대학과 직업교육을 다양한 교육경로 확보 차원에서 중요한 의제로 다루고 있다. 단적으로 최근 한 달 동안 박백범 교육부 차관이 전문대학과 3차례 만난 것도 그가 전문대교협회장을 맡기 전에는 없던 일이다.

현재 교육부에서 고등직업교육인 전문대학을 담당하는 과는 하나다. 이 회장이 앞서 언급한 수많은 정책들을 수행하기란 요원하다. 반면 고등교육정책실은 3국, 12과, 3팀으로 구성돼 있다. 이 회장은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에게 “단기적으로 전문대학지원과, 전문대학정책과로 확대 신설하고 중장기적으로 직업교육정책실을 신설해야 한다”고 요청한 상태다.

◆교육부 차관에서 인천재능대 총장으로
사실 교육부 차관으로 공직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이 회장에게 러브콜을 보낸 일반대학도 적지 않았다. 어떤 인연이었을까. 인천재능대가 그를 불렀고, 2006년부터 지금까지 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전문대학을 만난 건 큰 행운이자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와 교육에서 직업 교육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재인식하게 됐다는 점에서 행운이고, 상대적으로 홀대받고 있는 전문대학의 위상과 역할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전입니다.”

그가 인천재능대에 와서 처음 느낀 것은 학생, 교직원 할 것 없이 모두가 열등감과 패배의식에 젖어 있었다는 것이다. “인천재능대가 바닥이란 걸 인정하고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단계적으로 나갈 수 있는 거죠.” 그가 도입한 것은 출근도장이었다. 새로 부임한 총장이 ‘미쳤다’는 소리가 교내에 돌았다. 마침내 교수협의회에서 압력이 들어왔다. 이 총장은 교수들에게 말했다. “인천재능대에 와 보니 잘 하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아무도 안 하는 거 우리가 하면 그건 우리가 1등 아닙니까? 출근도장 찍어 주세요.”

학생 질 관리에도 신경을 썼다. 당시 인천재능대는 줄만 서면 입학할 수 있는 대학이었다. 하지만 입학했던 학생들이 다른 대학으로 줄줄이 빠져나가는 문제도 있었다. 그는 공부 못하는 학생은 올 수 없도록 9등급 학생은 받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난리가 났다. 학생 충원이 안 되면 대학 재정에 직격탄이기 때문이다. 이 총장은 또 교직원들을 설득했다. “우리 스스로 잘 해낼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지 않고서는 아무리 좋은 일도 성과를 낼 수 없다고 말하면서 마음을 모았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자 변화가 잇달았다. 지금 인천재능대는 문자 그대로 ‘천지개벽’했다. 정부재정지원사업 9관왕 대학, 전국 취업률 1위 대학(수도권 가·나 그룹 5년 연속 1위), 벤치마킹을 가장 많이 하는 대학, 송도국제도시에 최초로 뿌리내린 전문대학…. 지금의 인천재능대를 수식하는 말이다.

◆학령인구 감소와 등록금 동결…전문대의 현실은 살얼음 위에 맨몸
역설적이게도, 인천재능대가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2019~2023년을 이 회장은 ‘비상체제’로 선언했다. “참 놓치기 쉬운 게,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완성이란 것은 없어요. 어떤 일을 이뤄냈다고 생각했을 때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죠. 모든 대상과 상황은 시시각각 변화합니다. 그런 우리가 맞닥뜨린 변화가 뭐냐고요? 학령인구 감소와 등록금 동결이죠. 대학이 숨쉬기조차 힘들어질 정도입니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지방 전문대-수도권 전문대-지방 일반대 순으로 대학들이 문을 닫을 거란 이야기가 공공연히 돈다. 학령인구 감소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 이 회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지구상에 대학 등록금을 정부가 강제하는 경우가 있는가, 분개하는 목소리가 매우 큽니다. 특히 대학 규모나 지원금이 적은 우리 전문대의 현실은 살얼음 위에 맨몸으로 서 있는 형국입니다. 거기에 단계적 입학금 폐지와 강사법 시행, 비정규직 최저임금제 도입과 주52시간 근무, 학교 소유 부동산 재산세 부과로 대학재정의 악화는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습니다.”

2018년 OECD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교육기관 중 전문대학의 1인당 공교육비는 가장 낮다. 초등학교는 1만1047달러, 중학교는 1만1025달러, 고등학교는 1만3247달러, 일반대학은 1만1310달러로 모두 1만 달러가 넘지만 전문대학은 5517달러다. OECD국가 평균대비 52.8%고 초등학생 공교육비의 52.7%에 불과하다.

전문대학 설립유형도 차이가 있다. OECD국가는 국공립전문대학 분포가 59%, EU21 국가는 66%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2%에 불과하다. 전문대학에 대한 재정지원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업교육을 국가가 책임지는 체제로 갖추는 일이 시급한 이유다.

◆전문대학 예산 확보 위해 ‘고등직업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해야
이 회장은 전문대학이 고등교육단계 직업교육의 중심기관으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획기적인 재정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문대학 혁신지원사업 증액 △전문기술인재 장학금 지원 △전문대생들을 위한 맞춤형 국가장학금 등이 세부 항목이다.

그가 제안한 ‘고등직업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도 예산의 뒷받침이 없이는 경쟁력이 요원하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고등직업교육 활성화를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는 없는 실정이다. 교육부와 고용노동부 등 각 부처에서 서로 다른 직업교육정책을 추진해 비효율적이다. 소요 재원 확보를 위한 교부금법 제정으로 범국가 차원에서 학생들에게 직업교육을 통한 사회적 희망사다리를 제공해줘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평생직업 수요자들에게도 경제적 어려움 없이 필요에 따라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 실업과 빈곤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대에 대한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이 회장은 말한다. “그동안 전문대학은 일반대학의 수직적 하위기관으로 인식돼 왔습니다. 인력양성 방향에 따라 교육적 역할이 다른 것뿐인데 서열로 이해하는 부분은 매우 안타깝습니다. 우리나라 산업과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문대학’을 ‘직업교육대학(가칭)’으로 변경해야 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해 전문직업인 양성과 평생직업교육훈련을 위한 고등직업교육기관으로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시대적 흐름에 부합한 명칭으로 바꿔야죠. 명실(名實)이 상부(相符)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기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장[사진=인천재능대]

◆이기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은
△1947년 △경남 거제 △부산고 △안양대 행정학과 △부산대 교육학 석사 △경성대 교육학 박사 △경남교육청 교직계장 △국회 문화공보위원회 입법조사관 △충북대 사무국장 △부산시교육청 부교육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전문위원 △교육부 교육환경개선국장 △교육부 기획관리실장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 △국무총리 비서실장 △교육인적자원부 차관 △현 인천재능대 총장(2006~) △현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장(2010~) △황조근정훈장·대통령 표창·근정포장·녹조근정훈장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