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판문점 '번개' 만남에 비핵화 시계 다시 돌지만 ..북의 '헤징전략' 유의하라

2019-07-03 18:38

 

[주재우 교수 ]



지난 6월 29일 이른 새벽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로 한국에 간 김에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자고 깜짝 제안하면서 한반도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다. 김정은도 즉각 호응하면서 30일 판문점에서 이들은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다. 트럼프는 판문점의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북한 땅을 밟은 첫 현직 미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이들의 만남은 김정은이 지난 4월 트럼프에게 '용단'을 요청한 지 석 달도 안 돼서 이뤄졌다.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이유는 그간 트럼프가 김정은의 요구에 그 어떤 명확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4월 12일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한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며 미국에게 비핵화 협상 의지를 연말까지 밝히라고 선공했다. 지난 2월 말 하노이 회담 결렬에 대한 불만의 노골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침묵으로 일관한 트럼프가 신경쓰였는지 김정은은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1주년을 맞아 친서를 보낸다. 그러나 정작 ‘신의 한 수’는 다른 데 있었다. 이는 연말까지 이제 반년도 안 남은 시점에서 판문점 조우였다. 그 결과 3차 미·북회담의 성사에 대한 낙관론이 대두되고 있다. 트럼프는 김 위원장과 '자유의 집' 회동 후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 주도로 2~3주 동안 실무팀을 구성, 본격적인 북·미 협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하노이 '노딜'로 사실상 멈춰섰던 비핵화 시계가 새로운 엔진을 켰다고도 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3일 국무회의에서 북·미 판문점 회담을 사실상의 종전선언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미·북 간의 ‘번개’ 만남에 현혹되지 말아야 할 사실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입장과 자세에 변함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는 북한은 북·미회담의 성사 실패나 비핵화협상에 진전이 없을 경우를 대비해 중국과 러시아와 헤징전략을 꾀하고 있는 사실에서 입증된다. 지난 두 달간 북·중·러의 외교적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4월 25일 김정은이 북한 최고지도자로서 18년 만에 러시아를 방문했다. 그리고 6월 2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이 중국 최고지도자로서 14년 만에 이뤄졌다.

또 다른 한 가지 사실은 미국이 ‘작전타임’을 불렀다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헤징전략에 개입할 필요성을 느꼈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에게 비핵화의 해결 플랫폼을 6자회담의 재개라고 종용하면서 미국과의 회담 방향과 의제에 노골적으로 간섭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미국이 부른 작전타임의 메시지는 김정은에게 미국을 믿고 따르라는 것이다. 그는 이번 ‘번개’를 통해 자신의 김정은에 대한 상념과 호의에서 북한이 미국에 대한 신뢰를 찾기를 희망하면서 3차 회담의 의지를 직접 전하고 싶어한 것으로 보였다.

 

트럼프를 군사분계선 이북으로 안내하는 김정은 (서울=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30일 판문점에서 만났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일 보도했다. 사진은 중앙통신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것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군사분계선(MDL) 북측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넘어오도록 손짓으로 안내하고 있다. 


요즘 북·중·러의 세 나라 지도자 사이에서 북한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오고간 말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 미국에 북한의 체제안전보장을 요구하는 동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건설적 역할을 서로 수행한다는 입장을 공동으로 밝혔다. 그러나 문제는 김정은의 이러한 다자 외교 행보가 현재 그를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그를 훈수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 많아진 것이다. 그리고 시진핑과 푸틴의 훈수는 북·미회담을 지지하면서도 6자회담의 재개를 모두 강조한 사실에서 입증된다. 체제안전보장을 위한 북한의 비핵화 노력에 대한 미국의 제재완화 고려 요구를 시진핑과 푸틴이 공개적으로 밝힌 점은 김정은에게 힘을 실어 주는 발언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북·미대화를 지지하면서도 6자회담의 재개를 강조한 사실은 중·러 양국이 비핵화 과정에서 자신의 지분과 전략적 이익을 챙기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의 용단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김정은의 용단이 요구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김정은은 트럼프와의 협상을 통해 북핵과 제재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의 ‘응원자’들이 일괄타결(이른바 ‘쌍중단’과 ‘쌍궤병행’)의 응원 구호를 소리치며 6자회담의 재개를 훈수하고 있다. 그야말로 러시아와 중국의 훈수는 김정은에게 무엇이 먼저인지, 어느 것부터 충당시켜야할지에 대해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의미다.

표면적으로 중국과 러시아의 훈수는 혼란스러워 보인다. 이들의 수를 읽기 위해서는 이들이 왜 6자회담의 재개를 고집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미·북회담을 통해 미국과 북한 간의 비핵화 합의가 이뤄지면 그 다음 수순이 북한 정권의 체제 안전보장 문제다. 북한 체제의 안전보장은 미·북합의로 미·북 수교나 관계정상화로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 미국과 베트남 등의 수교 과정 교훈을 참고한다면 미·북 수교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따라서 수교 이전까지 수교와 관련된 협의를 하는 동안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한반도의 평화체제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 사이 북한 체제는 6자회담을 통해 한시적인 방안을 마련해 보장될 수 있다는 논리가 복선에 깔려 있다.

그럼에도 북한에게 이런 중·러의 구상은 탐탁지 않게 여겨졌을 것이다. 북한은 미국과 합의 도출에서부터 이의 이행 문제까지 독립적이고 자주적으로 해결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이런 북한의 해결 노력에 지원군이 되길 희망하지만 이들의 직접적인 개입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북한의 입장을 이해라도 하듯 방북을 앞둔 시진핑은 노동신문에 게재한 기고문에서 김정은의 ‘새로운 전략 노선’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과 대화를 통한 북한의 합리적 관심사 해결을 지지하고 한반도문제 관련 대화와 협상에서 진전이 이뤄지도록 공동 추동하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이는 북한이 올해 신년사에서 밝힌 북·미협상의 진전이 없을 경우 ‘새로운 길’을 모색하겠다는 북한의 입장에 맞장구를 친 셈이다. 즉, 북한의 합리적 관심사가 북·중 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을 경우 ‘김정은의 새로운 전략 노선’을 지지하겠다는 것은 북한의 ‘새로운 길’로 나가겠다는 그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북한이 신년사에서 밝혔듯 이 새로운 전략 노선과 길은 결국 국가제일주의에 입각한 국가건설과 인민경제의 발전에 집중하는 동시 국가 방위력을 세계 선진국가의 수준으로 계속 향상시켜 나가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미·북합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견지되어야하기 때문에 중·러 양국과의 관계도 강화가 병행되어야한다고 천명했다.

또한 북한은 경제건설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당국에 당부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김정은은 이를 외세(미국)와의 합동군사연습의 중단과 외부(미국)로부터의 전략자산을 비롯한 전쟁장비 반입의 완전한 중지로 요약했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2017년 7월의 첫 한·미정상회담 이후부터 후자, 즉 전략자산과 전쟁장비의 반입(구매)을 지속해왔다. 그야말로 북한의 우리 정부에 대한 불신이 오늘날 더욱 더 강해지는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 북한의 우리 정부의 역할과 성의를 비판할 수 있는 명분과 이유를 우리 스스로 제공한 셈이다.

북한을 포함한 주변국이 모두 정책과 전략을 조정하는 동안 우리 정부와 외교 당국은 변명하기 급급하다. 지난 5월엔 장하성 주중대사의 우리나라 일대일로 사업 참여 의향의 발언 유무를 놓고 일대 혼란이 있었다. 사실은 명확하다. 우리 대통령은 2년 전 베트남 다낭에서 개최된 APEC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과의 회담에서 일대일로의 ‘적극 참여’를 밝혔다. 우리 정부는 지금까지 사드 배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되풀이 해왔지만, 이번 오사카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은 사드 문제를 다시 꺼내들었다. 또 화웨이와 관련 미·중의 우리 정부에 대한 우려와 압박을 기업의 문제로 치부했다. 우리 정부는 주변국의 불신만 유발하는 언행불일치의 행위를 삼가야 한다. 그리고 국제정세 흐름과 맥을 잘 읽으면서 우리 외교를 재정비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