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대신 경제보복…국내 5대그룹, 차례로 '십자포화'

2019-07-05 14:10
日 반도체소재 수출규제에 삼성·SK·LG '초조'…中 '사드보복' 당시 현대차·롯데 타격
"한국 경제구조는 무역 피할 수 없어…오히려 국가간 산업 연결고리 촘촘해져야"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사진=아주경제DB)

[데일리동방] 21세기 국가 간 힘겨루기는 '경제', '무역' 분야로 전쟁터가 이동하는 모양새다. 정치·외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 20세기처럼 총을 들지는 않지만 그 대신 '경제보복'이라는 카드를 꺼내는 행태가 만연해지고 있다. 내수기반이 약한 우리나라는 무역으로 성장해온 구조 탓에 이 같은 '경제보복'에 매우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中 이어 日까지…말 안통하면 '경제보복'

5일 일본 정부는 한국에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를 단행했다. 한국에 수출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리지스트 등 3개 품목을 '포괄적 수출 허가' 대상에서 '개별적 수출 허가' 대상으로 변경했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TV·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에 쓰이고, '고순도 불화수소'·'리지스트'는 반도체 제조에 있어서 필수적인 품목이다. '포괄적 수출 허가' 대상에서 제외되면 수출 계약 건당 최대 90일에 걸쳐 심사와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 1일 이 같은 규제를 예고했다.

삼성과 SK, LG가 직격탄을 맞게 됐다. 각 그룹사의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LG전자 등이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과정에서 이들 제품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제품은 세계 생산량 가운데 일본이 90% 가량을 차지하고 있어 대체하기도 어렵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이 지난해 수입한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가운데 93.7%, 레지스트 수입량 중 91.9%를 일본에서 공급받았다. 고순화 불화수소는 일본에서 수입하는 비중이 43.9%로 그나마 낮은 편이었다. 각 기업이 보유한 재고품목은 최대 2~3개월 분량에 불과해 급히 추가 주문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한국이 징용 문제에 대한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G20 정상회의까지 제시하지 않으면서 양국 간 신뢰 관계가 손상됐다"고 말했다. 국내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임을 넌지시 드러냈다. '강제징용 배상'을 둘러싼 한·일 양국의 외교갈등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경제보복으로 '힘 겨루기'에 나선 것이다.

불과 2~3년 전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경제보복을 당했다. 당시 중국은 한국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확정하자 '한한령'을 발동, 중국 내에서 한국 콘텐츠 송출 또는 한국 연예인 출연 등을 금지했다. 유커(중국인 관광객) 방문도 급감하면서 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 등 국내 화장품 업계 매출도 크게 줄었다.

일본 경제보복에서 빗겨간 현대자동차와 롯데도 당시 사드사태의 희생양이었다. 지난 2016년 중국에서 약 120만대를 판매하며 시장점유율 5% 안팎을 오가던 현대자동차는 이듬해인 2017년 판매량 78만대, 점유율 3% 초반대로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주한미군에게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는 중국으로부터 집요하게 괴롭힘을 당했다. 중국 내 롯데마트에 대해 소방법 위반 등을 명분으로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진 것. 지난 2017년 기준 중국 내에서 112개에 달했던 롯데마트는 수천억원이 넘는 손실을 기록, 결국 지난해 '사업철수' 수순을 밟았다. 중국 내 롯데백화점도 5곳 중 3곳이 문을 닫았다.

◇ 美·中 패권경쟁도 '경제보복'…새우등 터지는 韓 경제

현재 세계 패권국 자리를 놓고 벌이는 경쟁은 '총' 대신 '경제보복'이다.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다. G2인 미국과 중국은 서로를 향해 관세폭탄을 투하하며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중국산 수입품 2500억달러 규모에 25% 관세를, 중국은 미국산 수입품 1100억달러 규모에 5~25%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미국은 나머지 중국 수입품 3250억달러 규모에 대해 추가적으로 관세를 부과할 것을 예고하는 데 이어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추진해왔다. 이에 반해 중국은 희토류 수출을 금지하는 조치 등을 검토해왔다. 비록 지난달 말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중 양국은 무역협상을 재개키로 하는 등 '휴전'에 돌입했지만, 무역전쟁의 본질이 '중화민족의 부흥'에 나서는 중국과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 간 패권경쟁임을 감안하면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주류를 이룬다.

우리나라는 미·중 '고래싸움' 속에서도 새우등 터지듯 피해를 입고 있다. 중국의 대(對)미 수출이 줄어들면 우리나라의 대(對)중 수출도 감소하는 구조다. 현재 국제무역은 우리나라가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고, 중국이 미국 등에 최종재를 수출하는 분업구조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對)중국 수출품 가운데 중간재 비중은 79.5%였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중국 측 수요가 둔화되자 LG화학과 롯데케미칼 등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은 지난해 4분기에 이어 올해 1분기까지 영업이익 규모가 전년동기 대비 반토막났다.

국제 무역이 갈수록 불확실해지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까.

한민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팀장은 "국가 간 경제보복이 만연해진 상황에서 국내 자급률을 높이거나 내수를 활성화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는 자원이나 인구 등 기반 규모가 작기 때문에 결국 세계 시장을 바라보고 무역을 해나가야 하는 입장"이라면서 "무역분쟁 등으로 인해 움츠러들기보다는 오히려 역으로 국가 간 경제적인 연결고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의 사드보복 당시에도 관광이나 소비재 등은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반면, 반도체 등 중국 경제와 밀접하게 연관된 산업에 대해서는 중국도 손을 쓰지 못했다"며 "글로벌 밸류체인으로 깊이 들어가 국가 간 산업이 얽힐수록 경제보복을 당할 유인이 적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