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풍에 흔들리는 '가마우지 경제'…소재 국산화가 답

2019-07-02 19:00
일본 수출규제 후폭풍…반도체 소재 대일 의존도 높아
기초기술 지원 절실…눈앞 아닌 장기적 생태계 육성해야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딜라이트 샵에 전시된 반도체 웨이퍼에 비친 전시품과 관람객 모습. [사진=연합뉴스]

국내 반도체업계에 먹구름이 잔뜩 드리우고 있다. 일본 정부가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은 업황 둔화에 이어 생산 차질이라는 대형 악재를 동시에 극복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지난 1일 반도체 소재인 리지스트와 에칭가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소재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총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절차 간소화 등 우대조치를 오는 4일부터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리지스트와 에칭가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3개 품목은 계약 건별로 일일이 수출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 신청과 심사까지는 최대 90일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최악의 경우 수출 불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업계에서는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 중이다.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1차적으로는 최대한 빨리 재고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재고를 미리 확보해 놓는다면 시간은 다소 걸리더라도 생산 차질이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 역시 "수출 규제로 인한 당장의 영향이 아예 없을 수는 없다"면서 "생산에 얼마나 타격을 입을지는 실제 규제가 시행된 후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은 일본 정부가 규제한 3개 품목의 대일 의존도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리지스트와 플루오드 폴리이미드의 경우 각각 올해 기준으로 91.9%, 93.7%를 일본으로부터 수입한다. 에칭가스 또한 일본 비중이 43.9%에 달한다.

 

[그래픽=아주경제 편집부]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로 인해 소재의 국산화가 절실하다는 게 다시 한번 입증됐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경제평론가 고무로 나오키가 1989년 <한국의 붕괴>라는 저서를 통해 '양쯔강의 가마우지'라고 칭했던 한국의 산업구조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길들여진 물새가 고기를 잡으면 어부가 물고기를 가로채듯, 한국이 완제품을 수출할수록 소재와 부품을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일본 기업은 앉아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나오키의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소재와 부품 등 후방산업의 중요성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특히 핵심 소재의 경우 개발을 성공할 경우 장기간의 시장을 독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완제품 산업에 비해 업황이 부진해도 보유 기술을 기반으로 신 수요에 적극 대응이 가능하다. 그러나 여전히 이 분야에서 한국과 일본의 기술력은 최소 2년 이상 차이가 난다는 게 중론이다.

일본의 기술력을 따라잡기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도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관련 부처 합동으로 3년 단위의 '소재·부품 발전 기본계획'을 4차까지 마련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체 또한 협력업체들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그러나 유의미한 성과는 아직 거두지 못한 상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와 반도체 업계가 눈앞의 목표에 매몰되지 말고, 장기적인 생태계 육성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본의 도레이가 모범적인 사례다. 도레이는 1970년대 철보다 가벼우면서도 10배 이상 강도가 높은 탄소섬유를 개발했지만 30년간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꾸준한 연구개발(R&D)을 통해 2006년 보잉과 17조원대의 장기 계약을 맺는 데 성공한다. 현재 글로벌 시장의 70%가량을 독점하고 있다.

탁승수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산업전략본부장은 "기초기술에 대한 정부의 투자와 R&D 지원 정책이 더욱 확대될 필요가 있다"며 "기업들 또한 국산화를 앞당길 수 있도록 타임테이블을 새로 만들고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