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한일 무역보복 전쟁, 아베를 콜드리딩하라

2019-07-09 19:23

[사진=AP·연합뉴스]



문제는 처음부터 꼬여있었다. 1965년 박정희 정권이 맺은 한일청구권협정 얘기다. 해방 20년 뒤인 그해 박정권은 민간이 일본에 청구해야할 식민지 피해의 몫까지 포함한 보상액 5억 달러를 일본 정부로부터 받아낸다. 그리고는 어떤 청구도 다시 하지 않겠다는 조항까지 달아서 협정을 맺는다. 일본 측에서 민간 보상은 따로 하겠다고 제안하자, 한국 정부가 그 문제는 우리 국가가 해결하겠으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정리해주기까지 했다.

이 협정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협정을 배경으로 한다. 국제연합을 사실상 이끌고 있던 미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자 아시아의 사회주의화를 막기 위해 일본을 활용하려 한다. 즉 전범국가 일본에 면죄부를 부여해 국제사회로 복귀시킨다는 전략이다. 이런 구도에 따라 미국은 박정희 정권에게 한일 협정을 맺도록 요구한다. 박정권은 이 요구에 부응하면서  '역사 청산'협정을 '경제협력' 조약처럼 처리한 셈이다.

박정희 정권이 돈을 빼돌릴 욕심으로 그랬던 것은 물론 아니다. 당시 손꼽히는 빈곤국가였던 한국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국가개발 자금에 목말랐기 때문이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밑천은, 식민지배의 피해자들이 받아야할 몫들을 줄여서 만들어낸 것이다. 한일청구권 협상은 그런 원천적인 모순을 품고 있었다. '민간 피해자들'은 살벌했던 독재정부에게 충분한 지불을 요구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박정희 정권이 일궈낸 경제의 토대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만큼 뚜렷하게 대한민국의 현재를 만들어낸 동력이기도 하니, 기막힌 일이다. 우리가 깔고 앉은 국가번성 아래에는 징용노동자를 비롯한 많은 피해자들의 억울한 빈 손이 숨어있는 셈이다. 

박정희 정부의 자금 전용(轉用)은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비판받아 마땅할 행위이지만, 그때 절박했던 국가의 상황으로 보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융통성'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상황을 돈을 제공하는 일본 측이 몰랐을 리 없다. 다만, 한국 측이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엄정한 단서인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문구를 넣어 뒷탈을 방지해놓았다. 이것이 갈등의 빌미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에 가깝다.  2018년 대법원이 이 협정을 '정치적인 해석'이라고 판단하고 개인 청구권이 여전히 살아있다고 판결한 것은 명문화된 단서를 벗어나 있다고 보여지는 대목이었다.

대법원의 판결은 협정의 위반으로 볼 수 있기에, 이 판결이 가능하려면 기존의 한일협정을 폐기해야 하는 상황이 생겨날 수 밖에 없다. 그것의 의미에는 양국의 기존 외교관계를 청산하는 수준의 중대변화가 담겨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들여다 보지 않았거나 외면하면서 일본의 반발의 크기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그게 지난 8개월 간의 정부 태도였다.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한다는 의견으로, 협정의 '재해석'에 동의하고 있었다. 아베 정부는 이 문제와 관련해 우리 정부가 협의 요청을 해오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청구권 협정' 자체를 폐기하고 다시 협상을 하자는 뜻인지, 아니면 협정은 온전하게 유지하지만 이런 사태가 생긴 이상 정부간의 협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인지 듣고 싶었을 것이다. .

아베가 '무역 보복' 방식으로 한국 정부에게 타격을 주려는 시도는 결코 현명한 것도 아니고 적절한 것도 아니지만, 그의 내면 속에 쌓여온 초조감을 말해주는 뚜렷한 증거라 할 수 있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한국이 상당한 쇼크로 받아들일 수 있는 카드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쇼크의 크기는 '청구권 협정'관련 판결에 대한 일본의 쇼크와 맞먹는다는 의미의 상징적 반격이기도 할 것이다. 

아베가 G20이 끝나자 마자 무역보복을 내놓은 까닭은, 그 이전에 '행할 수 없었던 카드'를 꾹꾹 눌렀다가 급히 꺼냈기 때문이라고 보는 관점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여기서 한국 정부가 읽어야할 포인트는, 수출제재는 청구권 협정을 지키기 위한 저들의 수단일 뿐 그 이상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정부와 한판 붙어서 경제적 실력을 가리겠다는 의도도 아니며, 일본 내의 우경화로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이익에 눈이 팔려서만도 아니라는 점이다. 문대통령이 나서서 "우리 기업의 피해가 발생하면 맞대응을 하겠다"는 선전포고는 그래서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선언일 뿐이다.

아베가 트럼프나 시진핑의 무역보복을 학습한 것은 사실일지 모르지만, 그 목표는 경제적인 실리에 있는 게 아니라 한일간의 해묵은 문제들을 확실히 하겠다는 점에 있다. 아베가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 '국가간의 신뢰' 문제는 바로, 협정의 불이행을 겨눈다. 그런 불이행이 한국 국내의 혐일(嫌日)기류에서 비롯됐다는 인식도 숨어있을 것이다.

한일 갈등이 해방 이후 최고조의 상태로 나아가는 이 사태는, 국권침탈의 역사가 빚은 후유증같은 것이라 볼 수도 있지만 그렇기에 충분히 외교적 노력으로 풀 수 있는 사안일지도 모른다. 돈의 문제도 아니고 인종의 문제도 아니며 이웃국가를 제압하기 위한 전시대 호전성의 부활도 아니다. 이 문제는 '청구권 협정' 파기가 유발하는 국가 신뢰에 대한, 아베의 문제 제기 방식일 뿐이다. 아베가 전범의 자손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도 아니며 우리 국가에 대한 유난한 유감이 있어서도 아니다. 

이참에 우리 정부는 현재적인 이웃국가인 일본을 보는 관점을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인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지만 역사를 이유로 현재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어리석음은 더 이상 길게 펼쳐셔는 안된다. 정치지도자가 왜구(倭寇, 일본도적)라는 표현을 서슴없이 쓰고 친일 적폐와 현재의 일본에 대한 혼동을 애국의 징표처럼 떠벌이는 '혐일정치'를 정리해야 한다. 경제침략에 의병을 일으켜야 한다는 소리나 한국 내에 분명히 일본을 평균이상으로 좋아하는 부류가 있다는 따위의 언설들은, 국가 현실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과거사 콤플렉스의 산물들일 수 있다. 아베를 만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협상이 가능한 국가로서의 일본관이 갖춰져야 제대로 외교가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2005년 수학자 후지와라 마사히코가 낸 책 '국가의 품격'에는 일본에 대한 자기 인식 같은 것이 숨어있다. 그는 천재를 낳을 수 있는 국가가 품격있는 국가라고 주장하면서, 일본이 지닌 3가지 환경적 장점을 말한다. 일본은 아름다운 풍경을 지니고 있고 무엇인가에 대한 무릎 꿇는 마음이 있으며 정신성을 존중하는 풍토가 있기에, 천재들이 많이 나올 수 있는 나라라고 주장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이야 우리도 못지 않지만, 그들의 무릎 꿇는 마음과 정신성을 존중하는 마음은 특기할 만하다. 

무엇인가에 감화하고 설복 당하면 무릎을 꿇는 태도가 일본에게는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어떤 가치가 합당하다고 여기면 그것을 높이 평가한다는 말이 된다. 일본을 설득하려면 일본의 가치와 문법을 깊이 연구하고 그것을 협상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할 일은 무역보복을 앞세운 강대강 대응이 아니라, 저 청구권협정의 원초적 무리수에 관해 밀착해서 소통하는 일이다. 한국정부가 뒤늦게 제안했던 '양국 기업이 기금을 내자'는 아이디어가 거절된 것은, 일본이 아예 협상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제안이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일본이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그 판단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태세를 드러낸 것이다.

일본의 학자 오코노기 마사오(74. 게이오대 명예교수)는 이렇게 주장한다.

"한일청구권협정을 부정해서는 아무 것도 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그것을 기어이 지켜내려 할 것이다. 50년 이상 이어온 협정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한국 정부는 전제 조건을 달지 말고 한일청구권협정의 절차에 따라서 교섭을 하고, 그것을 실행할 중재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법원의 현실적 판결'과 '일본의 불복' 사이에서 정부가 해야할 일은, 양국의 힘겨루기가 아니라 협상 가능한 지점을 찾는 일 뿐이다. 여론으로 싸움 판을 키우려 하지말고, 실리를 찾는 협상으로 들어가라. 잘못된 청구권협정이라 할 지라도 협정을 지키지 않는 것은 더 치명적인 잘못이라는 게 아베의 논리다. 그것이 '국가 신용 위반'이라는 주장의 뼈대이기도 하다. 

지금으로서는 싸움보다 협상이다. 아베를 콜드리딩(Cold Reading)하는 것이 협상의 요체다. 하지만 한일 간의 협상만으로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타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국제적인 무대에서 법리를 겨룰, 장기적인 시나리오도 염두에 둬야 한다.


                                       이상국 논설실장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