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인력감축 아닌 '사라지는 일자리' 붙잡는 일

2019-07-26 13:14
장기 경기침체에 부실기업 증가…선제적 구조조정 필요성 증대
구조조정 핵심은 ‘사람’…구조조정 활성화위한 다양한 제도개선 필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데일리동방] 최근 ‘구조조정’이라는 말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그만큼 한국 경제가 어렵다는 얘기로 우리 경제의 최대 현안 중 하나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내수 부진이 겹치면서 경쟁력이 떨어진 기업들의 군살을 빼고 정리하는 기업구조조정은 이제 더 이상 미루기 어려운 과제가 됐다.

그러나 흔히 ‘구조조정=인력 감축’으로 단순하게 인식되고 있는 것은 문제다. 구조조정은 기업 등에서 사업구조나 조직구조를 효율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개별 기업을 넘어 특정 산업 전반에 해당될 때도 많다. 한계상황에 봉착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다.

물론 구조조정에 인력 감축이 포함되기도 한다. 기업이 부도 지경에 이르거나 경쟁력을 잃어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울 때 먼저 거론되는 것 중 하나로 인력 재배치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은 부실기업의 회생 과정 중 하나다. 구조조정을 회피하기 위한 명분으로 인력감축을 보기 때문에 오해가 생겨난 것이다. 구조조정업계 전문가는 “구조조정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지는 못하지만 사라지는 일자리를 붙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부실기업 증가…회생신청 한해 1000여곳

최근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2400곳인 한계기업은 2016년 3126곳으로 30%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한계기업 비중은 11.4%에서 14.2%로 상승했다.

만성 적자로 ‘2년 이상 한계기업’ 비중도 높다. 2016년 기준 2년 이상 연속 한계기업은 약 69%다. 이 중 7년 연속 한계기업이 23.4%로 만성 부실기업 비중도 매우 높은 상황이다.

이는 글로벌 경기침체가 장기화됨에 따라 수출기업의 수익성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3~5년이 지나면 회복될 것으로 보았던 세계경제가 엄청난 양의 돈을 쏟아 부었는데도 회복되지 못하고 벌써 7년 이상의 침체를 지속하고 있다. 이에 조선, 해운, 철강, 석유화학 등 우리나라의 주력 기업들이 경영난에 봉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회생을 신청하는 기업은 지난해 기준 1000곳 안팎이다. 한 해에 사업자등록을 하는 중소기업(1인 이상 사업체)은 110만여 곳이다. 그 중 80만여 곳은 폐업신고를 한다. 법인 회생·파산 건수는 고작 10만건에 불과하다.

법원에 따르면 도산제도를 이용하는 곳은 20%가 채 되지 않는다. 모두가 재정적 어려움으로 이해 폐업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도권 안에서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치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 국내 구조조정 관련 법·제도

국내에는 구조조정 관련 법과 제도는 ▲과잉공급업종 정상기업의 자발적 사업재판(합병·분할 등)을 지원하는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기활법)’ ▲부실징후기업의 신속하고 원활한 기업개선 작업을 위한 필요사항을 규정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 ▲부실기업의 효율적 회생 또는 회생이 어려운 기업재산의 공정한 청산을 위한 필요사항을 규정하는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채무자회생법)’ 등이 있다.

채권기관-채무기업(정상기업), 채무조정을 지원하는 ‘채권단 협약’은 법적 근거는 없으나 구조조정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구조조정은 주체별로 시장, 채권단과 법원, 정부 등 유형을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채권단과 법원이 주체가 된 구조조정은 주로 대기업에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중소기업에는 ‘채권은행협의회 운영 협약’, 법원을 통한 구조조정을 위한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등이 적용된다.

구조조정의 주체가 시장이라는 것은 PEF(벤처펀드, M&A펀드, 메짜닌펀드, 벌처펀드) 등 자본시장 참여자가 채권은행으로부터 구조조정 기업을 매입해 적극 채무조정, 신규자금 투입, 사업구조조정 등 기업 정상화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채권은행은 선제적으로 경제적 부실, 기술적 지급불능, 혹은 파산상태에 있는 부실기업을 정리함으로써 금융기관의 건전성·리스크 관리를 강화할 수 있다.

부실기업은 신속한 신규자금 확보, 경영전문성 보완 등을 통해 경영정상화 가능성을 제고하고 자본시장도 기업구조조정시장을 통해 새로운 투자기회를 발굴할 수 있다.

민간 경제주체에 의한 ‘조정의 실패’가 발생할 경우 자산관리공사(KAMCO)와 예금보험공사 등이 구조조정에 직접 개입하고 있다.

이 외에도 우리나라는 민간은행 주도하에 설립된 연합자산관리(유암코)가 있다. 농협, 신한은행, 하나은행, 기업은행, 국민은행, 우리은행이 연합해 한시적으로 부실채권을 담아두는 PEF다. 정부 주도하에 설립된 부실채권처리기구, 구조조정기구는 해외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민간주도의 유암코 같은 사례는 유일무이하다.

경제성장과 함께 산업이 확대되면서 발생하는 수많은 구조조정에 정부가 일일이 모두 개입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도 구조조정 민간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17년 12월 시장중심의 상시적 구조조정을 활성화 하기 위해 1조원의 '기업구조조정혁신펀드' 조성을 발표했다.

◆ 선제적 대응체계 · 민간부문 참여 확대 필요

현행 구조조정 제도는 선제적 구조조정 대응체계가 부족하다. 부실 발생 이후 사후 처리 위주로 제도가 운영되고 있으며 부실예방과 최소화를 위한 선제적 대응체계가 상대적으로 부실한 상태다.

여기에 채무 구조조정 위주로 본원 경쟁력 제고에 소홀하고 산업생태계강건화 지원 미흡한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따라서 산업생태계강건화 관점에서 산업정책과 구조조정제도가 유기적으로 연계·강화해 중소기업 구조조정 지원 프로그램의 실효성 제고가 필요하다.

기업활력제고특별법 지원대상 확대, 업종별 지원패키지 차별화 및 신청기업 사업재편 옵션의 다각도 검토 등 산업구조 고도화와 경쟁력 제고 관점에서도 제도 보완이 지적되고 있다.

더불어 구조조정시장 활성화 등 구조조정 과정 민간부문 참여 확대 및 중기 구조조정·경쟁력 지원 프로그램 강화 등도 요구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기업재무안정 PEF가 기업구조조정 관련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과 달리 국내 PEF는 구조조정 관련 역할이 매우 미흡한 상황이다. 현재 45개 기업재무안정 PEF가 설립·운용 중이나 규모가 크지 않아 구조조정 채권 인수 등 패키지 딜(Package deal)을 통해 주도적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채권은행이 구조조정 채권을 매각한 후 해당 PEF에 LP로 참여할 경우 진성매각(True Sale)으로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어 채권은행의 LP 참여가 제한되고 있는 상황이다. 기업회생형 구조조정 채권 시장에 대한 track record 부재, 기관투자자의 경험 부족 등으로 인해 새로운 시장에 투자하려는 투자자 모집도 곤란하다.

따라서 기업구조조정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시장 여건을 조성이 중요하다.

母子형 펀드(Fund of Fund) 등 채권은행의 LP 참여가 진성매각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은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마중물로서 기업구조조정펀드를 조성해 구조조정 채권 시장에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도 중요하다.

◆ 구조조정 기업의 매각 활성화

구조조정 채권 가격 등 매각조건에 대한 이전, 매각 담당자의 소극적 행태 등으로 인해 구조조정 기업 매각이 부진한 상황이다.

공개경쟁 입찰시 채권은행이 매각 예정가를 높게 산정함에 따라 매각이 유찰되는 경우가 다수다. 수의계약의 경우도 채권은행과 매수자가 평가하는 채권 가격의 차이가 크고 이전 조정장치도 미비해 사실상 매각에 어려움이 있다.

특히 매각 담당자는 매각 예정가보다 낮게 매각할 경우 책임 문제 등을 우려해 매각을 기피하게 된다.

따라서 구조조정 채권 가격산정이 공정성·투명성을 제고해 구조조정 기업 매각이 활성화될 수 있는 매각 절차 규정, 조정정차 마련, 조정위 운영 방안 등 제도적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

저가매각 문제 관련 매각 담당자의 면책을 위해 공개경쟁 입착을 원칙으로 하되 유찰로 인해 마각이 지연되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수의 계약이 가능한 경우를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수의계약시 가격 등 매각조건에 이견이 발생할 경우 ‘금융채권자 조정위원회’에서 적극 이견을 조정해야 한다. 조정위는 매수자와 매도자가 제출한 실사 보고서의 적정성을 검토해 채권의 준거가격 산정 등 역할을 수행해야한다.

준거가격 산정 결과에 신뢰도 제고를 위해 채권가치 평가방법 등에 대한 세부기준을 마련도지지적되고 있다. 필요시 실사 보고서에 대한 검증 업무는 조정위가 한국공인회계사회에 위탁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 구조조정 정답은 없지만 핵심은 ‘사람’

구조조정 전문기관 유암코 관계자는 “구조조정에 정답은 없다”며 “방향성을 가지고 계속 수정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구조조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기업의 갱생가능성’, ‘이해관계자들의 고통분담 의지’, ‘기존 주요 경영진의 도덕성’ 등을 꼽았다. 결국 핵심은 ‘사람’이다. 기술이 아무리 우수하고 업황이 매출을 뒷받침하는 구조라도 경영자가 횡령과 배임으로 점철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회계와 투자도 소용없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에서 재무적 치유는 1단계에서 끝난다. 재무측면에서 기업가치평가에 사용되는 기본 모델은 현금흐름할인법(DCF)이다. 할인율(IRR)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DCF 평가금액이 바뀐다. 이를 보완하는 상대가치평가로는 EV/EBITDA, PER, PBR 등이 있다.

갱생가능성 및 부실화원인의 치유 가능성, 신속한 자금지원, 적절한 인물기용 등을 종합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중요하다.

그는 구조조정은 인력감축이라는 인식에 대한 아쉬움도 나타냈다. 사람을 마구잡이로 자르면 조직이 흔들린다. 명예퇴직을 받으면 나가야할 사람이 안나가고 나가지 말아야 될 사람이 나가는 역선택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러한 복잡한 변수들이 많기 때문에 통상 인력 재배치는 가장 나중에 선택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구조조정 시장은 걸음마단계다. 미국이나 호주는 구조조정 전문 회계법인이 따로 있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구조조정에 대한 인식 자체도 부정적이다. 여기에 중소·중견기업의 구조조정에는 더욱 관심이 없다.

유암코 관계자는 “기업이 살고 죽는 것은 순간”이라며 “때문에 과감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필요하고 전문가들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민간은 정책당국보다 의사결정이 빠르고 과감하다”며 “정책당국이나 은행이 부실기업에 대규모 투자를 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민간부문 활성화를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